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자로, 또 강의 일을 해오고 있는 필자는 한자(漢字)가 우리 교육에서 왕따 당하고 난 뒤부터 우리 말글의 문해(文解)와 소통(疏通)기능이 눈에 띄게 저하되고 있는 것을 늘 실감합니다. 대학생들조차도 교재의 기본적인 지문(地文)이나 용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충 때려잡기’로 짐작만 하는 묘한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해 왔지요.

단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의 명확(明確)하고 구체적인 뜻을 알아야 책을 읽던 말을 하던 정확한 인식(認識)과 사고(思考), 판단(判斷)과 재생산(再生産)이 가능할 것 아니겠습니까? ‘따붙이기’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한 줄 글로 쓰는 것도 어려운 것도 일맥상통(一脈相通)일 것입니다.

기성세대 잘못 크다

‘말뜻을 잘 모른다.’ 또는 ‘자기 이름, 아버지 성함(姓銜)도 한자로 못 쓴다.’고 ‘젊은 후배 여러분’을 타박하지 않겠습니다. 실은 여러분 책임이 아니라 필자를 포함한 어리석은 기성세대들의 탓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공부할 여건을 만들어주지도 않고서 ‘못한다’고 지적(指摘)하는 것은 정말 어불성설(語不成說), 말이 안 되는 얘기지요.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러분 몫입니다. 우리 말글을 제대로 읽고 쓰기 위해서는 뭔가 부족하다는 사실과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한자의 부재(不在)지요. 그러나 엄두가 나지 않아 시작조차 못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는 일, 급합니다. 이를 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워할만한 것입니다. 당국(當局)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말글의 낱말, 특히 한자가 바탕이 된 단어의 뜻과 문장 안에서의 기능 등을 젊은 세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주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사실을 필자는 잘 압니다. 필자보다 한자에 밝은 분들은 부지기수(不知其數)로 많으나 굳이 몇 년 전부터 필자가 나선 이유입니다. ‘글월 속의 낱말’을 이해하는 것, 개벽(開闢)같은 효과를 부를 터입니다.

삽이나 괭이가 논밭을 일구는 도구이듯, 낱말은 말글생활의 삽이고 괭이입니다. 부속품이라고 설명해도 되겠습니다. 잘 챙겨야 ‘언어농사’가 바르고 풍성해지지요.

이 부분 공부의 필요성을 다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이 글을 대하며 낱말의 실제 활용 사례를 느끼고, 마음에 담을 수 있도록 신경 써서 원고를 만들겠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뜻을 이해하고 이 글을 차분히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중국만의 문자 아닌 우리 문자로 이해

글을 먼저 익힌 선배로서, 또 말과 글을 생활의 수단으로 삼는 전문가로서 드리는 다음 부탁 말씀을 여러분은 기꺼이 들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또 간곡(懇曲)히 기대합니다.

- 첫 번째 부탁. 모르는 낱말, 알지만 긴가민가한 단어는 가능한 한 빨리 그 뜻을 사전(辭典)을 통해 확인해 달라는 것입니다. 필자도 매일 사전을 20~30번 찾습니다. 사전을 쓸 때는 그 낱말의 첫 번 째 뜻만 말고 두 번째, 세 번째 뜻도 함께 읽어야 합니다. 그 말이 한자로 된 것이면 한자의 뜻[훈(訓)]과 음(音)을 확인하는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뜻만 확인하지 말고, 그 낱말 사용의 실제 사례(事例)를 익혀야 합니다. 예문을 확인하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그 예문은 대개 표준적(標準的)인 문장이어서 그 낱말 활용법 말고도 다른 깨달음을 주기도 합니다. 모르는 말, 모른 채 넘어가면 발전은 없습니다. 좋은 국어사전이 필요합니다. 영어 등 외국어도 마찬가지입니다.

- 부탁 또 하나! 한자가 보이면 외면(外面)하지 말고 어떻게 생긴 글자인지, 내가 기왕(旣往)에 알고 있는 글자와는 어떤 관계(關係)와 차이(差異)가 있는지를 한번쯤 생각하고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한자를 써서 말하자면 자신(自身)을 문자(文字)에 더 많이 노출(露出)하라는 것입니다. 문자를 자신에게 더 많이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같은 얘기지요?

필자의 글에 괄호(括弧) 속 한자가 많은 이유입니다. 이 글을 보면서 ‘아, ‘괄호’라는 낱말은 이런 한자로 된 우리말이구나!’하고 생각해 달라는 것이지요. 좋은 한자사전(자전)을 가지면 더 효과적입니다.

- 세 번째 부탁. 한자는 중국만의 문자가 아니고 우리 문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달라는 것입니다.

한자는 3,500년 전쯤 동북(東北)아시아 황하(黃河) 유역에서 생겨난 갑골문(甲骨文)이 그 뿌리입니다. 우리 선조로 일컬어지는 동이(東夷)겨레도 당시 다른 겨레들과 함께 그 부근에 살며 아름다운 상형문자인 갑골문을 함께 지은 것으로 분석(分析)되고 있습니다. 그 근거(根據)는 우리 연재물에서 때때로 설명합니다.

또 성군(聖君) 세종대왕이 자랑스러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발명(1446년)하고, 차츰 우리 말글이 이 땅에 퍼지고 난 후인 지금까지도 우리는 한자를 함께 쓰며 문화를 지어오고 있습니다. 한글전용이라고요? ‘전용’(專用) 또한 한자가 바탕인 우리말입니다. 한자도, 다른 외국어도 자연스럽게 품는 한글의 위대한 덕성(德性)입니다.

여러 가지 다 신경 쓰려면 귀찮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말글 공부하고, 이를 생활화하는 방법이 갖춰지지 않아 그런 것입니다. ‘사전과 친하게 지내는 생활’로 스타일을 바꿔보세요. 생각하는 차원이 바뀌고,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당연히 성적도 좋아지지요.

‘글월 속 낱말’ 개념 기억해야

말글 뿐 아니라 생각도 달라집니다. 20년 전에 샀던 TV를 치우고, 새 디지털 TV로 바꿔 보는 것처럼, 문자 세상을 알면 세상이 달라져 보일 것입니다.

게다가 한자를 공부하면 밤을 잊을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영어 불어 독어 일어 공부하는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한자의 본디, 뿌리를 모르는 이들의 일본책 베끼기 식의 얼치기 교재(敎材)나 강의 때문에 한자가 어렵고 귀찮은 것이 됐지만요. 또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우려면 한자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함께 공부하십시다.

여러분에게 이런 비법(秘法)을 전수하기 위해 필자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한자를 한자 한자 외우면 이튿날이면 모두 까먹습니다. 쓸모도 적고요. 부디 필자의 세 가지 부탁과 ‘글월 속의 낱말’ 개념(槪念)을 잊지 마세요.

주제넘은 부탁 말씀이지만, 오랜 경험과 생각 담은 글월입니다. 밉다고만 마시고 스스로를 닦는 도구로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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