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뿐인 ‘친서민 정책’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9.12.2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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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2007년 대선 때 TV광고에 함께 출연했던 ‘욕쟁이 할머니’의 포장마차 식당을 찾아 계란말이와 오돌뼈 볶음 등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며 환담을 나눴다. 욕쟁이 할머니에게는 목도리를 선물했다. 이 대통령은 욕쟁이 할머니 포장마차의 장사가 잘 안 된다며 “가급적 참모들이 많이 가서 팔아줬으면 좋겠다”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보건복지가족부 등 4개 부처의 내년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서민’을 주문처럼 되풀이했다. “우리사회가 아직도 서민 살기엔 참 힘들다. 아마 내년 하반기쯤 되면 서민도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않겠나 본다. 서민을 위한 배려와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한 국정과제이다.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른바 ‘서민 행보’를 재개했다. 오뎅과 떡볶이, 막걸리 등 대표적인 서민 음식을 먹으면서 ‘서민’을 외쳐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로만 ‘친서민 정책’일 뿐 실제로는 ‘반서민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서민은 배제돼 있고 반대여론이 들끓는 4대강 사업에 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년도 예산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 ‘친서민 정책’의 실체가 드러난다. 감세와 규제완화 혜택은 부유층에 집중시키고 비정규직 근로자와 결식아동 등 ‘진정한’ 서민 지원예산은 삭감해버렸다. 이명박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촉진을 위한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전액 삭감했다. 또 내년도 결식아동 지원 급식예산 432억원도 없애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5% 선이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체감실업률 11%,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210만명, 절대 빈곤율 11.2%, 기초보장 사각지대에 있는 빈곤층 400만명 등 서민의 삶은 점점 벼랑 끝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서민을 위한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4대강 죽이기’에 8조5천333억원을 쏟아 부으려 한다. ‘친서민 정부’로 자화자찬하던 이명박 정부가 ‘반서민 정부’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참여연대는 최소한의 생활도 하지 못하는 취약계층 200만 명, 방학이면 굶는 아이들 25만 명, 돌봄이 필요한 노인 5만 명, 건강보험료도 내지 못하는 저소득층 20.5만 가구 등을 위해 복지예산을 추가로 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세와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재정압박 때문에 서민을 위한 예산이 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은 경제위기,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등 한국사회가 직면한 현실에 부합하지 못하는 부실한 수준”이라며 “고작 수천, 수만 명에게 효과가 돌아가는 정책을 두고 진정한 서민 복지정책이라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 소액대출인 미소금융과 등록금 후불제, 보금자리주택 등 3가지 서민정책은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국민을 돕겠다는 정부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경기를 회복시키고자 모든 노력을 다하면서 서민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데 정책의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정책은 구호만 ‘서민정책’일 뿐이다. 진짜 서민을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등록금 후불제는 비싼 등록금을 외면한 땜질식 처방일 뿐이고 보금자리주택은 3억~4억원의 자산을 소유한 중산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미소금융은 금융채무 불이행자와 개인파산자, 기초생활 수급대상자 등 빈곤층을 대출대상에서 빼버렸다.

이처럼 ‘이명박 표 친서민 정책’은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새세상연구소 박경순 소장의 지적대로 “부자감세, 4대강 사업, 미디어법 개정, 강부자 인사정책 등을 힘으로 밀어 붙이며 낳은 사회적 후유증과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세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은 ‘서민 행보’를 지속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에 덧씌워진 ‘강부자 정권’ 위에 서민적 이미지를 덧칠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반서민적 감세정책과 토목사업 지출을 포기하고 공공복지제도를 확충하는 것이 ‘서민 살리기’의 정도임을 깨달아야 한다. 참여연대는 “4대강을 위한 삽질예산을 서민을 살리는 서민복지 예산으로 써야 한다”며 “국회는 삽질이 아닌 서민의 삶을 위한 예산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4대강 예산의 5%만 투자해도 초등학생 전원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이 대통령이 ‘서민행보’에 다시 시동을 걸고 나섰지만 ‘연말 민생경제 살리기’는 포장된 구호로 비쳐질 뿐이다. 독재자 박정희는 서민적 풍모를 보인다며 막걸리 마시는 모습이 신문이나 TV에 보도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당시 신문을 보면 밀짚모자를 쓴 채 논에서 모내기를 한 뒤 농부들과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사진이 유독 눈에 띈다. 그러나 박정희의 마지막 식사였던 궁정동 만찬장에는 고급 양주 ‘시바스 리갈’ 병이 놓여 있었다.

재래시장에서 떡볶이나 오뎅을 먹으며 상인들에게 목도리를 선물하는 것이 ‘친서민 정책’일 수는 없다. ‘서민행보’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 정치’로는 서민의 가슴을 얻을 수는 없다. 토건족의 배만 불리는 4대강 삽질 예산을 공공복지로 돌리는 길만이 서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이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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