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간디’ 또는 ‘종교적 다원주의의 선구자’

“생각하는 백성이어야 산다”…2011년 ‘아름다운 밀월’

고백하건대, 기자가 처음 ‘함석헌’(1901~1989)의 이름을 알게 된 때는 부끄럽지만 2003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당시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담당했던 사건이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이었는데 이 사건에 자주 언급되었던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후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얽힌 이들을 살펴보던 중 알게 된 그는 참으로 독특한 분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기억의 압권은 역시 그의 풍성한 ‘흰 수염’이었다.

어떤 분일까. 궁금해하면서 살펴보니 그의 일생은 그 ‘흰 수염’만큼 독특했다. 먼저 그 분이 가진 종교가 특이했다. ‘퀘이커교’였다. 처음에는 무슨 종교인가 했다. 기자가 알고 있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또는 이슬람교, 여호와의 증인 등등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봤지만 ‘퀘이커교’라는 단어는 정말 생소했다.

사회개혁에 방점 둔 퀘이커 교도 함석헌

퀘이커교는 17세기 중반 영국 랭커셔 지방에서 ‘조지 폭스’라고 하는 이에 의해 처음 창설된 기독교의 한 종류였다. 그런데 기존 교회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대부분의 보수적인 기독교처럼 내세에서 행복하기 위해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사회개혁을 위해 직접 참여하고 노력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영국 퀘이커교는 병원시설의 개선운동, 여성 참정권운동 등에 앞장섰고 미국 퀘이커 교도는 노예제도 폐지 운동과 반전운동 등에 적극 참여했다고 한다.

장준하 선생과 가장 가까운 동지 관계였던 함석헌 선생에 대해 알아가면서 가장 의아하게 여겼던 것도 역시 그것이었다. 종교인이었던 함석헌 선생이 왜 그처럼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는지, 그리고 그 끝이 결국 감옥인줄 알면서도 뚜벅 뚜벅 그 길을 걸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퀘이커교’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자 그가 보인 그 왕성한 사회 참여활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함석헌 선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났다. 바로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함석헌 전문가’ 김성수 박사와의 만남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쓴 책 ‘-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에서-함석헌 평전’(저자 김성수, 삼인출판사, 2011년 3월 발행)을 읽고서야 기자는 함석헌 선생에 대한 모든 궁금증이 걷히는 느낌이었다.

함석헌만큼 ‘대단히’ 독특한 저자 ‘김성수’

이 책의 저자 김성수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후 한국 철도대를 거쳐 철도청의 기관사로 취직했다. 어쩌면 그가 운명적으로 1979년 함석헌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KTX를 운행하는 고참급 기관사로 여전히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운명적이고도 숙명적인 함석헌 선생의 강의에 참석하면서 그의 인생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79년 어느 날, 함석헌 선생의 조용한 열변에 전기에 감전된 듯 큰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이후 틈만 나면 함석헌 선생의 강연장을 찾아 다녔다. 일주일 내내 철도 기관사로 일하다가 주말에는 모든 시간과 노력을 오직 ‘함석헌 알기’로 보냈다고 회고한다. 밥을 먹어도, 친구를 만나도, 잠을 자도 오직 매 순간 함석헌을 생각하던 그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로부터 10년후 맞이한 함석헌의 죽음은 그에게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대단한 충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바로 그날, 그러니까 정확히 1989년 2월 4일 새벽 5시 40분. 서울대병원에서 함석헌 선생이 운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 그는 관 안에 누워있는 그를 본 순간 놀랍게도 마치 환영처럼 ‘함석헌’이 아닌, 자신이 누워있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또 3시간후 그는 8년간 다닌 철도청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는 퀘이커의 나라 영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 9년 반이 지난 1998년. 그는 마침내 영국 세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인 퀘이커 함석헌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박사 논문을 집필했다. 사직서를 낸 김성수가 퀘이커 교도였던 함석헌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결심한 지, 근 10년만의 결실이었다.

‘한국의 간디’ 함석헌

함석헌 선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군가는 그에 대해 '한국의 간디'라고 불렀고 또는 '종교적 다원주의의 선구자'라고 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싸우는 평화주의자'라고 하기도 했고 그가 유신정권 당시 발행한 ‘씨알의 소리’를 들어 ‘언론인’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사건을 조사하면서 기자가 받은 느낌은 그가 장준하 선생 못지않은 반 유신 독재 운동의 ‘민주화 운동 투사’라는 점이었다.

그는 비폭력 방식으로 유신정권에 저항했다. 거침없는 말과 글로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했고 단호하게 꾸짖었다. 특히 장준하 선생이 의문의 죽음은 당한 7개월후인 1976년 3월 1일, 더욱 기승을 부리는 유신체제에 맞서 서울 한복판에서 그가 주도한 소위 ‘명동 3·1 구국 선언’은 가장 대표적인 저항 운동이었다.

당시 75세의 나이에 최고령으로 참여한 이날의 명동 구국선언으로 그는 법정에서 8년형을 선고받는다.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긴급조치를 폐기하고 국회를 복원시킬 것과 사법부의 독립을 요구”한 죄였다. 이 상식적이고 당연한 요구를 했다는 이유로 마구 잡아들이고 갇아둔 시대가 바로 박정희 유신시대였으며 그 한가운데에 함석헌이 있었던 것이다.

건국후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운동가

김성수는 그런 함석헌 선생을 2011년 다시 부활시켰다. 그리고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이 시대에 다시금 ‘함석헌’이라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정신적 자산에 대해 재평가받기를 원하고 있다. 야만의 시대가 아닌 문화와 인권, 그리고 종교의 다원성과 사회 개혁을 바라는 이들속에서 함석헌이라고 하는 시대적 선구자를 다시금 살려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기자는 비로소 함석헌이 2010년 한국조폐공사에서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등을 대표하는 인물 100인중 한명으로 선정되어 ‘한국의 인물 시리즈 메달’로 선정되었다는 점을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건국후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운동가’를 선정하는데 77%가 함석헌을 꼽아 1위를 차지했다는 것과 2009년에는 그가 쓴 책 ‘뜻으로 본 한국 역사’가 아시아에서 유명한 명저 100권중 한권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같은 훌륭한 분에 대해 이렇게 많이 무지하고 몰랐다는 사실이 스스로 부끄러웠다.

사실 이 책은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을 맞은 지난 2001년 `최초 출간된 함석헌 평전의 개정판‘이다. 그리고 그 후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 저자인 김성수는 보다 더 세밀하고 자세하게 그의 일대기와 사상적, 철학적, 종교적 내용을 보완하여 이번에 다시 개정판을 내게된 것이다.

김성수는 누가 뭐라해도 함석헌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이다. 그리고 이같은 평가를 받기위해 그는 평탄한 자신의 안정적 신분을 스스로 걷어차고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영국으로 가서 오직 10여년을 함석헌만 연구했고 그것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이 모든 진액을 뽑아 올려 쓴 책이 바로 이 책 ‘함석헌 평전’인 것이다. 그렇기에 고맙게도 우리는 이 한권으로 우리나라가 배출한 위대한 사상가이자 철학자, 그리고 민주화운동 활동가였던 함석헌을 ‘제대로’ 읽게 되는 것이다.

한편, 함석헌 선생이 쓴 글 중 대표적으로 널리 알려진 글은 1958년 8월 장준하 선생이 발행하던 사상계에 기고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꼽는 이들이 많다.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왜 오래전 읽은 그 글이 지금에 와서 다시금 새롭게 가슴으로 와 닿을까”라고 그는 말했다. 기자 역시 그의 말에 다시한번 그 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외침을 떠 올렸다.

2011년, 함석헌 선생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이며 모두에게 일독을 권할만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끝으로 함석헌 선생과 저자 김성수의 ‘아름다운 밀월’이 언제나 함께하고 그 속에서 더욱 풍부하게 깊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