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한 장의 의미

[이주원의 티핑포인트] 이주원l승인2009.12.21 16:07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아침마다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 많은 사람들은 신문에서 이런저런 소식과 정보를 얻는다. 반면 어떤 사람들에게 신문은 정보와 소식을 전달하는 매체가 아닌 생존의 수단이기도 하다. 거리의 홈리스들이 바로 그들이다. 신문 한 장은 매서운 북새바람과 낙인의 눈총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생존과 안전의 상징이다.

과연 홈리스에게 신문 한 장의 쓰임새는 어떠할까. 일감이 없어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엔 신문 읽기만한 소일거리도 없다. 맨 바닥에 그냥 앉기에 찜찜하면 반쯤 접어 바닥에 깔고 앉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 신문 한 장의 쓰임새가 절정의 순간에 이르는 시간은 거리의 홈리스가 잠을 잘 때이다. 이 때 신문 한 장은 그 무엇보다도 따뜻한 솜이불이자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벽이다. 우리들이 닭울녘에 잠깐 훑어보고 아무렇게나 내던지는 신문 한 장이 전혀 다른 의미로 그들에게는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나 홈리스 생존의 상징인 신문은 그들의 실상엔 유독 침묵한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와 정보를 담았다는 신문에 홈리스들의 이야기는 없다. 여기서 신문의 가치는 그저 넉넉한 종이 한 장만큼이다.

홈리스들이 거리에서 겨울을 났다는 것은 죽음의 유혹, 공포와 싸웠다는 말이다. 그나마 쉼터 입소인들에게 ‘쉼터’는 추위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최소한의 보호벽이 되지만 거리 홈리스는 신문 한 장을 빼고는 무엇도 그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 그들은 항상 굶주림, 추위, 폭력 등의 악조건 속에서 겨울을 보내야만 한다. 겨울뿐만 아니라 봄, 여름, 가을 사계절 모두 거리의 모진 환경은 그들에게 폭력적이며 위협적이다.

거리의 모진 환경과 의료보호제도의 부재는 매년 300~400명가량의 홈리스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 2001년 12월 21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IMF 이후 서울시내 거리에서 사망한 홈리스는 1998년 479명, 1999년 467명, 2000년 413명, 2001년 313명(2001년 11월 현재) 등으로 4년 동안 1천672명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2009년 현재도 상황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01년 3월 7일, 거리 홈리스 김종식(48) 씨는 숨진지 보름만에 동대문야구장 공중전화부스 옆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영양실조와 추위 때문에 사망한 김 씨를 발견당시 얼굴과 손의 살점은 대부분 뜯겨져 나간 상태였는데, 아마도 쥐들이 갉아먹은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또한 2001년 12월 26일 새벽에 서울역 대합실에서 추위와 영양실조를 이기지 못한 40대 거리 홈리스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자 거리 홈리스의 피폐화, 장기노숙화를 예방하는 ‘Out-Reach’와 홈리스들이 자유롭게 와서 숙식하고 휴식할 수 있는 ‘Drop-in Center’ 기능을 가진 거리 홈리스 상담보호센터가 문을 열었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거리를 선택한 홈리스들은 아주 쉽게 ‘술’의 유혹에 빠진다. 유혹의 결과는 뒹굴어 다니는 술병, 퀴퀴한 냄새, 아무데나 널브러진 술 취한 홈리스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심야에 서울역을 나가보면 꽤 많은 수의 홈리스들이 술을 마시고 널브러졌거나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활보하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분명 다수의 알코올 중독자들이 노숙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홈리스 알코올 중독 문제는 밥값보다 술값이 훨씬 싼 우리사회의 소비 구조 및 추위와 심리적 상처에서 도피하려는 홈리스들의 생활양식적인 특성을 무시한 채 접근하면 안 된다.

거리 노숙의 예방은 노숙금지구역을 확대하고 쉼터로 억지로 등을 떠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저소득층이 노숙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예방하려면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잘 갖춰졌는지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많은 가난한 이웃들이 사회안전망에서 제외된 채 복지의 사각지대를 살아가고 있다. 홈리스들은 그 상태가 더욱 심각하다. 여전히 홈리스들은 거리의 폭력적 환경과 날카로운 낙인의 눈총을 피해 지하도의 후미진 모퉁이에서 새우잠을 청한다.


이주원 나눔과 미래 지역사업국장

이주원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주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