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옮기는 마음

예부터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호박씨를 까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 했고, 듣지도 말라 했습니다. 제아무리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닦아세우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이란 깎아내리기나 닦아세우기나 호박씨 까기가 아니니까요. 사랑을 담은 타이름이거나 믿음을 실은 어루만짐이거나 따스함을 머금은 껴안기이거나 넉넉함을 나누는 토닥거림이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부드러이 타이르거나 어루만지거나 껴안거나 토닥거리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조금도 민주주의와 가까이 사귀지 않는 정치꾼이나 공무원을 바라보면서 사랑스레 타이르기란 어렵습니다. 하나도 평등과 평화로 나아가고자 하지 않는 권력자나 기업꾼을 마주하면서 살가이 껴안기란 쉽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먹다짐이요 돈으로 사람을 업신여기는 이들하고 부대끼면서 따순 웃음으로 맞아들이기란 고단합니다. 착한 마음이든 다소곳한 매무새이든 찾아볼 길이 없는데다가 거칠고 막되먹은 이들한테 짓눌리면서 고운 손 내밀거나 맞잡기란 여느 넋이나 얼로는 어림조차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랑과 믿음으로 서로를 마주해야 할 사람입니다. 4대강 막개발이든 숱한 못난 짓이든 저지르는 정치꾼을 내 아이나 내 동무로 여기면서 이들을 알맞고 바르며 착한 길로 접어들도록 다스릴 수 있는 넋을 일구어야 합니다. 멀리 인도라는 나라에서 살던 간디 같은 분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나라 천성산 둘레와 낙동강 언저리에서 사랑과 평화를 찾는 지율 스님 같은 분을 떠올리면서 곰곰이 짚을 노릇입니다.

왜 이분들은 하나같이 착한 평화와 고운 민주와 살가운 평등과 넉넉한 통일을 꿈꾸면서 ‘주먹다짐이나 팔뚝질’ 같은 몸짓조차 보여주지 않는가를 살필 노릇입니다. 잘못을 했으니 틀림없이 비판해야 하고, 엇나가고 있으니 어김없이 꾸짖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비판이든 꾸짖임이든 참말 우리들이 사랑이나 믿음이나 따스함이나 넉넉함을 담으며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밥을 제대로 안 먹을 뿐더러 잠자리에서마저 칭얼대는 두 돌박이 아이를 달래며 고달픈 몸을 건사하기란 퍽 괴롭습니다. 아이가 왜 이러는가 싶은 마음을 달랠 길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괜히 짜증만 부리거나 골을 내지는 않습니다. 아직 아이가 어른이 알아들을 말을 하지 못할 뿐이요, 어른인 제가 아이 말을 못 알아들으니 답답하고 갑갑합니다. 어른과 어른 사이에서 맞은편 어른이 ‘아이고 힘들어, 아이구 아파, 아구구구 고단해.’ 하고 읊는다면 어른인 저로서는 금세 알아채며 ‘그래요, 그럼 얼른 쉬셔요. 나머지 일은 제가 하지요.’ 하겠지요.

그림책 《부끄럼쟁이 해마》(비룡소,2007)를 보며 생각합니다. 이토록 좋은 그림책을 우리 말로 옮긴 분께서는 왜 이리 엉망진창으로 옮겼을까 하고. 이렇게나 어린이 눈높이를 살필 줄 모르고 우리 말글은 헤아릴 줄 모르는가 하고. 여러 날 속이 쓰리고 갑갑하며 슬픕니다.

그러다 문득, 우리 집 아이 칭얼거림을 여러 날 내내 복닥이면서 아이한테 섣불리 목소리를 높이며 다그칠 수 없듯, 번역을 옳게 못하는 분들한테도 따숩게 건넬 말마디를, 좋은 어린이책에 좋은 넋을 고이 담을 좋은 번역을 해 주십사 하는 말씀을 들려주도록 내 마음을 먼저 한결 넉넉하고 좋게 보듬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참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