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서 배운 현장

내 인생의 첫 수업[13] 곽노현l승인2007.08.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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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가끔 생각나는 곳이 있다.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2주간의 농촌활동을 위해 비지땀을 흘렸던 공주 마곡사 인근의 산골마을이 그곳이다. 모두 55호가 위아래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서너 집을 빼면 급경사 산비탈에 들어선 계단밭 몇 뙈기가 생계수단의 전부였다. 비포장도로로 한참을 들어가는 외진 곳이라 하루에 딱 한번 나가고 들어오는 시외버스가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였다. 전기는 다행히 1년 전부터 들어왔으나 전기요금이 무서워서 전등을 달지 않은 집들이 많았다.

우리는 남녀 대학생 총 37명의 대 부대였다.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서 밤 1시 반이 돼야 잠자리에 들었다. 마을사람들이 쌀과 보리를 1대9로 해서 거의 꽁보리밥을 해먹었다. 온종일 뙤약볕 속에서 계단밭에 올라가 키만큼 자란 잡초를 뽑고 땅을 갈았다. 일종의 이념서클이었으므로 희생과 헌신의 도덕적 자세가 강조되고 현상과 사물에 대한 이념적 해석이 지배했다. 낙천적이고 넉넉한 성품으로 조절되지 않는 이상 섣부른 이념과잉은 불협화음을 내는 법. 이념성이 강하고 비타협적인 조장이 이끈 아랫마을 조는 마음에 상처를 주는 상호비판으로 분주했다.

작은 마을도 겉보기만큼 평화롭진 않았다. 워낙 외부인과 교류가 뜸한 산간마을이라 그런지 일단 마음을 열자 주민들은 우리한테 별 얘기를 다해줬다. 우리가 해결사라도 되는 듯 이웃들과 오랜 불화에 대해 털어놓으며 흉을 보는 경우도 많았다. 얼핏 보는 것과 달리 작은 마을에도 나름대로 잘살고 못사는 구분과 내력에 따라 갈등과 경쟁이 뿌리 깊었다. 비슷한 또래의 마을청년들은 모두 대처(大處)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태어나서 자란 고향은 하루바삐 벗어나야 할 가난과 속박의 땅이었다.

이런 마을 분위기 속에서 나는 때때로 소설 ‘무진기행’의 주인공처럼 답답함과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나마 위로가 된 것은 작은 마을에도 논리정연하고 설득력 있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었다. 밤마다 4H회관에 모여 마을과 농정의 과제를 놓고 토론할 때 이 분들의 존재는 단연 빛났다. 나는 또한 가난한 마을에도 문학과 예능 역량이 뛰어난 분들이 적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떠나오기 전날 밤 마을사람들은 사물놀이패를 2개나 조직해서 신명난 잔치판을 벌였다.

잔치가 끝날 무렵 나는 쏟아지는 졸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깥에 나와 몸을 눕혔다. 머리 위에는 별이 빛났고 내 맘에는 세상 어디에나 공동체의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강호제현’이 존재한다는 믿음과 세상 어디에나 공동체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예술문화의 잠재역량이 공평하게 주어졌다는 믿음이 빛났다. 세상물정 몰랐던 책상물림 서울 토박이의 농촌현장수업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곽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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