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이 떠중이

색깔있는 역사스케치 70 정창수l승인2010.10.0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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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실록> 숙종 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성균관 앞 반촌의 한 아낙이 나물을 캐다가 땅에 묻힌 노끈을 발견했다. 그래서 잡아당겨 보았더니 끈이 대나무 통과 이어져 있었고 그 대나무 통은 과거 시험장이었던 성균관 반수당(泮水堂)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대나무 통을 길게 묻어 그 속에 노끈을 넣은 후 시험문제를 묶어 밖으로 내보내고 답안을 전달받았던 것이다. 왕은 대노했고 범인을 잡으라는 엄명이 떨어졌지만 결국 잡지 못했다. 자리가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시험에는 항상 부정이 있다. 성균관 유생들이 만든 부정 답안이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당사자인 유생은 두고두고 치욕거리일 것이다. 부정행위는 시험 제도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다. 얼마 전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도 커닝을 막기 위해 답안지에 색깔을 넣기로 했다고 하니 커닝에는 동서양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조선시대에 부정시험으로 적발된 자는 시험 응시가 두 차례(6년) 박탈되었다. 남의 시험지를 써준 사람에게는 곤장 백 대에 징역형인 도형 3년의 중형을 주었다. 그만큼 과거의 공정성은 중요한 국가적인 과제였던 셈이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옥의 <류광억전>에 따르면 족집게 대리시험 전문가 류광억은 의뢰인에게 받은 돈의 액수에 따라 답안지 수준을 조절할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과거시험 응시자가 늘어난다. 10만 명에 이르기도 했으니 장소를 구하기도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사흘에 걸쳐 시험을 치른 때도 있었다. 시험관들은 채점을 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때 시험은 일종의 논술인데 10만 명의 답안지를 읽는 것은 지금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앞의 답안지를 먼저 보거나 앞부분만 읽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시험장에 먼저 가서 앞에 앉아 시험지를 먼저 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밤새워 기다리다 시험장이 열리는 순간 뛰어 들어가 자리를 차지해야 했다. 이럴 때 몸싸움은 필수였다. 이것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선접군이라고 불렀다. 이 선접군이 ‘어중이떠중이’의 기원이다. 시험도 안 보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시험장에 꽉꽉 들어찼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예 대리시험을 치든가 몇 명이 함께 들어가 답안지를 나눠 쓰고 합해서 내기도 하고 돈을 주고 먼저 낸 답안지사이에 끼워 넣기도 했다.

가장 악질적인 것은 타인의 합격을 훔치는 것이었다. 채점 후에 합격 답안지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게 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이것은 조직적인 공모가 없으면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영조 대에는 합격자들에게 자신의 답안을 외우게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과거시험의 부정행위 기록은 태종 때 처음 등장한다. 경승부윤 김점의 아들이 문과시험을 치렀는데 그 답안을 고쳐 쓰게 해 적발되자 태종에게 용서를 빌었다는 대목이다. 중종55년에는 참고서적의 글씨를 잘게 써서 머리카락과 입 속에 넣어 들어왔다는 기록도 보여 과거에도 오늘날의 커닝 페이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과거는 시험으로 인재를 뽑았다는 점에서만은 아주 선진적인 제도였다. 인재를 등용할 때 중국과 우리나라만이 시험으로 뽑았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송나라 때는 커닝을 막으려고 방 하나에 한 명씩 들어가서 며칠씩 보게 했다. 그러자 속옷에 빽빽이 답안을 적어 들어가거나 만두 속에 커닝페이퍼를 숨기기도 했다.

1858년 청나라에서 과거시험 부정사건이 일어났다. 포광이라는 감독관이 중앙정부의 장관 청탁을 받고 수험생의 부정을 눈감아줘 그 수험생이 급제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들통 나는 바람에 감독관은 물론 총감독관의 책임을 맡았던 장관까지도 사형당했다. 그만큼 시험부정에 대해서는 법도가 추상같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화기에 우리나라 신식학교에서 커닝이 심하자 망국론까지 나왔다. 그런데 지금 부정시험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아무리 엄벌해도 시험장의 부정수법은 시대에 따라 더 첨단화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번 시험으로 모든 것이 결판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처방 없이 단속만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에 외교부 공무원 특채문제 등이 발생하면서 고시제도로 획일화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어떤제도든 문제를 항상 안고 있다. 항상 운영의 문제이고, 다양화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도록 노력한 시험응시생들이 이미 결정된 사람들을 들러리서는, 그야말로 ‘어중이 떠중이’가 되어버릴 것이다.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

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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