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기억하라

[시론] 손혁재l승인2010.02.01 12:14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지난 2008년 설 연휴 마지막 날 국보 1호가 숯덩이가 되었다. 남대문을 태워버린 불길은 많은 국민의 가슴 속에도 지울 수 없는 화상을 남겼다. 지난해 설을 앞두고는 ‘욕망’의 거대한 불길이 여섯 명의 소중한 목숨을 집어삼켰다. 막무가내 재개발로 엄청난 개발이익을 노린 건설자본과 재벌의 ‘욕망’, 그리고 테러를 전담하는 경찰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철거민농성을 진압해야겠다는 경찰 지도부의 ‘욕망’이 불행을 빚어냈다. 널름거리는 ‘욕망’의 불길은 마침내 국가와 공권력에 대한 신뢰와 기대까지 집어삼켰다. 2010년 벽두 또 다시 불이 문제다.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의 불똥은 들불처럼 거세게 번질 태세다.

세종시 수정안의 핵심은 국가균형발전의 포기다. 수정안이라는 이름도 어울리지 않는다. 문제점을 보완하는 수정안이 아니라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는 포기하고 그 대신에 충청권 민심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신도시 하나를 새로 만들어 주겠다는 사탕발림이다. 백년대계를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국가전체의 이익이나 하다못해 충청권의 이익이라도 될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지적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정안에서 오히려 도드라지게 눈에 띠는 건 재벌의 이익을 위해 애쓴 흔적이다. 평당(3.3㎡) 조성원가가 227만원인 땅을 36만원에 주겠다는 것은 명백히 국민혈세로 재벌에게 특혜를 베푸는 정경유착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에 대한 전례 없는 ‘1인 특별사면’과 삼성그룹의 세종시 투자 사이에는 검은 흥정의 냄새가 짙다. 초대형 국책사업인 과학비지니스벨트를 합리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세종시에 조성하겠다는 것도 다른 지역과 충청권 사이의 반목을 키우는 불씨가 될 수 있다.

행복도시 건설은 충청권의 민심을 겨냥한 선심성 사업이 아니다. 서울-지방의 심각한 격차와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국가균형발전정책의 하나이다. 손바닥만한 서울에 인구의 4분의 1이 몰려 있고, 수도권까지 따지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산다.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금융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대부분의 자원이 서울에 몰려 있다. 거꾸로 말하면 지방은 모든 것을 서울에 빼앗겨왔다는 뜻이다. 이런 불균형상태에서는 국가가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도시의 생산성 자체도 떨어지고 나아가 국가경쟁력까지 약화된다. OECD 나라들 가운데 우리처럼 수도권 집중도가 높은 나라가 없다.

지방의 인적 물적 자원을 다 빨아들이면서 국가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면 서울은 더 이상 성장의 발판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발전의 장애물이다. 서울의 과대성장은 이미 70년대부터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었고, 그래서 70년대 말에도 행정수도 건설이 추진되었다. 역대 정권도 서울과 수도권의 성장억제를 주요한 정책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서울의 팽창을 막지 못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과의 격차는 갈수록 더욱 벌어졌고 지방의 자생적 성장기능은 약화되었다.

이전까지의 많은 노력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로 중앙의 시각에서 거점개발방식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수도권을 국가발전의 중심으로 두되, 지방은 지방대로 살려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국가균형발전은 서울과 지방이 다 함께 발전하는 상생전략이다. 서울의 몫을 빼앗아 지방에 넘겨주는 것이 아니다. 서울의 상징성과 정통성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균형발전의 관점에서 행정기능을 재배치할 뿐이다. 행정기능 일부가 세종시로 옮겨가도 서울은 여전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시로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경제 사회 교육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은 여전히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서 큰 몫을 맡아야 한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통해 인구와 자원의 공간적 분산이 이뤄져야 지방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국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된다. 세종시 건설은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수도권을 새롭게 재편성, 재설계하고 나아가 나라 전체를 재배치하려는 정책의 하나이다. 세종시 문제는 지난 참여정부 시절 정부와 국회는 물론 사법부에서의 논의까지 거쳐 결정된 사항이다.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인 세종시는 원안대로 ‘행복도시’가 되어야 한다.

출범 백일도 지나지 않아 촛불민심과 부딪혔던 이명박 정부는 국민 앞에 소통의 부재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와 국민 사이에는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이려 한다면 또다시 촛불이 켜질 것이다. 촛불 하나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고 꺼지지만 촛불이 100이 되고 1천이 되고 1만, 10만, 100만으로 늘어난다면 어떠한 것으로도 꺼트릴 수 없게 된다. 촛불을 기억하라!


손혁재 한국 NGO학회장

손혁재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손혁재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