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덕지(體德知) 혁명’을 말하자

‘잘난 이’는 많은데, ‘어진 이’는 어디에? 강상헌l승인2011.01.2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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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여 사는 동네의 여러 규범(規範)은 세상을 제대로 돌게 하는 도구다. 그런데 이 규범이 시간이 지나거나, 생각의 틀이 바뀌면 코미디처럼 망가지곤 하는 것을 역사는 가끔 보여준다. 이 규범을 구성하는 언어 또한 고도의 상징성으로 시민들을 옥죄기도 하는데, 때로는 하릴없이 공기 빠진 풍선이 된다.

엄혹한 독재자 박정희 정권 때 우리는 ‘사회 전반’을 이르는 개념으로 마치 공식처럼 ‘군관민(軍官民)’이라고 썼다. 별다른 뜻이나 정치적인 함의(含意)없이도, 가령 “군관민이 합심하여 수해재구 이재민을 도웁시다.”하는 식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물론 이 단어의 생산과정은 정치적이었을 것이다.

첫째는 군대(軍隊)고, 둘째는 관청(官廳)이다. 국민(國民)은 세 번째, 즉 꼴찌였다. 군관민은 당시 너무도 당연했다. 다른 순서의 낱말은 없었다. 이런 우선순위는 당시의 규범이었고, 이를 표시하는 언어는 당연히 그 순위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정권을 따라 국민이 주인이 되기도 하고 ‘졸(卒)’이 되기도 하지만, 최소한 공식적인 어법은 ‘민관군(民官軍)’으로 정착됐다. 요즘에는 ‘군관민’이란 단어를 접해보지도 못한 이들도 있다. 특히 정치인들, 선거 때 사탕발림인지 항상 그런 마음인지는 헷갈리지만, 국민이 최우선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가 개안(開眼)을 넘어 개벽(開闢)의 상황을 맞고 있다. 나라의 경제력은 튼실해지고, 재빨리 진보하는 세계의 기술문명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우리는 산다. 국운(國運) 또는 나라의 품격(品格)이란 자랑찬 어휘도 가끔 듣는다. ‘군관민’이 ‘민관군’이 된 것도 보람이다. 그런데 하필 이 단어와 그 뜻만은 왜족(倭族) 치하 식민지의 굴레를 한 자락도 벗지 못한다. 교육의 규범 중 하나,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어떤 사람으로 키워낼 것인지의 우선순위에 관한 생각이다. ‘지덕체(智德體)’라는 말, 그 아래 숨은 우리 사회의 ‘잠재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지덕체 교육’이 현재까지의 사고(思考) 구조다. 지적한 대로 여러 개념이 낱말을 이룰 때 순서는 이념을 나타낸다. 지식과 지략(智略)이 우선이고, 덕(德)은 다음이며, 신체의 바른 성장을 이르는 몸 즉 체(體)는 꼴찌다. 많이 알고 꾀가 많은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체육을 제대로 공부한 이들 아니면, 건강한 신체가 교육의 우선이자 으뜸가는 목표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이들은 제외한 우리 사회 구성원의 거의 모두는 ‘좋은 대학’과 출세를 실질적인 교육의 과녁으로 삼는다. 특히 자신의 자녀를 끔찍이 사랑해 마지않는 엄마와 아빠들, ‘역시나’다. ‘체육인’들마저도 상당수 ‘역시나’에 포함된다. 왜? ‘현실’이니까.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틀을 대강이나마 결정짓는 것은 학교에 다니는 기간까지의 활동이다. ‘교육’이라고 일컫는 이 과정은 신체의 단련을 통해 튼튼함을 얻고, 튼튼함이 주는 여유로움으로 어진 성품(性品)을 얻으며, 어진 성품을 세상사를 걸러내는 거름망으로 삼아 보배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다.

‘건강한 신체에 깃드는 건강한 마음’(A sound mind in a sound body)은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가 남긴 금언이다. 우리에겐 이 말이 ‘체육대회’의 슬로건이지만 그는 이를 ‘세상이 행복한 모습’이라고 했다. 존 로크의 세계관인 것이다.

인용한다.

‘...암기식 주입주의를 반대하고 수학적 추리와 체육(體育), 덕육(德育), 지육(知育)을 강조하였으며, 그 사람의 소질을 본성에 따라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존 로크가 썼다고 한다. 그런데 큰 아이러니다. 이를 설명한 우리 교육관련 서적 중에는 이 순서를 굳이 ‘지, 덕, 체’로 바꾼 것이 대부분이다.

사전은 체육을 ‘건전한 몸과 온전한 운동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라 푼다. 몸과 마음의 연결고리가 없다. 역시 지덕체의 순서가 품은 음습한 이데올로기가 배어있다. 아는 것과 꾀가 많아야 인정받는 사회가 만드는 참혹한 모습을 우리는 날마다 보고 신음한다. ‘잘난 이’는 많은데, ‘어진 이’는 어디에 있는가? 교육이론을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래 굳은 이 숙어가 품은 뜻이 우리 사회의 곧지 못한 모습을 혹은 상징하거나, 혹은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뜻 깊은 이들과 전문가 여러분들에게 정중하게 여쭙고자 하는 것이다.

해답이 눈앞에 있다. 아이들을 사람답게 키우는 것이다. 사람은 생명이다. 생명은 하늘이다, 섭리(攝理)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이 건강하다. 체덕지가 맞다.

“단결하라! 지덕체를 체덕지(體德知)로 바꾸는 ‘무혈혁명’에 나서라! 함께 나라를 살리자.” 어진 뜻 가진 여러분, 전국의 체육인, 체육교육자 모두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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