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장만하려는 분들 가운데 ‘이 자전거를 앞으로 몇 해 동안 몇 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으리라’ 헤아리는 분은 없으리라 봅니다. 자전거를 워낙 오래 타면서 브레이크 슈라든지 앞뒤 바퀴라든지 낡고 닳아 바꾸어 주어야 하는 줄 깨닫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아무래도 스스로 겪어내지 않는다면 느끼기 어려운 일이겠지요.

저는 자전거를 타고 살아온 제 긴 나날에 걸쳐 숱하게 넘어지고 박히고 다치는 가운데, 또 자전거 스스로 더없이 길디긴 거리를 달리며 부품이 모조리 낡고 닳는 바람에 더 탈 수 없이 되는 일을 겪으며 새삼 깨닫습니다. 자전거 또한 기계요, 사람 몸뚱이라면 쓰면 쓸수록 굳은살이 박히고 더 단단해지지만, 기계는 쓰면 쓸수록 낡고 닳아 나중에 더 못 쓸 날이 있음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지난 가을, 제 필름사진기 한 대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래저래 가난하게 사진을 찍다 보니 필름사진기라 해 보았자 꼭 한 대만 있었는데, 이 사진기는 ‘그동안 나를 참 오래 많이 부려먹었으니 이제 저는 쉬고 싶습니다.’ 하는 말을 온몸으로 들려주었어요.

한창 바지런히 사진을 찍고 있는 가운데 먹통이 되며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사진기를 어찌할 길이 없었는데, 그저 멍하게 사진기를 붙잡고 너털웃음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내 ‘그래 내가 참 미안했지. 이렇게 이 녀석을 오래도록 써 왔으면 이제 쉬도록 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살림이 가난하여 필름값 대기에 벅찬 줄 사진기가 진작 알아채고 조용히 숨을 거두어 준 셈’일는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엊저녁, 제 디지털사진기 한 대마저 숨을 거둡니다. 고마운 사진벗 한 분이 필름사진기 한 대를 빌려 주어 겨우겨우 필름사진을 함께 찍고 있었는데, 그나마 잘 쓰고 있던 디지털사진기가 숨을 거두며 먹통이 되니 눈앞이 캄캄합니다. ‘이를 어쩐다. 이를 어쩐다.’ 하는 말만 터져나옵니다. 갑갑하고 답답한 채 하루를 보내며 먹통이 된, 아니 숨을 거두고 만 디지털사진기를 만지작거립니다.

지난 한 해 반 동안 언제나 제 몸뚱이처럼 들고 다니느라 반들반들해진 이 녀석은 보름쯤 앞서부터 맛이 가려고 해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사진기 또한 한 대만 있으니 이 녀석을 쉬도록 해 준다거나 수리점에 맡기거나 하지 못한 채 그냥 쓰고 있었어요.

다시금 멍한 채 책상맡에 있는 《내 멋대로 사진찍기》(들녘,2004)라는 책을 집어듭니다. “독일제 렌즈의 성능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같은 사진을 니콘 렌즈로 찍었다는 이유로 좋은 사진이 나쁜 사진이 될 일은 없다고 믿는다(55쪽).”는 대목을 읽으며 밑줄을 긋지만 슬픈 마음이 풀리지 않습니다. 새 디지털사진기를 장만하려면 또 어디에서 빚을 내야 하는가 싶어 무겁디무거운 마음이 됩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거나 다잡으려 해 본들 다스려지거나 다잡히지 않을 테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을 고쳐먹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전거가 맛이 가는 일도 사진기가 숨을 거두는 일도 없지 않겠느냐고, 내 자전거와 사진기가 하나씩 목숨을 다하는 일을 겪을 때에는 그만한 뜻이 있으며 그만큼 내 어리고 어설픈 넋을 일깨우려는 깊은 사랑이 있으리라고.

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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