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흑인국가 아이티

[색깔있는 역사스케치] 정창수l승인2010.02.0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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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의 흑인공화국은 어디일까? 물론 그들의 공동체나 국가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 고 있다. 근대라는 잣대로 굳이 해석하자면 최초의 공화국은 1804년에 독립한 아이티이다.

아이티는 아메리카에서 두 번째 독립국가이고, 세계 최초의 흑인 국가이다. 당시 아메리카의 첫 번째 독립국가인 미국은 30년이 되지 않았고, 프랑스는 대혁명으로 나폴레옹이 집권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도 아니고 아메리카에 흑인의 최초공화국이 세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서구 제국들의 아메리카 발견은 재앙이었다. 전쟁과 전염병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이 대부분 멸종(?)된 것이다. 이런 표현을 하는 이유는 서구제국의 시각이 그랬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해서이다.

서구 제국들은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들을 대규모로 이주시켰다. 400여 년 동안 2천만 명이 넘는 노예들이 끌려와 아메리카 각지에 흩어졌다. 지금 도미니카와 아이티가 절반씩 차지하고 있는 히스파니올라 섬은 흑인이 가장 많이 이주한 섬이다. 콜럼버스가 처음 도착한 이 섬이 아메리카 원주민이 멸종한 첫 번째 섬이란 사실은 아이러니컬하다.

같은 히스파니올라 섬이 도미니카와 분열된 것은 인종구성 때문이다. 도미니카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인 물라토가 대부분을 형성하고 있지만 아이티는 흑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 도미니카는 스페인어를 쓰지만 아이티는 프랑스어를 쓰고 있다.

아이티는 몇 가지 커다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이티는 설탕플랜테이션이라는 근대적 공장시스템이 세계 최초로 들어선 곳이다. 이 말은 곧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노예노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의 공업생산품을 실은 배가 아프리카에서 노예와 맞바꾸고, 노예들은 서인도 제도에서 설탕과 럼주로 교환되었다. 이때 설탕을 ‘흰 화물’이라고 하고 흑인노예들은 ‘검은 화물’이라고 했다. 그들은 물건이었던 것이다. 이런 삼각 무역으로 사실상 노예들이 설탕에 팔려온 것이다.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은 이렇게 설탕에 팔려온 노예들이 1791년 무장봉기를 일으켜 최초로 흑인독립공화국을 세운 것이다.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을 지켜본 48만명의 해방 흑인노예들이 자신들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봉기하고 자신들을 지배하던 프랑스인들을 몰아냈다.

블랙 자코뱅으로 불리는 ‘투생 루베르튀르’ 등 독립지도자들은 새로운 자유국가 건설의 희망에 차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만의 자유와 평등이었고 ‘박애’는 생각하지 않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4만5천명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다. 기나긴 내전을 치루고 13년 만에 1804년에 아이티는 독립을 선언한다. 나라 이름 아이티는 멸종한 원주민 아라와크족의 말이라고 한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볼리바르를 비롯한 남미의 독립혁명가들을 고양시켰고, 중남미 전체에서 격렬한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여러 나라들이 연이어 독립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티는 플랜테이션이 해체된 뒤에도 서구에 대한 종속의 사슬이 끊어지지 않았고,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때 미국은 미국 내부의 흑인노예들이 동요할 것을 우려해 직접 군대를 보내 독립을 저지하려 했고, 60년 동안이나 국가 승인을 거부하는 등 압박을 했다. 당시 노예 소유주였던 제퍼슨 대통령이 이 정책을 주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1915년 미군이 주둔하면서 아이티는 사실상 미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된다.

UN은 유네스코의 제안을 받아들여 2004년을 ‘노예제반대투쟁 및 폐지 기념의 해’로 선언했다. 이것은 최초의 노예제 폐지국가인 ‘아이티’가 독립한 1804년을 기념한 것이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아이티의 독립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UN이 ‘노예제반대투쟁 및 폐지 기념의 해’라고 선언한 것은 단순히 노예제 폐지를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노예 문제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공식적인 노예만 2천700만 명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것은 지구상에서 억압과 폭력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최근 아이티의 지진이 전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랑스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가난과 침략, 독재의 수렁에서 신음하는 아이티인들에게 이번 일은 다시 일어서기 힘들 정도의 충격일 것이다.

30년에 걸친 미국의 장기 주둔, 이들의 지원으로 30년 동안 장기독재를 진행한 뒤발리에 부자(父子)의 망령이 아이티에는 살아있다. 그런 미국이 지진으로 아이티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최근 한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이 지난 100년간 개입한 전쟁에서 성과를 거둔 것은 4번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민주적으로 정권이 이양된 곳은 일본 한 나라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전례를 보면 아이티를 구원할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아이티의 운명은 그들 스스로 개척해 나가도록 하는 것, 그것이 아이티를 지원할 때의 중요한 관점이 되어야 한다.


정창수 편집위원

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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