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랏돈빼꼴'에 속지 말아라

[책권하는 사회] 최윤도l승인2009.12.2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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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메기 위한 백기완 선생의 화두
“어기찬 물살, 한 방울 맑은 이슬로”

영원한 거리의 싸움꾼. 세상과 적절히 타협하지 않아 고난으로 점철된 일생을 ‘노나메기 정신’으로 지탱하는 늙은 젊은이.

“요즘 벗나래(세상), 그 돌아가는 꼴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이것도 사람 사는 벗나래든가?’ 그런 휫딱(착각)이 들 때가 있다. 대통령이라는 이명박이가 앞장서 뻔한 거짓을 참으로 바꾸고, 또 참짜 참은 아예 죽이고 있음을 보게된다.”

백기완 선생 특유의 이야기투로 풀어 쓴 회고적 에세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겨레)에서는 현실을 바라보는 여전히 살아 번득이는 선생의 눈빛을 느낄 수 있다.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는 선생을 기억하는 중장년에게도, 백기완이라는 사람을 전혀 모르는 젊은이에게도 이 책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영원한 ‘늙은 젊은이’

고집스러울 정도로 삶을 지난하게 이어오는 것은 글머리에서 밝힌 어머니의 말 때문일지 모른다는 백기완 선생.

“야 부심아(선생의 덧이름-별명). 배고픈 것쯤은 참아야 돼. 모두가 주리고 있는 이참에 제 배지(배)만 부르고 제 등만 따스고자 한다면 너, 어더렇게 되는 줄 알아. 키가 안 커. 그러니까 배나 고프다고 허리를 꺽으면 안 되는 거야.”

어린 시절 어머니의 말씀이 자신의 삶을 비추는 중심이 되었다는 말에서 과연 일생을 관통하는 확고하고도 키 큰 선생의 신념이 바로 ‘노나메기’(너도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잘살고 나도 잘 살되, 착하고 어질고 깨끗하고 올바르게 잘사는 세상-백기완)임을 알게 한다.

노나메기로 모두가 올곧게 사는 세상. 그 세상을 위한 선생의 불쌈(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불쌈은 문화적 불쌈이다.

지난 10월 대학로에서 열린 ‘노래에 얽힌 백기완의 인생이야기’에서는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 라는 걸개가 있었다. 사실 선생에게 투쟁이란 곧 예술이며 그 둘은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문익환 목사와의 일화가 이를 짐작케 한다. 문익환 목사에게 투쟁의 현장으로 나서자고 설득하며 선생은 “목사님한테 거대는 게(불을 붙이다) 아니라 시 쓰는 문익환이한테 거대는 겁니다. 시 한 줄 쓰시라는건데 뭘 그러세요”라고 말한다.

‘행동이 곧 시(예술)요, 불쌈이다’라는 선생의 철학은 ‘행동하는 양심’에 다름 아닐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의 몸짓

또 ‘요즘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소 싶습니까’ 라는 물음에는 “요즘 사람들 저마다가 다 떵이(천재)요, 모두가 깨친이 라고 뻐기는데 내가 할 말이 없다”지만, 정말은 젊은이들에게전해주고 싶은 말을 소리 뿐 아닌 온 몸을 떨며 털어 놓는다.

“모랏돈빼꼴(자본주의)의 꾸럭(조작)에 속지 마시라.”

모랏돈빼꼴이 무엇이기에 속지 말라는걸까. 선생의 글을 옮겨 본다.

“‘겨루는건 대로(자유)다. 아름다운 꽃들도 겨룸에서 이겨가지고 피는, 이를테면 대로의 매듭이다. 따라서 남을 짓밟고 죽여서라도 이기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라고 한다.

그런데도 ‘겨뤄라, 겨뤄서 이기라’는 건 뭐란 말이냐. 남을 짓누르고 짜고 죽여서라도 돈만 벌겠다는 모랏돈빼꼴 그 맑걸(문명)의 속임손(속임수)이지 딴 거이 아니다. 그건 돈을 늘쿠고자 하는 돈의 오틀(논리)이니 그 거짓에 속지 말라 그거다.

모랏돈빼꼴 맑걸이 거의 이백 해 이어오는 동안 사람이 곧 맑걸의 중심임을 내새워 왔다. 하지만 이 때문에 사람들은 누룸을 따름따름(점점) 쌔코라뜨려(망쳐) 사람이 도리어 누룸의 부셔(적)가 돼버린 것이 오늘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돈이다. 거듭 말하면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벗나래(세상)의 주인이 돈으로 바뀌었다 이 말이다. 사람들이여, 갈마(역사)의 알기를 사람에서 돈으로 바꾸고, 그리하여 사람을 죽이고 누룸까지 죽이는 모랏돈빼꼴 맑걸을 뒤집어엎어 사람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자. 그리하여 사람과 누룸을 함께 살리자고 외치자.”

초등학교 이후로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선생에게 역사와 현실, 그리고 사회와 인간을 배움터 삼아 온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가르침이 곧 살아있는 교육이 되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삼국지>를 “사람 다루는 기술만 있을 뿐 어떤 것이 사람의 나라인가 잘 잡히지 않는다”며 비판하고,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빵을 훔치기 위해 유리를 깨는 장면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답지 못한 모든 체제를 한사위로 깨뜨리는 것”으로 평가하는 장면에서 선생의 체험이 바탕이 된 확고한 시각이 엿보인다.

선생이 고집스러운 우리말 사랑이 진하게 밴, 손수 만든 우리말 어휘들을 보는 것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매 꼭지 마디마다 벗나래(세상)를 향해 일갈하는 선생의 말이 더욱 이 책을 가까이 두게 한다.

“여보게 젊은이들! 이 썩어 문드러진 모랏돈빼꼴(자본주의)에 살고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 낑길 생각일랑은 아예 하질 말게. 아니, 모랏돈빼꼴을 믿고 따르고 함께 살 생각일랑은 아예 가짓(시늉)도 말게. 그보다는 이 썩어문드러진 모랏돈빼꼴을 왕창 부림(변혁)하려는 어기찬 물살에 한 방울 맑은 이슬로 뛰어들어야 하질 않겠는가.”

사람다운 한살매는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사람이 마지막이란 삶의 들락(문)이 꽈당 하고 닫히는 게 아니다. 죽음이라는 그 마지막이 바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첫발임을 알아야 한다.

내 한 살 때란 갖은 꺽임(좌절)과 온갖 깜떼(절망)로 내몰리는 썰품(비극)의 거퍼(연속)였다.

여기서 그 꺽임과 깜떼를 도리어 먹거리로 삼질 않으면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니, 죽어서도 다시 사는 삶. 그거이 참짜 사람답게 사는 한살매(일생)라.”


최윤도 두리미디어 기획과장

최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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