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산역벽화를 다시 보고 싶다

시민운동2.0 김덕진l승인2011.05.2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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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5월 한반도 평화의 상징인 도라산역 내부 벽면에 설치되어 있던 작가 이반(70)의 벽화 ‘생명사랑, 인간사랑, 자유사랑, 평화사랑, 자연사랑’이 사라졌다. 이 작품은 통일부가 작가에게 요청하여 2005년부터 2007년까지 2년여에 걸친 작업을 통해 완성된 벽화로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명사상을 바탕에 두고 작가가 노년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어 제작한 총 길이 98미터의 대작이다. 이 대작이 사라진 자리에는 백두산 천지 사진이 담긴 액자 몇 개가 대신 내 걸렸다.

통일부는 작가에게 단 한차례의 상의나 통보조차 없이 벽화를 철거했다. 작가의 인격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친정부 인사라고 할 수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오광수 위원장도 상식 밖의 일이라며 통일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유인촌씨는 야당의원의 질문에 자신이 철거 전에 알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벽화가 철거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도라산역을 방문했던 한 지인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작가는 통일부에 서면으로 질의를 했다. 여기에 대해 통일부가 보내온 답변서라는 것이 정말 가관이다. 답변서에는 벽화의 분위기가 무당집 같다거나 어둡고 민중적이라는 등의 의견이 평상시에도 많이 있어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고, 도라산역 방문객 14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도라산역과 벽화가 안 어울린다는 의견이 많아 철거를 했고 모두 적법한 절차였기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내용만이 담겨있었다.

이후 우리는 통일부에 “어떤 설문을 했고, 전문가들은 누구인가?”라는 질의를 했지만 통일부는 아무런 답변이 없었고 정보공개청구 역시 거부했다. 지난 국정감사 때 통일부 현인택 장관과 엄종식 차관은 야당의원들의 질타에 대해 소유권이 통일부에 있으므로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해서 밝히기도 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정보공개신청을 할 때마다 통일부 직원의 구두 항의를 들어야했다. 정보공개신청을 하면 바로 통일부 직원이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는 벽화와 인권이 무슨 상관이냐는 둥, 천주교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둥의 인신공격성 말을 포함하여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협박성 말까지 들어야 했다. 필자는 물론, 담당활동가의 휴대전화로도 수시로 전화를 계속 걸어 정보공개청구를 왜 하느냐는 항의하며 마치 화풀이를 하듯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했다. 모욕감과 불쾌함을 참을 수가 없었지만 이 사건의 본질이 호도될까 염려되어 서면으로 청구했으니 서면으로 답해달라는 말만 전달하고 말았다.

우리가 도라산역벽화 철거 사건을 폭로하고 나자, 언론은 기사와 전문가 칼럼 등을 통해 이 사건이 예술저작권, 특히 작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심각한 사안임을 지적했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의해 자행된 문화재 파괴나 탈레반의 바미안 불상 파괴와 같은 반달리즘의 일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사건에 분노한 것은 화가들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지난해 말 발표한 522명의 공동성명에는 김윤수, 김정헌, 박불똥, 임옥상, 신학철, 박재동 등 미술계 인사들과 조정래, 황석영, 김훈 등 소설가, 유홍준, 조국 등 학계인사, 이창동, 안성기, 문성근, 김명곤 등 연극영화인, 김선수, 김칠준, 정연순 등 법조인, 박래군, 이종회 등 인권활동가, 문정현, 문규현, 김인국, 법타 스님 등 종교인들까지 각계의 인사들이 참여했다. 수동적으로 서명만 한 것이 아니라 모두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깊은 공감을 가지고 있었다.

도라산역벽화 철거 사건은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의지를 꺾어버리는 공권력의 횡포이고, 예술작품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무지와 몰이해를 만천하에 공개한 부끄러운 일이다.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침해 받는 국가에 무슨 국격 따위가 있을 수 있겠는가? 통일부는 작가 이반과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머리 숙여 사과함은 물론 이 참담한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 책임자를 문책하는 등 도리를 다해야 한다. 또 이 작품의 원상회복을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 예술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올바르게 세우고 예술저작권을 온전히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정비가 시급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일의 해결을 위해 법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작가 이반의 예술가 정신이 법적인 싸움으로 혼탁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이 철거되고 1년이 지났지만, 정부는 단 한마디 사과조차 없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물론 이와 관련 있는 정부의 모든 부처들에 책임을 일깨우기 위해 우리는 ‘소송’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작가 이반은 이 소송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경제적인 이득이 있다면 모두 예술 저작권 수호를 위해 내 놓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칠십을 넘긴 노작가를 화실이 아닌 법정에 설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 세상이 참으로 원망스럽다. 도라산역벽화를 꼭 다시 보고 싶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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