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숲 노닐기-말씀 언(言)/한자 마을에서 ‘말’이란 뜻을 표시하는 대표 단어

"말은 사상(思想)의 옷"

정말 말 많은 게 말입니다. 이런 시조(時調)도 있지요.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말 것이/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라고요. ‘말이라고 다 말이냐, 말이 말 같아야 말이지.’하는 빈정거림도 실은 말의 본디를 꿴 것이겠습니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은 그 안에 말의 여러 성질을 함께 보듬고 있는 4자성어 즉 숙어(熟語)입니다.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는 황당한 상황, 즉 ‘말이 안 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의 어원(語源)은 뜻밖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언어의 길이 끊긴)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이르는 불교용어입니다.

(사진)말씀 언(言)자의 고대글자 변천. 위로부터 갑골문 금문(金文) 소전(小篆) 예서(隸書)

문자의 쓰임에는 이렇게 해석도 비슷하지만 그 결말(結末)은 다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에도 ‘뜻밖의 뜻’이 있네요.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좁은 입으로 말한 것, 넓은 치맛자락으로도 못 막는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말 하면 백 냥이요, 입 다물면 천 냥이라.’ 말에 얽힌 말, 끝이 없습니다.

18세기 영국 시인 S. 존슨이 후세에 마련해준 ‘말은 사상(思想)의 옷’이라는 정의는 아직 꽤 쓸 만합니다. 생각을 나타내는 방법 또는 틀이란 뜻입니다. 요즘 흔히 프레임(frame)이라고 하는 영어 단어의 뜻과도 맞아 떨어지는군요. 표정이나 글도 있습니다만 말이 그 중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에 관한 말’이 너무도 많지요.

입 구(口)자가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갑골문 글자들. 왼쪽부터 달 감(甘), 이빨 치(齒), 혀 설(舌), 말씀 언(言)

말씀 언(言)은 한자 마을에서 ‘말’이란 뜻을 표시하는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입 구(口)와 가로 왈(曰)은 거의 같은 촌수(寸數)의 친척 사이지요. 어(語) 담(談) 설(說) 등이 ‘말씀’이란 같은 훈(訓)을 가집니다. 말 잘할 변(辯)도 같은 뜻이지요. 모양은 좀 다르지만 사(辭)나, 혀 설(舌)자를 세 개나 붙인 화(?)라는 단어도 ‘말’이라는 같은 뜻입니다.

語談說은 글자 앞에 모두 언(言)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 단어들은 言부수(7획)자이고 대략 ‘말’이라는 뜻이며, 뒤에 붙은 오(吾) 염(炎) 열(兌)에 따라 각각 소리[성(聲)]가 달라집니다. 언(言)에 다른 글자를 붙여서 語談說을 이룬 것과 같은 문자의 조립방법을 ‘형성(形聲)’이라고 합니다. 언(言)은 뜻[형(形)]을 주로 결정합니다.

악기 물고 있는 모습 그려

갑골문의 생긴 모양 중 하나. 뼈에 새기거나 그렸다.

吾炎兌자가 소리요소이기는 하지만 [ei bi si]하고 a b c를 읽는 영어의 발음기호와는 개념이 좀 다릅니다. 형(形)은 큰 뜻을, 성(聲)은 소리도 만들면서 形의 큰 뜻을 보충하는 작은 뜻을 짓는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뉘앙스를 만든다고나 할까요. 프랑스어로 여러 나라에서 널리 쓰이는 ‘뉘앙스(nuance)’란 말은 미묘한 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語)는 ‘일반적으로 주고받는 말’, 담(談)은 ‘차분한 대화나 이야기’, 설(說)은 ‘주의 주장이나 논리적인 설명’을 각각 의미하는 것입니다. 큰 틀의 뜻을 비슷하지만 그 쓰임새가 각각 다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변(辯)은 매울 신(辛)부수에 속합니다. 언(言)을 ‘맵다’는 辛자가 양쪽에서 감싼 모양이군요. 말을 맵게 하는 것이 말 잘하는 것일까요? 변호사(辯護士)가 말도 잘해야 하는 직업임을 이 글자를 보고 새삼 실감합니다. 사(辭)도 신(辛)부수자입니다. 그러나 어원으로 따지자면 辛자가 여기서 꼭 맵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언(言)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고대 그림문자에서는 입[구(口)]과 혀[설(舌)]를 합친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 입이 나팔과 같은 소리 내는 기구(악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고도 합니다. 이 혀 또는 나팔의 모양이 나중에 비슷한 모양의 辛자로 둔갑(遁甲)하였다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맵다’는 뜻과는 상관이 없는 변(辯)자나 사(辭)자에 辛자가 들어있는 이유라고나 할까요.

혀 설(舌)부수자인 화(舙)는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닙니다. 그러나 한자가 옛 사람들의 그림으로 시작되어 세밀한 의미까지를 상징하는 표의(表意)문자 즉 뜻글자로 점차 전개됐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증거입니다. 설(舌)자는 원래의 뜻 말고도 ‘말’이란 뜻을 가집니다. 이 글자 세 개면 말 잘한다는 뜻이 분명하군요.

생김새로 제 뜻과 소리 가르쳐

거북 배 껍질에 새겨진 갑골문의 탁본

문자를 이해하는 데는 마음의 눈 즉 심안(心眼)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문득 압니다. 또 무수한 사람들의 수많은 세월, 기쁨과 눈물이 담겨 있음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갑골문부터 지금까지 대략 5천년, 역사가 문화를 짓지만 역사 자체가 문화인 것을 느낍니다.

부수자(7획)로도 쓰이는 언(言)은 뜻이 다양합니다. 의견, 글, 맹세(盟誓)의 말, 호령(號令), 하소연, 건의, 여쭈다, 소송(訴訟)하다, 예측(豫測)하다, 위문하다 등의 뜻으로 쓰이지요. 갑골문 사람들은 ‘입으로 내는 소리’라는 생각의 그림으로 이 글자를 만들었지만, 오랜 시간의 세례(洗禮)를 받으며 매우 복잡하고 세련된 의미의 틀이 짜인 것입니다.

‘하나를 알면 열을 깨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言자 하나 바로 알면 이제껏 안개 속에 있던 많은 단어의 뜻이 저절로 드러납니다. 한자는 생김새만으로도 제 뜻과 소리를 가르쳐줍니다. 마음의 눈을 가진 어진 이들에게는 더 큰 뜻을 보여주지요.

금문의 모양과 탁본. 금문은 제사를 지내기 위한 도구인 여러 형태의 청동기에 적힌 글자. 그림글자에서 뜻글자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토/막/해/설/
한자 퍼즐, 회의문자

한자는 그림으로 만든 뜻글자다. 이런 글자를 합쳐 또 다른 글자를 만든다. 이 과정, 절묘한 추상화 그리기다. 들여다보면 더 아름답다. 이것이 문자학이다. 상형(象形)과 지사(指事)로 만든 기본 글자와 이 글자를 활용하는 회의(會意)와 형성(形聲)은 퍼즐게임이다.

상형 지사 회의 형성 넷 중 세 번째 會意를 살핀다. 뜻[意]과 뜻을 합쳐[會] 새로운 뜻(글자)을 만드는 것이 회의다. 해 일(日)자와 달 월(月)자를 합쳐 밝을 명(明)자를 만들었다. 明자는 회의자(字)다. 사람 인(人, 부수자 亻)과 나무 목(木)을 합쳐 쉴 휴(休)를 지었다. 나무 아래서 사람이 쉰다. 시(詩) 읽듯 읽으면 뜻이 선다.

문명(文明)으로 나아갈수록 많은 단어가 필요해진다. 기왕의 단어로 새 단어를 만드는 방법이 개발된 이유. 대문을 이르는 문(門)안에 일(日)이나 월(月)을 넣어 사이 간(間)과 한가할 한(閒)을, 해의 뜻인 날 일(日)과 불 화(火)를 합쳐 빛날 경(炅)을 만들었다. 나무[목(木)]가 네모난 방[구(口)]안에 있으면 (나무가) 괴롭고 피곤한[곤(困)] 법이다.

주의, 명(明)자는 그 발음이 일(日)도 월(月)도 아니다. 회의자의 특징, 뜻은 짐작할 수 있으되 소리는 하나하나 따로 머리에 넣어야 한다. 한자가 어려운 점 중 하나다. 다행히 다른 퍼즐 글자 만들기인 형성(形聲)에 비해 회의(자)는 그 수가 비교적 적다. 또 꾸준히 배우고 익히면 이 또한 절로 깨쳐진다. 투자 없이 얻을 수 있는 것, 허무(虛無)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