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마을’ 최욱경 화백(畵伯) 호칭 시비의 속뜻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11.05.0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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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관련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 따위로 전현직 세금 관리(官吏)들이 화제다. 덩달아 ‘최욱경 화백’이란 화가와 그의 그림 ‘학동마을’도 유명해졌다. 1985년 45세 나이로 세상을 뜬 ‘추상표현주의’ 작가다. 강렬한 색깔과 독특한 형태가 인상적이다. 여성이다.

여성 작가의 호칭으로 ‘화백’(畵伯)이란 말이 마땅하냐는 얘기가 있다. 한자에 익숙한 시니어 세대(世代)가 주로 제기하는 문제다. 남성 화가를 높여 부르는 말인데, ‘요즘 사람들’이 문자를 잘 몰라 생각 없이 여성 화가에게까지 잘 못 쓰고 있다는 것이다. 질책(叱責)이나 핀잔의 뉘앙스도 조금은 섞여 있다.

교사를 면전(面前)에서 부를 때는 대개 ‘선생님’이라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으로 ‘대통령 각하’라는 전근대적 권위주의 호칭은 ‘대통령님’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화가(畵家)를 부를 때 ‘화가님’은 어색하다. ‘화백’ 또는 ‘화백님’이 무난(無難)하게 쓰인다.

예전에는 여류(女流) 화가라고 했다. 시대착오적, 차별적 호칭이다. 요즘 이렇게 쓰면 비웃는다. 남성 화가는 화가 또는 화백이라고 했다. ‘남류’(男流)라는 말은 애당초 없었다. 화가 등 여성 전문가의 호칭 앞에 ‘여류’라는 단어가 오는 것이 맞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국어사전도 그렇지만 중국어나 한자사전도 마찬가지로 ‘화가를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푼다. ‘최욱경 화백’이 안 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호칭의 백(伯)자의 ‘문자학적(文字學的) 의미’가 문제다. 생각해볼 대목이 없지는 않다.

백부(伯父)는 ‘큰아버지’다. 백중세(伯仲勢)는 ‘우열(優劣)의 차이 없이 엇비슷함을 이르는 말’인데 원래는 형제 중 장남과 차남(次男), 즉 첫째와 둘째 아들을 이르는 말이다. 자전(字典)이 알려주는 백(伯)의 첫 번째 뜻은 ‘맏이’ ‘우두머리’다. 다음으로 큰아버지, 백작(伯爵), 남편의 형 등의 뜻이 나열된다.

자원(字源) 즉 말밑을 따지니 사람 인 부수자[?(人)]와 결합된 백(白)자는 아버지 부(父)자와 통하는, 한 집안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畵伯’을 남성 전용(專用) 낱말이라고 하는 뜻이다. 이유(理由)가 될 만하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는 무릎을 치며 시간과 역사, 세태(世態)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그 伯자는 대표적 가부장(家父長) 언어였던 것이다.

집안의 어른은 아버지이고 모든 가치와 체계(體系)가 거기서 시작되는 상황을 대변하는 구조가 가부장제(家父長制)다. 집[家] 아버지[父] 어른[長]의 글 뜻만으로도 짐작된다. 동북아시아의 유교문화 전통이 오래 우리 삶과 생각을 지배해온 증거이며 결과다.

백(伯)자의 어디를 봐도 손에 회초리를 든 모양을 그린 아버지 부(父) 글자의 흔적은 없다. 다만 ‘우두머리’는 당연히 남성이며 아버지여야 했던 ‘시대적 사고(思考)’ 또는 ‘상황적 편견(偏見)’이 이 글자의 본래의 뜻 위에 번쩍이는 장식(裝飾)과 도금(鍍金)을 입힌 것이리라.

그러나 이와 같은 시대적 또는 상황적 조건(條件)보다 문자의 역사는 더 무게가 있다. 원래의 문자의 뜻 때문에 ‘여성 화백’ 호칭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문자의 세상에는 그 반대의 논리적 증거도 있다. 바로 백모(伯母)다. 큰어머니, 아버지 맏형의 아내다. 자주 쓰이는 호칭은 아니지만 맏누이 백자(伯姉)도 있다.

가부장적 전통이 확립되기 전(前)이었겠다, 잉태(孕胎)와 출산(出産)의 ‘특권’을 가진 여성의 호칭에 아마 ‘우두머리’라는 ‘깃발’이 꽂혀 있었을 것이다. 남성은 전투과 사냥에서 죽기 쉬웠기 때문에 우두머리가 되기 어려웠겠다. 인류의 새벽은 모계사회(母系社會)였다고 여러 학문은 증언한다. 가부장제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그 흔적이 문자에 남은 것이다.

사람 이름의 성(姓)은 태어난다는 생(生) 앞에 여(女)자를 붙인 것이다. 갑골문에서부터 볼 수 있는 글자다. 갑골문으로 시작된 한자의 역사는 3,500년 남짓이다. 어머니 모(母) 글자는 여(女) 글자 안에 아기를 먹이는 젖가슴이 또렷하게 덧그려진 것이다. 갑골문까지 뒤지지 않고도, 두 글자를 좌 또는 우로 절반만 눕혀보면 인류를 먹여 키우는 그 위대한 젖가슴을 볼 수 있다.

인구가 줄어 나라살림이 위태로워질 지경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모성(母性)의 본디를 떠올리는 남성 중심 기성 정치세력의 우둔함을 이제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현숙(賢淑)한 심성과 에너지를 동반하지 않고 현재의 어려움을 돌파할 수는 없다.

전 분야에서 여성이 일어선다. 가부장을 대신할 ‘가모장’(家母長)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다. 다음 선거에선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 여성 정치인 너른 치마폭 곁에 넙죽 엎드린 수많은 남성들을 보며 감회에 젖는다. 그러나 그들, 새 세상의 참된 뜻을 알기나 할까?

‘학동마을’이 가모장 세상에서는 뇌물이 아닌 ‘좋은 그림’으로 알려지기를 희망한다. 어쩌다 세리(稅吏)들의 몰가치(沒價値)한 손길에 올랐을까? 인간됨됨이는 잘 모르나, 필자는 최욱경 ‘화백’의 그림을 좋아한다. 수수하나 품은 생각이 깊다.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 그림들을 볼 수 있다.


강상헌 논설주간/우리글진흥원 원장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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