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고 읽고 쓰고 살고 덮고

책으로 보는 눈 [108] 최종규l승인2009.12.2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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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방 나들이를 하면 새로 나온 책부터 요 몇 해 사이에 나온 책을 하나하나 뒤적여 봅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 갓 들어온 책부터 오래도록 꽂힌 책까지 두루두루 되짚어 봅니다. 읽을거리 하나를 사기까지 적잖은 품과 땀을 들입니다.

책을 살 때에는 지갑에 돈이 얼마 남아 있는지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달 살림돈으로 얼마를 남겨 놓아야 하는지 살피지 않습니다. 책방마실을 하고 난 다음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가방과 마음은 뿌듯한데 먹고살 걱정’으로 두 발이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내 마음밥을 채워 준 고마운 책임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밥술을 뜨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오늘 두 끼니를 굶어도 책을 안 살 수 없습니다.
사들인 책을 집에서 아이 보는 틈틈이 읽든 전철길에서 읽든 뒷간에서 읽든, 언제나 품과 땀을 들여서 읽습니다. 품을 들일 만한 값이 있다고 느끼는 책을 읽으며 땀을 들여 곰삭일 값어치가 있다고 보이는 책을 읽습니다. 거저 주는 책이라 해서 즐겁게 읽을 수 없습니다. 내 손에 쥘 만해야 비로소 읽습니다.

즐겁고 반갑게 읽은 책 이야기를 글로 끄적입니다. 괜히 내 품과 땀을 버리도록 했다 싶은 책 이야기를 때때로 글로 적바림합니다. 내 마음을 따숩게 보듬은 책 이야기를 쓸 때에는 이 책이 있어 내 마음밭이 더욱 넉넉해졌다는 느낌을 담아내고자 애씁니다. 내 마음을 슬프게 하는 얄딱구리한 책 이야기를 펼칠 때에는 이 책을 쓴 사람부터 얼마나 안타깝고 아쉬운가 하는 느낌을 실어내면서, 부디 다음 책에서는 글쓴이와 엮은이가 새 마음과 새 뜻을 품으며 더 애써 주기를 바랍니다.

좋다 싶은 책을 읽은 뒤에는 좋구나 싶은 속살대로 제 삶을 다잡으려고 합니다. 얄궂다 싶은 책을 읽은 다음에는 나 또한 이렇게 얄궂은 길로 빠질 수 있으니 내 매무새를 더 야무지게 다스려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좋구나 싶은 책이든 아쉽구나 싶은 책이든, 짧으면 한 주 만에 길면 서너 해 뒤에 아주 덮고는 책꽂이에 얌전하게 꽂아 놓습니다. 이리하여 제 살림집이나 책상맡은 갖가지 책으로 늘 어수선합니다. 다 읽었어도 책꽂이로 옮겨 놓지 못하고, 천천히 읽거나 여러 차례 거듭 읽다 보니 노상 가득가득 책탑이 이루어집니다.

이달 첫머리에 서울 혜화동 인문예술책방 〈이음책방>에서 <아돌프에게 고한다 1∼5>(세미콜론, 2009)라는 만화책을 장만해서 세 번 읽었습니다. 그린이 데즈카 오사무 님은 4권에서 “우리(태평양전쟁 때 일본)가 배운 정의는 옳은 일을 행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위압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단 걸 깨달았지.”(43쪽)라고 이야기합니다. 지난주에 서울 홍제동 헌책방 〈대양서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우석, 1993)이라는 수필책을 마련해서 읽고 있습니다. 글쓴이 양희은 님은 “더구나 김민기는 작사, 작곡, 편곡, 연주의 모든 일을 아무 계산 없이 식구에게 하듯 내게 베풀어 주기만 했다. 내가 얼마짜리의 일을 너에게 해 주었다는 식의 계산이 그에게는 도무지 없었다.”(46쪽)고 이야기합니다. 헌책방 〈대양서점〉에는 양희은 님 책이 여러 권 들어와 있었습니다. 책값을 셈할 때 헌책방 일꾼은 “생각 밖으로 양희은 씨 책이 안 나가요. 안 사 가네” 하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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