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2+2’ 전선

특파원리포트-이란을 가다[3] 카불/테헤란/베이루트l승인2007.08.1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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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만의 역사적 만남에도 대립각 확대
이란-이라크-헤즈볼라 ‘시아파’ 대미전선

미국은 이란을 칠 수 있을까? 이란 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증폭되던 지난 몇 년간 여차하면 불거지는 물음이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무하마드 엘바라데이를 비롯하여 많은 전문가들은 대 이란 군사행동, 특히 이란 핵 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문자 그대로 ‘재앙’을 낳을 거라는 점을 여러 차례 경고해왔다. 또한 이란과 국경을 맞댄 두 이웃 이라크와 아프간이 점점 미국의 수렁이 되어 가고 있는 점도 미국이 이란을 건드리기 어려운 조건으로 꼽을 만하다. 보도대로라면 최근 이라크는 자살 공격 한번에 3자리수를 넘나드는 인명 피해를 보고 있고 비교적 잠잠하던 키루쿠크나 아르빌 지역에서도 이제 심심찮게 공격이 발생하고 있다. 급기야 부시 미 대통령은 미 공화당으로부터도 이라크 철군압력을 받고 있다.

이유경 특파원
테헤란 시내 구 미대사관 벽에는 "미국에게 쓴 맛을 보여주리라"는 이란의 의지가 새겨져 있다. 중동의 새 전선이 결국 미국과 이란의 대결구도로 짜여가고 있다는 분석이 높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은 이라크 치안 문제를 놓고 이란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프간? 만만치 않다. 알카에다를 겨냥하여 주로 동부에 배치된 미군이나 탈레반과 교전 중인 남부의 나토 주도 국제치안보조군 모두에게 아프간은 발을 뺄 수도 안 뺄 수도 없는 딜레마가 되고 있다. 7월 17일 그동안 ‘비교적’ 안전했던 와닥 지방에서 유엔 사업을 진행 중이던 독일인 2명과 아프간 동료 5명이 납치된 것으로 보도되더니, 급기야 19일에는 한국인 23명이 가즈니 지방에서 집단 납치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렇게 증가하는 납치사태와 교전 중 민간인 피해 실상은 미국 주도의 ‘해방전쟁 6년’이 낳은 아프간의 치안유지 실패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 본보기가 아닐까 싶다.

상황이 이럴진대 이란으로까지 전선을 넓힌다는 건 미국에게 자살행위나 다름 없다. 미국의 대이란 압박이 최근 ‘심리전’ ‘여론전’으로 집중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이 지난 해 중순부터 최근까지 펼치고 있는 대 이란 여론전, 그건 바로 이런 거다. "이란이 이라크의 시아 민병대를 지원하고 있다" 혹은 "이란이 아프간의 탈레반을 지원하고 있다."

이란이 탈레반 지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걸 따지려면 그 주장의 출구와 논리를 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라크 쪽을 보자. 시아 민병대인 바드르 군(Badr Corps), 메흐디 군(Mehdi Army), 쿠드 군(Quds Force)을 이란이 지원하고 있다는 주장은 지난 해 말부터 미 언론을 중심으로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례로 11월 30일 ‘특종’을 달고 나온 미 ABC 방송의 보도 제목은 "이란 무기가 이라크 민병대를 무장시키고 있다" 였다. ‘미국 관리’(US officials)를 취재원으로 한 이 주장의 근거는 가만히 보면 ‘원산지 론’이다. 즉 ‘메이드 인 이란’ 무기를 이라크 무장세력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지구상에 떠도는 무기 가운데 ‘메이드 인 아메리카’ ‘메이드 인 러시아’ ‘메이드 인 차이나’ 무기가 얼마나 널리고 널렸는가. 원산지를 근거로 이란이 무장세력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건 논리비약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무기 시장에서 얼마든지 다양한 원산지를 찾을 수 있고 고를 수 있고 심지어 반미 성향의 수많은 반군들도 미국산 무기를 갖고 전투중이기에.

이유경 특파원
탈레반 태생지 칸다하르 시내 거리 모습. 여전히 아프간 정부산하 주정부가 치안을 맡고 있지만 탈레반 스파이가 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왕성한 활동력을 확산시키고 있는 탈레반을 이란은 과연 지원하고 있을까? 미국은 이 전통적 숙적 관계인 탈레반과 이란의 ‘동침’을 슬그머니 던져보고 있다.

그리고 올 1월 10일 미 부시 대통령은 이란이 테러리스트들의 국경 넘나들기를 돕고 무기도 지원하
고 있다며 이 주장을 다시 상기시켰다. 그리고 ‘증거를 제시하라’는 대외의 압력에 2월 11일 백악관은 기자들에게 ‘증거’를 공개했다. 이날 증거 브리핑에 나선 익명의 미 관리 세 명은 대체로 총탄 자국이나 이란 산 폭발물(EFP : Explosively formed Penetration) 그리고 아르빌에서 체포된 이란인들이 ‘쿠드 군’(Quds Forces) 가짜 아이디 지니고 있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 역시 이란이 이라크 민병대를 훈련도 시키고, 무기도 지원하고 있다는 주장에는 턱 없이 못미치는 것이었지만 브리핑에서는 이란 정부 고위 인사가 직접 연계되어있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미국의 혼선이 빚어지는 건, 이 증거 브리핑 다음 날 미 해군 공동 수석 보좌관인 피터 페이스가 "이란 정부가 직접 시아 민병대의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한데도 있다.

이는 미국이 갖고 있는 정보와 근거가 빈약하며 내부적으로도 심증이 각기 다르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이런 주장을 두고 이란 정부는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했던 미국의 (근거없는)주장과 닮았다"고 응수했다. ‘영미 치안정보 위원회’(British American Security Information Council) 가 올 5월 발표한 ‘이라크 폭력사태에 대한 이란의 역할 : 그 증거에 대한 리뷰’ 라는 제목의 보고서 역시 미국의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비약 넘치는 의혹

자, 이번에는 아프간 쪽으로 와 보자. 이란이 탈레반을 지원한다는 의혹 역시 ‘이란 산 무기가 발견되었다’로 시작되었다. 이런 주장은 3월에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이란 산 무기가 처음 발견된 이래 4월부터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는 7월 17일 카불 주재 미 대사 윌리암 우드가 "이란 무기가 아프간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탈레반 반군에게 질과 양으로 도달하고 있다. 테헤란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고 말했다. 이렇게 논리비약으로 몰고 가는 미국과 달리 나토측은 다시 "이란 정부와 직접 연계돼 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 앞서 이라크의 사례가 혼선을 드러낸 것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탈레반에 대한 지원 주장은 이란과 탈레반의 전통적 앙숙관계를 고려해볼 때 더욱 세련된 증거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란과 탈레반은 시아와 수니 각기 다른 종파의 근본주의 진영인데다, 이란은 96년 이래 2001년 축출되기까지 아프간을 통치한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98년 9월에는 두 진영이 전쟁 직전까지 간 바 있다. 탈레반이 아프간 북부 (북부 동맹이 장악하던) 마자레 샤리프를 점령하면서 이란 외교관 8명과 기자 1명을 살해하고 난 사건 직후였다. 게다가 이란은 2001년 미국의 대 탈레반 축출 전쟁에서도 비밀스럽게 ‘협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비밀 협조를 들어 일각에서 ‘이란이 탈레반을 지원하고 있다’는 미국의 의혹제기가 이란을 당혹스런 배신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유경 특파원
레바논 남부 티레에는 헤즈볼라 지도자 나슬라라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다.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로부터 레바논 남부를 해방시킨 무장정당 조직이다.

게다가 이라크와 달리 아프간에 대해서는 ‘증거 없다’는 게 당국의 공식입장이다. 지난 6월 7일 아프간을 방문한 미 국방부 장관 로버트 게이츠와 카르자이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카르자이는 "우린 이란정부가 탈레반을 지원에 연루되어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란 산 무기와 관련해서도 나토 주도의 국제치안보조군 대변인 마리아 칼 중령은 5월 9일 기자회견 당시 이란산 RPG-7 발사대와 소총 폭발 장치 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지만 기자회견에 함께 한 나토 대변인 니콜라스 룬트는 선명한 증거 없이 이란을 무기지원 혐의로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든 건 이렇게 원산지론의 한계를 벗지 못하고 있다.

개연성은 있다

그렇다면 이란의 이라크와 아프간 반군 지원론은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일까? 사실 ‘전혀’는 아니다. 이와 관련 이란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엇갈린 의견을 들어보자.

"이란은 이라크의 안정을 바라는 동시에 미국의 이라크 전 성공을 눈 뜨고 못 볼 것이다. 이란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테헤란의 정치 평론가이자 개혁적 언론인으로 구분되는 자이다바드는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이란의 지원이 비단 시아파 뿐만 아니라 수니파에게까지도 미칠 수 있는 논리적 정황은 충분히 있다고 분석했다. 대미 전선이라는 공통분모가 시아와 수니의 종파갈등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때 탈레반의 친구였던 미국이 지금 탈레반과 싸우고 있다. 이 바닥에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지 않나" 자이다바드는 덧붙였다.

반면 이란의 보수적 언론인들은 이란의 주변국 민병대 지원설을 이렇게 부인하고 있다. "이 지역에 장기주둔을 원하는 미국이 치안악화를 부추기는 것이다. 미군이 사방에 깔린 이라크에서 테러리즘은 중앙정보국과 이스라엘의 간접 지원 하에나 가능한 거다." 이란 최고 지도자의 직접적 관할을 받고 있는 극우보수 신문 케이한 인터내셔널의 편집장 하미드 나자피(72)는 역으로 미국이 이라크 저항세력을 지원하고 있다고 봤다. "이란은 이라크의 민주화와 안정을 바란다. 같은 시아파 형제로서…." 나자피는 덧붙였다.

자, 나자피가 말미에 덧붙인 ‘같은 시아파 형제로서…’ 라는 구절은 이란과 이라크의 긍정적 관계 진전을 바라보고 있는 미국의 딜레마를 음미해볼 수 있는 단서다. 수니파 후세인 정권이 제거되면서 이라크 정치권에 전면 나선 건 바로 주류 시아파이고, 특히 후세인 시절 탄압받았던 시아정치인들의 전면등장이 눈에 띄었다. 현 이라크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라크 이슬람 혁명 최고 위원회’(Supreme Council for Islamic Revolution in Iraq·SCIRI)는 지도부 다수가 이란 태생이거나 이란에서 망명생활을 했고 80년대 이란 이라크 전에서도 이란 편에서 싸울 만큼 ‘친 이란 시아 정치 조직’이다. 이란이 늘 "미국의 지원을 받는 그 이라크 정부를 우리 역시 지지한다"고 말한 건 괜한 헛소리도 아니면서 고단수의 외교적 수사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란은 미국의 대 이라크 침공전쟁으로 가장 많은 것을 얻은 국가 중 하나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지원이란 건 사실 이란산 무기가 발견되었다든가, 무슨 무기를 몇 개 지원했느냐식의 협외한 시각으로 따지고 들 게 아니다. 오랜 정치적 동맹과 긴밀한 역사 속에서 따져본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무기와 군사 훈련 등에 대한 개연성도 포함하여. 이런 관점에서 지난 5월 28일 이라크의 치안 문제를 의제로 바그다드에서 4시간 가량 진행된 미국과 이란의 역사적인 만남은 미국의 중동질서 재편에 이란이 갖고 있는 결정력 혹은 도전력을 알리는 서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5·28 바그다드 회담은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과 미국이 외교를 단절한 이래 28년 만에 공식적으로는 첫 대면한 역사적인 만남이었다. 이란 주재 이라크 대사의 1년간의 설득으로 이뤄진 이 만남을 전후로 이란 언론들은 "이라크 치안 확보에 이란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거나 "이란-이라크 관계 다지기에 이라크가 미국 동의 따위를 얻을 필요는 없다"는 식의 보도를 반복해왔다. 대화는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지만 이라크 내 저항세력은 물론 아프간 탈레반에 대한 이란의 지원설을 반복해왔던 미국이 결국 이 치안문제를 들고 이란과 ‘대화’에 나선 것 자체로도 이란의 ‘협조’ 없이는 미국이 양 수렁, 특히 이라크에서 헤어나기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꼴이었다. 7월 17일 미국은 이란과의 대화를 다시 제안했다. 이란 외무부장관 마누체르 모타키는 "미국과의 두번째 대화 테이블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느긋하게 응수했다.

이란 협조 없이 이라크전 못헤어나

또 다른 전선을 하나 더 보자.

지난 7월 초 이라크 내 미군 당국자는 이라크 남부에서 체포된 헤즈볼라 대원으로부터의 자백받았다며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가 이라크 무장세력을 훈련시켰다고 주장했다. 비비씨는 준장 케빈 버그너는 자백한 헤즈볼라 대원이 이란 혁명 수비대와 연계된 시아 민병대 쿠즈 군과 함께 일해왔음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해 11월에도 미 당국자는 이미 1천~2천명 가량의 메흐디 군과 또 다른 시아 민병대들이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로부터 훈련을 받았다고 공표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필자가 접촉한 베이루트의 헤즈볼라 본부는 웃음으로 코멘트를 거부했다. 이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지난 해 여름 33일간의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모욕감을 안겨주었던 헤즈볼라는 지난 여름 전쟁 이후 더욱 강력해졌다고 자부하고 있다. 한편 재미난 현상 하나는 이스라엘 전쟁 종료 며칠간 레바논 남부에 퍼부었다는 그 위험 덩어리 집속탄의 ‘원산지’가 바로 미국이라는 점이다. 이 원산지를 근거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한다는 건 전혀 뉴스가치가 없지만.

이유경 특파원
지난 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전쟁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는 남부 티레.

이처럼 향후 중동 전선은 사실상 이란과 미국의 대립구도로 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지리적 위치까지 완전 갈라선 팔레스타인의 파타와 하마스를 보아도 예외 없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파타를 구슬리고 지원하며 ‘내 편’으로 만드는 한편, 이란은 하마스를 지원하고 있는 점이 또한 그렇다.

이란자체의 군사력도 만만찮다. 정규군도 있지만 군과 별도로 혁명 수비대도 있고, 또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몸바쳐 지뢰밭을 제거했던 바시즈 대원만 1천1백만 명 가량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압력은 이란의 역 부상에 최대 자양분이다. 이런 관점에서 미 언어학자 촘스키가 지난 6월 두바이의 한 언론에 쓴 글 중 이런 대립구도를 이해하는데 새겨들어야 대목이 있다.

"만일 이란이 멕시코나 캐나다를 침공해서 그들 정권을 무너뜨리고 주요 해군함을 카리비안 해역에 배치하면서 미국이 핵 에너지(혹은 무기) 프로그램을 즉각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을 파괴하겠다고 위협한다면 미국은 그걸 보고만 있겠는가?"

카불/테헤란/베이루트 이유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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