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비극의 원인은 중국의 석유시추술?

역사스케치66 정창수l승인2010.05.0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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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8년 중국에서는 조조, 손권, 유비의 위魏, 오吳, 촉蜀 세 나라가 자웅을 겨루는 삼국시대가 시작된다. 이중 촉은 대부분이 산간 지역이고 인구도 적어서 다른 두 나라에 비해 매우 불리한 조건에 있었다. 더구나 바다에 접하지 않아 소금을 구할 수 없었다. 북으로는 조조의 위나라가, 동으로는 오나라의 손권이 막고 있었고 남쪽은 베트남의 밀림이었다. 그러나 소금을 구하지 않으면 사람이 살 수 없는 법이다.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촉나라가 바다로 갈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유지하고 삼국통일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은 소금을 구하는 방법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촉나라 사람들이 쓴 방법은 지하수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땅속을 깊이 파면 지하수가 나오고 더 깊이 파면 염수층이 나온다. 소금기 있는 지하수인 염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지하로 1킬로미터 이상을 파고 들어가야 했다.

지하 1킬로미터를 파 내려가는 것은 우물 파듯이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고도의 시추술이 필요한 것이다. 더구나 4800척 즉 1.5킬로미터까지 파내려가는 것도 예사였다고 한다. 사람이 내려갈 수 없으니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고 마침 제철업의 발달로 다양한 도구가 있어 이것이 가능했다. 이때 케이블은 대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미 중국은 기원전 4세기경부터 이런 시추술로 염수를 끌어올려 큰 솥에 끓여 소금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지하에서 소금을 캐낸 것이다. 더구나 중국인들은 그 과정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도 발견했다. 그래서 연료로 사용하고 대나무로 만든 파이프로 수십 킬로 떨어진 곳까지 이동시키기도 했다.

당시 석유가 나오는 우물을 화정(火井)이라 하고 석유를 석칠石漆이라 불렀다. 요즘으로 치면 유전과 석유며, 대나무 파이프는 송유관이다. 비교적 최근인 1965년까지 중국 소금 공급량의 16.5%는 깊은 우물에서 퍼낸 염수로 만든 것이었다니 이 기술이 중국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석유는 다른 나라에서의 역사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석유는 매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사용되었고 구약성서에도 기록이 있으나 19세기까지는 주로 등화용으로 사용되었다. 시추술을 몰라서 지표면에 흘러나오는 적은 양을 사용하는 정도였고 따라서 대단히 귀하고 비싼 연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약이나 종교의식, 접착제, 미라 같은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했다.

그러던 중 1828년 앙베르라고 하는 프랑스인 선교사가 중국의 시추술을 유럽에 알렸다. 처음에는 중국의 기술을 불신했다. 아무래도 대나무 케이블로 1500미터를 파내려간다는 것을 처음부터 믿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차츰 증명이 되면서 과학계의 인정을 받고 1841년에는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은 철도 건설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이 시추술을 배웠다. 그래서 1859년 최초로 이 방식을 이용하게 된다. 이전까지 미국에서 시추 방식으로 쓰던 방법은 축락법이라고 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중국의 활시위 굴착법과 비슷한 것이었다. 중국의 삼국시대 기술 수준이었던 것이다.

서양이 석유시추술에 있어서는 중국보다 최소한 1900년이 늦은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의 전달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석유가 대량으로 공급되자 산업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자동차가 공급되고 전력 생산이 급증한다. 이른바 대량생산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이때 최대의 산유국인 미국은 엄청난 이득을 보았다.

그런데 이 기술의 발전과 산업화로 곤란하게 된 것은 중동이다. 중국의 시추술이 서구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만 하더라도 다른 지역에 비해 중동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아프간과 이란에서 러시아와 대립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식민지 쟁탈전은 주로 아프리카나 인도 혹은 태평양 같은 곳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1900년대 들어 석유 소비가 증가하면서 석유가 많이 매장되어 있는 중동은 1차 세계대전부터 격전장이 된다. 신이 내린 축복이 이들에게는 재앙이 된 것이다. 중동은 이 자원의 혜택을 몰랐고 사용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채굴 초기부터 석유자원은 유럽제국주의 국가의 소유가 되고 만다.

소금을 얻고 생존하기 위한 개발했던 평화의 기술이 중동에 저주가 되고 전쟁의 원인이 되어 돌아온 작금의 현실을 삼국시대 유비와 제갈량이 다시 와서 본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정창수 편집위원

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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