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깊은 형벌관련 글자

강상헌의 한자이야기[17]-갚을 보(報) 강상헌l승인2010.02.01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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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갚다’ ‘알리다’의 뜻으로 쓰이는 보(報)자는 자원(字源)으로 볼 때 꽤나 으스스하다. 사람을 꿇어앉히고 어깨를 밀어 손을 속박(束縛)하는 수갑(手匣)인 곡(梏)에 채우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변한 글자다.

갑골문 시대의 글자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감옥(監獄)에서 죄목이 확정되어 죄인으로 처리되는 절차에서 나온 글자이며 모양이 비슷한 잡을 집(執)자도 촌수(寸數)가 같은 글자다. 이 글자처럼 형벌과 관련한 글자는 유래가 깊은 것이 많다.

발을 속박하는 장치인 차꼬는 질(桎)이다. 질곡(桎梏)은 차꼬와 수갑을 합한 말로 ‘속박 당함’을 의미한다. ‘질곡의 신세’와 같이 활용한다. ‘영어(囹圄)의 몸’도 같은 의미다.

‘(죄 값을) 받다’는 뜻에서 ‘갚다’로 인신(引伸)되어 쓰인 것이다. 인신은 잡아당기거나 펴서 늘린다는 뜻으로 비유적으로 쓰이는 단어다. 원래 형벌의 시원(始原)이 보복의 마음에서 비롯됐을 것임을 시사(示唆)한다. 그러나 은혜에 보답하는 것도, 원수를 갚는 것도 같은 보(報)자를 쓴다.

뜻이 엿가락처럼 더 늘어나서 ‘알리다’로 쓰인다. 혹은 죄 지은 이에게 형을 언도(言渡)하는, 즉 알리는 과정의 반영일 수도 있다. 죄(罪)를 알리고 죄에 대한 갚음을 요구하는 것을 말함이다. 언론의 보도(報道)와 같은 단어에 쓰이는 의미다.

본래의 의미가 남아 ‘재판하다’ ‘판가름하다’ ‘공초받다(供招)받다’ 즉 죄인이 범죄 사실을 털어 놓다는 등의 뜻으로 쓰인다. 처형(處刑)한다는 말로까지 그 뜻이 늘어나니 예로부터 범죄를 다스리는 다용도의 어휘(語彙)로 쓰인 줄을 알겠다. ‘알리는 일’이 이렇게 엄정(嚴正)한 일이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가르치는 것인가.

‘알 권리’와 이에 따른 언론의 개념은 비록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기는 하지만 춘추필법(春秋筆法)과 같은 중국의 역사기록 정신이나 조선시대 궁중의 일 특히 임금의 언행을 추호(秋毫)도 빠짐없이 적었던 왕조실록의 전통을 보면, 인류 공통의 본능의 발로(發露)에 짝하는 문명의 한 형태일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압력과 회유(懷柔)에도 불구하고 보도에 쓰이는 ‘붓’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도가 역사의 기초자료가 되며, 역사는 후세(後世)의 문화를 이끄는 향도(嚮導)가 된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권력이 쥔 홍당무와 자본이 내미는 사탕에 미혹(迷惑)되어 사관(史官) 또는 사관(士官)으로서의 마음을 잃었다면 언론은 참 부끄러울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옛 사람들의 지혜의 소산(所産)인지 이렇게 ‘알린다’는 보(報) 글자에는 엄혹(嚴酷)한 기준과 직업정신이 담겨있다.

요즘처럼 언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든 시기에 ‘알 권리’의 주인인 민초(民草)들은 참 황당하겠다. 알 권리가 절대적인 현대사회의 기준(基準) 중의 하나임을 주장할 민초들의 화난 목소리가 이들 언론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행하게도 알린다는 뜻 말고 이 글자는 우리 일상에서 보은(報恩) 보국(報國) 보답(報答) 보덕(報德) 보시(報施)처럼 ‘기쁜 뜻’으로 많이 쓰인다. 그러나 보구(報仇)와도 같이 ‘앙갚음’이라는 섬뜩한 말로도 쓰인다. 구(仇)는 원수(怨讐)를 뜻한다. 보복(報復) 보원(報怨) 따위도 그러하다.

‘행복(幸福)’ ‘다행(多幸)’ 등에 쓰이는 행(幸)자와 앞부분이 거의 흡사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이렇게 한자(漢字)는 때로 그 모양만으로 판별(判別)하기 어려운 경우가 자주 있다. 손을 속박하는 도구를 그리고, 그것을 오랜 시간 쓰다가 모양이 서로 비슷한 다른 글자(그림)의 모양을 빌려 붙인 것으로 추측(推測)할 수 있다. 한자가 그림에서 출발한 글자라는 점을 다시 상기(想起)시켜주는 경우다.

*한자교육원 예지서원 홈페이지(www.yejiseowon.com)

갑골문에서 찾은 갚을 보(報)자의 모양
토막해설-갚을 보(報)


흙 토(土)자 부수에 속한다. 부수자를 포함한 좌측의 모양은 수갑 족쇄 등의 형구(刑具)를 의미하는 ‘녑’ 또는 ‘섭’으로 읽는 글자이고, 우측은 ‘따르다’는 뜻의 ‘복’이라는 글자다. 갑골문(甲骨文) 시대부터 그림 한 장면에서 유래된 글자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나중 시기에 좌우 글자가 합쳐져서 이룬 회의자(會意字)로 보기도 한다. ‘죄인으로 하여금 형(刑)을 따르게 하다’ ‘죄를 심판하다’는 의미에서 ‘갚다’ ‘알리다’는 뜻이 파생(派生)한 것으로 읽는다.

강상헌 본사 논설주간 한자교육원 예지서원 원장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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