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책으로 보는 눈 141 최종규l승인2011.05.0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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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혜화동에서 1978∼79년부터 자리잡으며 사람들하고 책을 나누던 헌책방 한 곳이 2011년 4월 1일로 문을 닫았습니다. 헌책방 일꾼 전인순 님은 당신이 샛장수(중간상인 또는 나까마)로 처음 일하던 때가 1960년대 첫무렵이라고 떠올립니다. 샛장수로 열 몇 해, 또는 스무 해쯤 일한 끝에 아주 작은 가게를 얻은 때가 1978년이나 1979년이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샛장수를 처음 한 해도 또렷이 몇 해인지 떠올리지 못하고, 가게를 처음 차린 해도 제대로 돌이키지 못하지만, 헌책방 문을 닫아야 하는 때는 날짜까지 똑똑히 아로새겨집니다.

헌책방 한 곳이 문을 닫는 자리에 함께합니다. 헌책방 한 곳에 깃들던 책을 다른 헌책방으로 옮기는 일을 거들며 사진을 찍습니다. 아침 일곱 시부터 책을 빼서 열한 시 무렵에 책꽂이까지 모두 들어냅니다. 고작 너덧 시간 만에 모든 책과 책꽂이가 텅텅 빠집니다. 부스러기를 치우고 남은 짐조각을 건사하는 헌책방은 간판만 덩그러니 남습니다. 이 간판도 며칠 지나지 않아 이 터에 새로 들어올 떡볶이집이 얼른 떼어내어 새 간판을 올리겠지요. 어디에선가 헌책방 박물관을 짓는다고도 하지만, 조용히 문을 닫는 헌책방 간판 하나 살뜰히 돌보려 하는 움직임은 없습니다.

헌책방 한 곳이 문을 닫느라 책을 빼는 동안, 동네사람이 지나가며 발걸음을 멈춥니다. 아침 일곱 시 반 즈음부터 가게 문을 여는, 건너편 보성문구사 할아버지가 “이 봐, 혜성(책방 이름)! 어디 가? 이사 가? 그러면 나는 어떡해?” 하고 외칩니다. 가게 문을 열고는 헌책방 앞으로 찾아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젊은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문 닫아요? 미리 말 좀 해 주시지요?” 하고 이야기하지만, 진작 찾아와서 책을 보고 샀으면 될 일입니다. 늙수그레하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여기를 떠나요? 아이고,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서운해서 어쩌나.” 하고 인사를 하며 손을 잡습니다. 일흔넷 헌책방 일꾼은 그냥 일꾼이 아닌 ‘할아버지 일꾼’이고, 할아버지 일꾼이 떠나는 길을 안쓰럽게 여기며 마지막말을 남기는 이들은 하나같이 할머니나 할아버지인 ‘동네사람’입니다.

서울 혜화동 작은 헌책방에 있던 책은 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으로 옮깁니다. 서울 혜화동이며 삼선동이며 명륜동에는 이제 헌책방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지난날 이 둘레에는 헌책방이 꽤 많았으나, 이제 이 둘레에서 헌책방이라는 씨는 깡그리 말라비틀어집니다. 강북구청 둘레에 헌책방 한 곳 튼튼히 살아숨쉽니다만.

그러나, 문을 닫는 헌책방만큼 튼튼하며 굳세게 문을 여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강북구청 둘레에는 〈신광헌책〉이 있고, 혜화동 마지막 헌책방 〈혜성서점〉 책은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이 넘겨받습니다. 일흔네 해 책을 만지며 늙은 할아버지 한 사람은 쉰 해 즈음 한길을 걸었고, 앞으로 숱한 헌책방 일꾼은 쉰 해나 예순 해 안팎을 헌책을 만지는 삶을 일구다가 조용히 마무리짓겠지요.

여태껏 한 번도 도드라지거나 돋보이거나 빛난 적이 없는 헌책방 책터입니다. 앞으로도 도드라지거나 돋보이거나 빛날 일은 좀처럼 없겠지요. 그런데, 헌책방이란 늘 그랬어요. 낮은 자리에서 예쁘며 해맑게 책을 어루만지며 이어왔어요.



최종규 <우리말과 헌책방지킴이>저자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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