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공정한 사회

“누구에게든지 균등한 기회를 줘야한다는 게 공정사회의 기본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사람이 더 내고 적은 사람은 적게 내는 복지를 통해 모든 분야에서 기회를 균등하게 주자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중소기업 대표들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제시한 공정사회의 기준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대기업과 기득권층,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펴왔던 이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등 대기업 대표들과 조찬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또 기득권자가 불이익을 받고, 권력과 이권을 동시에 가져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나 이 대통령이 쿠데타 세력의 수반이 되었는가’ 라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그만큼 이명박 정부의 기존 정책기조와는 완전히 상반되기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공정한 사회’라는 구호를 들고 나선 것은 뜬금없는 얘기로 들릴 수 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정부의 이러한 듣기 좋은 구호는 그저 슬로건으로 끝난 선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정통성 없는’ 세력들은 허울뿐인 구호를 내세운 경우가 많다. 전두환 정권이 가장 전형적인 사례다.

민주화를 외치던 광주시민을 무더기로 학살하고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내세운 구호는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이를 위해 사회정화위원회를 설치하고 ‘과외금지’와 ‘불량배 소탕’ 등 대국민 쇼를 벌였다. 당시 국민은 언론을 통해 삼청교육대에서 봉체조를 하는 문신투성이의 깡패들을 보며 안전한 사회를 꿈꾸었다. 과외금지는 사교육비에 시달리던 서민의 환영을 받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의 ‘정의사회 구현’이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집권자와 기득권층의 비리가 속속들이 드러났고 선량한 시민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다가 죽기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전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층은 부정한 방법으로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끌어 모았다. 그들이 내세운 ‘정의사회’는 자신들의 비행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에 다름 아니었다. 구호와 정책이 완전하게 따로 노는 최악의 사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를 전두환 정권의 그것과 동일하게 비교하는 것은 억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이 그랬듯이 이명박 정부의 과거 행태나 이력이 ‘공정한 사회’라는 구호와 어울리지 않아 ‘뚱딴지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도 없다. 집권 초기 이명박 정부는 ‘고소영’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친위정부를 구성하여 부자감세와 같은 ‘강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펼쳐왔다. 집권층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누리지 못했던 권력을 향유하려 했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의 고위층 인사들이 거의 모두 ‘반칙왕’이었다는 사실은 지난 8.8개각 이후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허위취업 등 반칙을 저질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결국 총리와 장관 후보자 등 3명이 물러났다. 이 대통령이 사과했지만, ‘반칙왕’들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는 현실이 우습기만 하다. 게다가 지난 대선때 이명박 캠프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공기업 사장이나 임원으로 가 있다. 이게 공정한 사회인가?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딸 특혜 등용 스캔들로 불거진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현대판 음서제도’는 불공정사회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위 권력층이 부와 권력을 ‘세습’하도록 만들어진 우리 사회의 썩어빠진 현실은 국민을 좌절하게 한다. 나아가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중국의 신화통신은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 친족 등용 스캔들로 사임함에 따라 한국 정부가 이제 막 시작한 '공정한 사회' 캠페인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후반의 국정기조로 선포했던 공정한 사회란 개념은 그와 정반대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스캔들 때문에 진의를 의심받게 됐다”고 했겠는가. 유 장관의 사임이 ‘공정한 사회’를 세우려는 이 대통령의 진정성에서 나온 결과인지에 대해 많은 외신들이 의구심을 표명했다.

이명박 정부의 구호와 정책이 따로 논다는 지적도 따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녹색성장’이다. 친환경을 내세우면서도 국토를 파헤치는 삽질은 멈출 의사가 전혀 없다. 천주교 불교 등 4대종단과 시민단체, 그리고 절반이 넘는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은 끈질기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4대강 살리기’란 구호도 잘 들여다 보면 ‘4대강 죽이기’인데도 말이다. 이번에 새로운 구호로 등장한 ‘공정한 사회’도 실제로는 ‘불공정한 사회’가 될까보아 두렵기만 하다.

이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 구호가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구체적이 정책을 실천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를 이루고 싶다면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실적 만능주의와 개발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밀어붙이기 대신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 국정운영으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부자감세와 같은 공정성을 해치는 정책들은 즉각 폐기해야 한다. 또한 고위공직자들 중에서 공정한 사회에 어긋나는 사람들은 반드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최소한의 기준을 사회적으로 세우는 일은 중요하다. 이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 구호가 국면전환용으로 인기투표처럼 끓어올랐다가 며칠 지나면 완전히 잊혀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