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나를 말하려면

책으로 보는 눈 [110] 최종규l승인2010.02.0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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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 킬로그램 안팎을 오락가락 하는 열아홉 달 아기를 한 팔로 안고 걸어다니면 팔뚝이 끊어질 듯합니다. 처음 십 분이나 이십 분은 그럭저럭 걷습니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이 넘어서면 고달픕니다. 아직 혼자서는 어른처럼 오래 걸을 수 없기 때문에 팔에 안든 등에 업든 합니다. 아기수레 없이 오로지 안거나 업으며 들일 산일 집일을 맡아 하던 지난날 어머님들 몸뚱이는 무쇠로 만들어졌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하루를 접고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온몸이 쑤시고 저리고 결렸겠지요. 그러나 옛 어머님들 삶을 알알이 담은 이야기나 문학이나 영화나 방송을 만나기란 더없이 어렵습니다. 흙냄새뿐 아니라 땀냄새 묻어나는 작품이란 드물고, 살냄새를 비롯해 비누냄새 배어나는 작품 또한 드물며, 밥냄새를 아우르며 똥냄새 녹아 있는 작품은 퍽 드뭅니다. 이른아침부터 열아홉 달 아기 똥과 오줌을 치우면서, 지난 열아홉 달 동안 제 손과 몸에 아기 똥오줌 내음이 짙게 배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 읽다가 접어두었던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지난달에 겨우 끝마쳤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나라밖 문학이라 할지라도 번역이 뒤틀려 있으면, 이 나라에서는 이냥저냥 읽을거리조차 되기 힘들겠구나 싶습니다. <알베르 카뮈 전집〉을 읽으면서도 이다지 이름높은 분 번역조차 왜 이렇게 얄딱구리한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고, 한문이 함께 달린 <골목길 나의 집>을 읽으면서는 ‘바로 밑에 한문이 달려 있는데 이렇게 우리 말 번역을 엉망진창으로 해도 되는가? 안 부끄럽나?’ 하는 생각을 지울 길 없었습니다. 먹고살기 바빠 ‘창작한 사람이 수십 해에 걸쳐 이룬 알맹이’를 ‘고작 몇 달이나 한두 해만에 끝마치고 책으로 내야 하는’ 우리 터전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나라 안팎 좋은 작품을 흐리멍텅하게 깎아내려도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 난 다음 어줍잖은 글솜씨로 느낌글을 적바림할 때마다 ‘나로서는 반갑고 고마운 책이라 느끼든, 나한테는 아쉽고 모자란 책이라 느끼든, 이 책 하나를 다루는 글을 쓰려 할 때에는 창작하는 사람이 이 책 하나에 들인 땀 못지않게, 때로는 이분들이 흘린 땀보다 더 땀을 흘리면서 느낌글을 적바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더 땀을 흘렸다 할지라도 제대로 못 읽거나 엉터리로 잘못 읽는 대목은 틀림없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제 서울마실을 하는 전철길에서 <환경가계부>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다 읽었습니다. 두 가지 책 모두 술술 읽혔습니다. 그런데 <환경가계부>에는 곳곳에 밑줄을 그으며 별을 그리기까지 했으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는 별을 하나도 그리지 못했고 밑줄은 몇 군데 긋지 못했습니다. 술술 잘 읽힌다고 해서 그리 좋은 책이 되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이는 저한테 똑같이 해야 하는 말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아무리 옳고 바르다 할지라도 가장 좋거나 아름다운 일이 못 될 수 있는 만큼, 더 바지런히 갈고닦아야 하며 더 고개숙여 귀와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환경가계부>에는 “아버지들은 환경가계부는 부인이나 아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길 바랍니다.(194쪽)”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우리 어른들, 더욱이 남자 어른들은 참사랑이 무엇인지 참말로 너무 모르며 살고 있습니다.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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