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국가인권위원회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이 현병철 위원장의 독단적인 조직운영과 인권위의 독립성 훼손 등에 항의하며 동반 사퇴했다. 또 다음날 인권위 내부 게시판에는 인권위 직원들이 현 위원장의 파행적 운영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직원들은 "합의제 기관에서 위원장은 마치 독임제 기관의 장처럼 의사봉을 두드리고 '독재라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입에 담기 어려운 발언을 쏟아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현병철 위원장 체제에서 국가인권위는 그동안 식물위원회 같은 행동을 적지 않게 했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관한 검찰수사, 야간시위위헌법률심판 제청, 민간인 사찰, 국방부 불온서적지침 등 인권침해사례에 대해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못했다.

두 상임위원의 동반사퇴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위원장이 임의로 안건을 전원위로 넘길 수 있게 되고, 또 두 달 동안 안건도 올리지 않은 채 사실상 개점 휴업해 있는 전원위에 비해 수시로 모여 의견을 표명해온 상임위의 권한이 대폭 축소됨으로써 인권위 고유 기능이 무력화될 게 뻔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다. 마지막 남은 상임위원인 장향숙 위원마저도 “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이 전원위에서 의결되면 내 거취 문제를 고려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우리는 인권위가 이 지경까지 전락한 근본책임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은 정권출범 초기부터 인권위를 귀찮은 존재로 여겼다. 우리는 당선자 시절 인수위가 인권위를 대통령직속으로 변경하려다 유엔인권대표의 항의서한을 받았던 사실을 기억한다. 지난해 행정안전부는 인권위 직제령을 개정해 조직을 21% 축소했다. 지난해 6월에는 임기를 4개월여 남긴 안경환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이임사로 인권위 위상추락을 경고했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현 위원장은 인권에 대한 경험이나 연구가 전무한 사람이어서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는 부적격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현 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현 위원장은 1년여 동안 독단적 운영을 강행, 인권위를 끝없이 추락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용산참사, 촛불집회, 민간인사찰, KEC노조지부장의 분신 등으로 인권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한국의 인권 실체와 인권위원회가 사망할 수준에 다다른 현 상황을 벗어나려면 최우선 해결책은 현 인권위원장의 즉각 사퇴다.

인권위의 발전과 역사적 사명감에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권위의 수장인 현병철 위원장이다. 찢겨진 날개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국가인권위를 살릴 수 있는 첫 걸음이 바로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다. 썩어가는 상처는 도려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 몸통이 썩어 가기 때문이다. 현재 인권위의 위기는 인권의 위기이기도 하다.

G20정상회의에 온 각국 정상들이 인권의 국가기구의 ‘롤모델’이었던 인권위의 실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다른 나라 정상들의 눈에는 한국이 정상국가라고 인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먼저 대통령부터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인권위원장 선출-임명 등 인권위 제도 개선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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