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상영했던 <7급 공무원>이란 영화를 보면서 문득 나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임금님 시대에는 공무(公務)를 담당하던 무반(武班)과 문반(文班)이 있었다. 공무로 입궁하여 서로 구별되는 의관(衣冠)을 입고 구별하여 앉았다. 무반은 자신들은 ‘목숨을 바쳐’ 나라에 충성하는데, 문신(文臣)들은 편하게 글줄이나 읽고 사리사욕에 눈이 어둡다고 질책한다. 문반 역시 질세라 정사(政事)에 밤낮으로 ‘고민’하는데, 무신(武臣)들은 변방에서 한가로이 지낸다고 반격한다. 나라 사정이 혼란한 상황을 그려내는 시대극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지금도 예전과 다르지 않다. 공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간단하게 구분하면, ‘제복(制服)’을 입고 공무에 임하는 군인, 경찰, 소방 등이 있고, 나머지는 특별하게 구분없이 ‘옷’을 입는다. 제복은 업무의 특성과 목적을 쉽게 알 수 있고, 행동에 제약도 따른다. 또한 공무 본연의 목적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의 천안함 사고나 소방관의 참사 등등, 그만큼 커다란 사명감이 필요할 것이다. 이들은 목숨이라는 귀중한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공익수행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잃지 않도록 ‘훈련’을 거듭하고 ‘학습’한다. 맡겨진 공무는 귀중한 목숨을 지켜내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각의 업무 특성에서 오는 중압감을 감내하고, 게다가 귀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본연의 공무를 수행한다. 그래서 비교적 선진화된 국가에서는 Civil Service에의 헌신을 사회가 인정하고 우대하며, 소중하게 생각한다. 더욱이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공무를 마치면 제복을 벗는다. 정년이 되면 옷을 벗는다. 또는 업무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면 옷을 벗는 경우도 있다. 이로써 각각의 공무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즉 옷과 제복이라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과는 조금 불편한 관계인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이 무신의 숙명이고, 숭고함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머지 공무원들은 특별한 구분이 없이 옷을 입으니, 어떤 공무를 수행하는지 알 수도 없고, 비교적 자유롭다. 목숨을 바쳐야 할 정도의 사명감이 필요한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훈련을 거듭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공무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제복을 입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바칠 수 있겠는가? 목숨을 대신할 것이 있을까? 말할 것도 없이 공무에 대한, 그리고 국민과 사회, 나라를 위한 ‘성심(誠心)’과 ‘성의(誠意)’를 바쳐야 한다.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성심을 다하고 성의가 드러나야 한다. 이래야 ‘충직(忠直)’하다고 말한다. 이를 배양하기 위해 훈련하고 학습해야 한다. 어떠한 성심이고, 어떠한 성의인지는 공무가 추구하는 고유한 가치를 잣대로 삼고, 그 시대와 그 상황에 적합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학습하고 훈련해야 한다. 충직해야 할 공무에 차질이 생긴다면 개선하고 대체(代替)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민(苦悶)’해야 한다, ‘심사숙고(深思熟考)’해야 한다. 예나 지금의 무신들의 목숨과 비할 수 있으려면 거듭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성심성의는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장 보편적인 잣대는 언행(言行)과 몸가짐이다.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쉽게 드러나고 확인할 수 있는 언어(言語)와 행동(行動), 그리고 태도(態度)다. 이것을 근거로 공무에 임한 인물을 판단하고 재단할 수 있다. 공손함이 만사임이 아님을 안다. 고민 끝에, 심사숙고 끝에 드러난 언어와 행동, 그리고 태도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투리가 심해 공무수행에 지장이 있다면, 개선하고 고쳐야만 한다. 이것이 고민한 결과가 된다.

그래서 ‘교육’이라는 공익을 수행하기 위한 학교라는 곳이 더욱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 같다. 제복을 입지 않는 나머지 공무원 중에서도 비교적 쉽게 드러난다. 학교라는 지정된, 그리고 한정된 공간을 통해, 지역사회가 알고, 학부모가 알고, 그리고 학생들이 알고 있는, 꽤나 개방된 공공기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고민하고 심사숙고해서 언어와 행동, 그리고 몸가짐에 모든 신경이 쏠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 만큼 배움의 장을 존중하고, 구성원을 예우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옷을 입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아무튼, 보이든 보이지 않든 항상 공복(公僕)으로서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 공무원이다. 이 옷이 맞지 않거나, 또 그렇게 보인다면, 그 ‘옷을 벗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요즘은 누구나 입고 싶어 하는 옷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에게나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올 가을,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청문회가 한창이다. 의혹도 많고 거짓말도 많다. 결론은 장관이 된다면 국민과 나라를 위해 “무엇을 바칠 것이냐” 그리고 “어떻게 바칠 것이냐?”로 귀결된다. 그런데 공무를 담당하려면 목숨을 바치든, 성심과 성의를 바치든 해야 한다. 목숨을 바치되 거짓으로 할 수 없듯이 성심과 성의도 그렇다. 어느 것 하나도 바칠 수 없는 과거나 현재가 있다면, 미래를 위해 ‘옷을 벗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신이 아닐까? 아니면 ‘자 막대기’(잣대)로 손바닥을 맞든지. 그러면 자유로워질 텐데.

이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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