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 국민 주권에 ‘심장의 더운 피’까지 담다

강상헌의 한자숲 노닐기-나라 국(國) 강상헌l승인2011.07.0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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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동아시아 문자가 근대 정치학 주요 개념 제시

나라 국(國)자의 변천 (민중서림 한한대자전).

나라 국(國)자의 사전적인 의미는 대충 정치학개론의 ‘나라’의 정의(定義)와 같다. 백성들[입 구(口)]과 땅[지평선 모양 一]을 지키기 위해 경계 즉 국경[큰입 구(口)]을 짓고 무기[창 과(戈)]로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글자를 분해하면 나라를 이루는 요소들이 어우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국가의 3요소인 영토(領土) 국민(國民) 주권(主權)이 그것이다. 사람이 있고, 땅이 있고, 힘이 있어야 비로소 나라가 되는 것임을 문자가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대표하는 인체의 기관(器官)은 단연 말하고 먹는 역할을 하는 입이다. 식구(食口)는 ‘밥을 (함께) 먹는 입’이란 뜻으로 가족을 나타내는 세련된 비유의 단어다.

口가 왼쪽에 있는 중국 문헌의 갑골문. 원래 그림에서 출발한 글자여서 합쳐진 글자들의 위치가 다른 경우가 많다.
갑골문을 보면 사람을 상징하는 글자인 입[口]와 무력(武力)을 표상하는 창[戈]을 합쳐 ‘나라’라는 의미를 지었다. 시간이 지나 청동기시대 금문(金文)에 이르러 국경을 뜻하는 글자[큰입 구(口)]를 두르게 됐다. 땅 즉 영토의 개념이 추가된 것이다.

무력은 나라의 힘의 상징이다. 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힘이면서, 통치를 위해 백성을 위엄(威嚴)으로 누르는 힘이다. ‘주권의 강제력’인 것이다.

武는 보통 창[과(戈)]를 그치게 하는[지(止)], 평화를 위한 ‘장치’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치다는 뜻의 止자를 자원(字源)인 발[족(足)]의 뜻으로 달리 해석해 ‘싸우기 위해 창을 들고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내딛는 모습’으로 풀기도 한다.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이다. 상반되는 해석에도 불구하고 이 ‘무력’은 나라를 움직이는 핵심(核心) 동력 중 하나다.

‘군주론(君主論)’을 쓴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1469~1527)는 ‘정치는 도덕, 종교와 구별되는 고유영역’이라고 설파(說破)했다. 이 ‘정치’는 통치를 위한 시스템을 이르는 것으로, 주권을 본질적으로 백성을 강제할 수 있는 폭력이라고 본다.

목적(目的)은 수단(手段)을 정당화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허용된다는 식으로 이해되는 마키아벨리즘에 의한 ‘나라’나 ‘정치’는 이처럼 문자의 새벽 갑골문 시대에 태어난 ‘나라’ 글자의 뜻과 절묘하게 겹친다. 즉 고대의 동아시아 문자가 근대 정치학의 주요 개념들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나라’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 가족의 뜻인 가(家)가 합쳐져 ‘국가’로 이름이 바뀌면서 그 기틀이 또한 바뀐다. 처음 國은 은(殷)이라고도 하는 상(商)나라의 노예제(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고대국가의 계급적 지배체제의 ‘이름’이었다. 사람들을 강제로 통합하고 힘으로 지배하는 형태가 처음의 國이었던 것이다.

새[추] 그림문자로 시작하는 금문이 실린 주(周)나라 청동기. 끝줄은 용작보존이(用作寶尊彛)다. 제사 후 왕(王)이 덕(德)에게 돈[貝(패)]을 준 것을 기려 보배로운 술잔 준이(尊彛)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가(家)는 피를 나눈 가족 즉 혈연적(血緣的) 공동체다. 이 國과 家가 처음 하나의 단어로 합쳐진 것은 상나라를 계승한 주(周)나라 때인 것으로 추측된다.

국가 대신 방가(邦家)라는 말도 사용됐다. 중국 고대의 변혁기인 춘추전국시대(BC 8세기~BC 3세기)를 지나며 국가는 일반적인 ‘나라’의 이름이 됐다.

강제력을 바탕에 깐 물리적 형태로서의 나라에서 어질다는 의미의 ‘인’(仁)을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푯대 세운 새로운 국가로 진화(進化)한 것이다.

인(仁)은 고대 중국 봉건국가의 지배이념으로 가부장적(家父長的) 도덕의 원리를 함축한 말이다. 당연히 집에 효도(孝道)가 있듯, 국가에는 충성(忠誠)이라는 ‘절대적 의무’의 개념이 생겨났다. 어버이 모시듯 왕을 섬기는 것이 ‘도덕적 미덕’이 된 것이다. 또 왕은 자식을 대하듯 백성을 추슬러야 하는 것이다.

‘주고받는’ 계약의 관계와는 전혀 다른 다양한 차원의 연결고리 곧 유대(紐帶)는 이런 역사적 맥락(脈絡)에서 비롯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강인한 끈이다. 역사가 두께를 더하며 나라와 사람의 관계는 더 짙어진다. 논리를 넘어서는, 애국심(愛國心)은 참으로 복잡한 ‘화학’(化學)이 된다.

겨레여 우리에겐 조국이 있다/ 내 사랑 바칠 곳은 오직 여기뿐/ 심장의 더운 피기 식을 때까지/ 즐거이 이 강산을 노래 부르자. (노산 이은상 ‘애국시’)

친일(親日)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주 애송(愛誦)되는 노산의 이 시 구절이 우리 심금(心琴)에 잣는 울림도 마키아벨리즘이나 국(國), 가(家), 가부장적 이념 따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도대체 사람에게 나라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토/막/해/설

제사용 기구에 새긴 염원-금문

금문(金文)은 중국 고대 상(商) 주(周) 진(秦) 한(漢) 시기의 청동기(靑銅器)에 새겨진 문자를 이른다. 金은 쇠와 구리 등 광물 모두를 부르는 이름이다. 거북껍질과 소뼈에 점친 내용을 새긴 갑골문과 달리 제사용 기물(器物)인 악기(樂器)와 예기(禮器)의 표면에 조상 등에 제사하는 글을 새겼다.

대표적인 청동기 악기인 쇠북 즉 종(鐘)이나 예기인 솥[정(鼎)]에 새겨진 글씨라 하여 종정문(鐘鼎文)이라고도 부른다. 시기적으로는 갑골문 이후의 청동기 시대에 해당한다.

전(篆) 예(隷) 해(楷) 행(行) 초(草) 등의 글씨모양 즉 서체(書體)에 따른 구분이 아니고, 갑골문처럼 문자가 어디에 어떤 식으로 새겨져 있는지의 존재형태에 따른 이름이다. 그러나 초기 상형문자의 진화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인데다, 문자의 모양과 그 문자를 품은 청동기가 아름다워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강상헌 논설주간/(사)우리글진흥원 원장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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