경부고속도로를 반대했다고?

[색깔있는 역사스케치] 정창수l승인2009.12.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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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산업근대화의 시점을 잡으라면 아마도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그 시점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 1970년 7월 7일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는 세계 역사상 가장 싸게 그리고 가장 빠르게 건설되었다. 429km를 건설하는데 429억원이 들어가서 당시 일본 동명고속도로의 8분의 1수준이었다. 거기다가 1968년 12월 1일이 공식 착공일이었으니 19개월 만에 완공한 셈이다. 이러다보니 부실공사가 되어 1990년 말까지 보수비만 1천527억원으로 건설비의 4배가 들어갔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 자체는 허술했지만 ‘다이나믹 코리아’의 상징이었고,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측면은 부정할 수 없다. 제대로 했다면 12년은 걸렸을 거라고 한다. 더군다나 이 사업은 격렬한 정치적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히 추진한 박정희 리더십의 대표적 사례로 기억된다. 그래서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신화의 대표적 상징이다. 박정희 독재에 대한 향수는 그런 결단이 우리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기억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기억이든 사실과 진실이 다를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진실은 이렇다. 우선 반대가 많지 않았다. 고속도로건설은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의 대선공약으로 발표되었고, 직후 여론조사 결과 68%가 무조건 찬성, 27%가 조건부 찬성, 반대는 5%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 고속도로 건설 당시에 일반 국민들은 애국심으로 용지대금을 낮출 정도였다. 582만7천평의 용지대금으로 지급된 총액이 18억7천667만3천원으로 평당 236원에 매수했다. 당시 파고다 담배 한갑에 40원, 쌀 한가마에 4천350원하던 때였다.

찬성여론이 다수였다 하더라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지역균형발전이었다. 세계은행의 자매기구인 국제개발협회가 “경부고속도로 같은 남북종단도로보다는 횡단도로가 더 시급하다”라며 차관지원에 난색을 표한 것도 바로 그 문제였다.

따라서 호남을 중심으로 편향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6대 대통령 선거 때 박정희 후보의 호남선 복선화 공약의 이행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와 같이 착공된 호남선 복선화 공사는 36년이 걸린 후 2004년에야 완공되었다. 어느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정권교체 전까지 영남과 호남의 예산투자액수가 10대1이었다고 한다.

결국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재원배분 논쟁이었던 셈이다. 고속도로가 경제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 시기와 방식에 대한 논란이었다. 당시 반대진영의 논객은 건설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김대중이 돋보였다. 그는 호남의 이익만 옹호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IBRD(국제부흥개발은행)의 보고서를 근거로 서울-부산 간에는 철도망과 국도, 지방도가 잘 갖추어져 있으므로 오히려 서울-강릉간 고속도로를 가장 먼저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원도에는 지하자원과 관광자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철도조차 없다는 이유였다.

아마 이 주장대로 되었다면 해안은 교통시설이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으므로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급속한 성장에 대한 우려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시대를 앞서 고민한 흔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반대에 앞장섰던 김영삼 의원이 훗날 대통령이 되어서는 경부고속도로가 4차선밖에 안돼서 문제가 많다며 박정희 정권을 비난한 것이다. 그분의 스타일이야 익히 아는 바이기에 놀라지는 않지만, 마치 개그를 보는 것 같다.

그러면 박정희 대통령이 급속히 추진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1971년 대통령 선거 때문이었다. 대통령 선거 전에 공사를 완공시키기 위해 무리한 공사를 진행한 것이다. 또한 경제적 고려도 있었다. 경제개발의 본격화로 인한 철도수송의 과포화와 울산정유공장 건설 이후 공급 과잉상태에 놓인 아스팔트 처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 자리에서 경부고속도로도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 지금은 지지를 받지 않았느냐며 4대강사업 추진을 강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은 다수가 반대하고 그 결과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결과가 불을 보듯 뻔한 사업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청계천이 있다. 청계천도 반대가 많았지만 강력히 추진한 결과 성공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잘못된 기억이다. 청계천도 환경단체들은 물론 진보신문이라 그들이 이야기하는 한겨레신문까지 지지하였다. 문제제기는 추진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몇 안되는 글 중 하나를 보내기까지 하였다.

문제는 잘못된 기억 때문에 지금 욕을 먹어도 훗날에는 찬양받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역사에서는 영원히 욕을 먹는 일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그분은 모르는 것 같다. 이런 기억력으로 혹시 나중에 자신은 사실 반대하려고 했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을까. 김영삼 대통령처럼 개그를 시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사고가 너무 크다. 우리의 고통도 너무도 막대하다. ‘잘못된 기억’은 ‘잘못된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정창수 편집위원

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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