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강’ 개명 신청을 보며

“오늘 내 이름을 ‘사대강’으로 개명합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설마 내 이름까지 부르지 못하게 하지는 않겠지요.” 환경단체 활동가 4명이 서울 가정법원에 ‘사대강’으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신청했다. 선관위가 오는 6월 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4대강’의 ‘4’자도 꺼내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반발의 표시였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까지도 바꿔 ‘4대강’ 문제를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슈화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는 선관위 사전에는 없는 모양이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적용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의 4대강 사업 반대 캠페인에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다. 선관위는 이와 함께 무상급식 홍보 및 서명운동조차도 불법으로 규정했다. 선관위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통해 4대강 반대와 무상급식 등을 관철시키려는 시민단체의 움직임을 원천봉쇄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선관위가 과잉 규제로 지방선거를 관권 선거로 만들고 있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은 헛된 구호가 아닌 셈이다.

환경정의

환경정의 활동가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가정법원 앞에서 선관위의 법 해석에 불복하는 내이름을 '사대강'으로 개명한다는 기자회견을 갖고있다.

선관위의 주문대로 따를 경우 4대강 반대와 무상급식 전면실시 등 야권이 지방선거 핵심공약으로 채택한 선거쟁점에 대한 홍보나 설득은 원천 봉쇄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천주교와 불교 등 4대 종단 대부분이 선언한 4대강사업 저지 운동도 지방선거 때까지는 펼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선관위는 4대강사업 관련 현수막 게시와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한 4대강사업 찬반 홍보책자 배부 및 서명 등을 금지시켜 종교계의 4대강사업 저지운동은 원천봉쇄하고 있다. 종교계는 이미 4대강 사업 저지운동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천주교 주교회의가 4대강사업 반대운동을 선언한 뒤 매일 전국의 성당에서 4대강 반대 미사를 올리고 교구 차원에서 4대강을 찾아 기도회를 열고 순례행진도 하고 있다. 불교계도 종단차원의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계종은 불자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대강 생명 살림 수륙대재’를 갖기도 했다. 기독교 일부 교단도 4대강사업 저지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지방선거의 최대 쟁점이 되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돼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4대강 살리기’는 토건업자들의 배만 불리는 ‘4대강 죽이기’라는 인식은 널리 퍼져 있었다. 4대강 반대여론도 찬성여론을 압도했다. 여기에다 종교계가 광범위하게 가세함으로써 지방선거를 통해 4대강사업 저지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에 확고하게 다져져 있었다.

사태가 다급하게 돌아가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관제여론을 동원하여 이를 차단하려 하고 있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홍보교육을 강화하고 국민운동단체를 통해 홍보활동을 펴고 우호단체들로 하여금 찬성 성명서를 발표하도록 했다. 친정권 성향의 단체들이 ‘4대강 살리기 국민연합’을 결성했다. 또한 13억원을 들여 지역민영방송에 4대강사업 홍보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친정권 단체와 지역민영방송을 동원해 종교계와 시민단체의 활동에 맞불을 놓고 관제집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선관위는 이에 대해 사업과 관련없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국정설명회를 개최하거나 대중매체 광고, 홍보물 배포 등을 통해 광범위한 홍보활동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시민단체와 종교계의 일상적 활동을 ‘사실상 전면 금지’시킨 것과는 달리 정부의 광범위한 홍보 활동에 대해서는 ‘자제를 권고’한 셈이다. 그러나 선관위의 ‘자제 권고’에도 불구하고 정부 여당은 4대강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설 것을 결의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사업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선관위는 이에 대해 아무런 규제를 가하지 않고 있다.

선관위는 지방선거의 정책쟁점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토론을 봉쇄하겠다고 칼을 벼르고 있는 셈이다. 무릇 모든 선거는 정책을 중심으로 치러져야 한다는 것이 당위다. 그래서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 주요 정책을 구체적으로 공개 천명하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선진국에서는 정착돼 있다. 선관위의 이번 조치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시민단체나 종교계에는 벼린 칼을 들이 대고, 정부 여당에 대해서는 솜방망이를 내세우는 이중잣대의 행태마저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선관위의 ‘정권 눈치보기’를 지적하며 선관위를 ‘여당의 선거 도우미’로 규정하는 것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헌법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는 특히 선거과정에서는 폭넓게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만 유권자의 생활에 밀접한 주요정책에 대한 찬반토론을 거쳐 명실공히 ‘정책선거’가 이뤄질 수 있다. 그래야만 국민의 참정권도 보장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가 아예 없었던 과거 군사독재시절에는 개 이름에 최고통치자의 이름을 붙여 부르던 사람들이 있었다.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 호통을 치고 화가 치밀어 오르면 발로 걷어 차기도 했다. 애견과 방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현대인들은 그 맛을 모를 것이다. 더구나 동물이 주인공이 되는 TV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동물애호단체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선관위가 그 꼴을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