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한 당신, 분노한 누군가에게 고마워하라

[서평]스테판 에셀 저 ‘분노하라’ - 분노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질타 고상만l승인2011.07.0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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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참여를 차단하는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 일침
지지 정당에 투표할 것과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것이 실천방안

대학에 입학한 1989년. 생각해보면 나의 20대는 분노의 시작이었다. 부패한 사학 재단의 횡포를 용납할 수 없었던 그 분노가 이후 비합법 운동 조직에 가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처음 맞이한 학원자주화 투쟁.

열악한 학내 복지의 개선을 요구하는 투쟁을 시작한 첫날, 나는 또 다른 분노의 대상을 만났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목이 쉬도록 구호를 외치며 투쟁하는 가운데, 본관 옆 테니스장에서 들려오는 공치는 소리와 남녀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그것이었다.

그들은 왜 분노하지 않을까. 왜 모두의 문제인데 우리만 분노하는 것일까. 그 후, 10여 일이 넘는 처절한 싸움 끝에 우리는 학생식당의 질적 개선을 비롯한 몇 가지 요구안에 대해 적지 않은 성과물을 얻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과물은 이름을 알 수 없는 테니스장의 그들도 함께 누렸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동지들과 폭음하며 그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22년여가 지난 지금, 살면서 민주주의와 이웃의 인권을 위해 1분 1초도 분노하지 않는 채, 다만 그 성과물에 대해서는 공짜로 함께 누리는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테니스장의 웃음소리가 떠오른다.

레지스탕스 출신 늙은 투사의 '분노'론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이었던 저자 스테판 에셀이 쓴 책 <분노하라>는 그래서 나에게는 놀랍도록 흥미로운 책이었다. 저자의 머리말과 직접 쓴 본문을 포함, 불과 34페이지밖에 안 되는, 그래서 사실 책이라고 하기 보다는 팸플릿에 가까운 아주 가벼운 분량의 책이다.

물론 한국어판을 내면서 나눈 저자와의 인터뷰, 그리고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 등 이 책을 추천하는 이들의 추천사를 포함하면 전체 분량은 80여 페이지로 늘어나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저절로 밑줄을 긋게 되었다. 가슴에 와닿는 문맥을 읽으며 서평에 인용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읽다보니 어느덧 나는 거의 모든 문장에 줄을 긋고 있었다. 그만큼 '분노하라'는 대부분의 구절이 버릴 것 하나 없이 유익했으며 기억할 가치가 풍부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에 와닿은 문맥은 이러했다.

이른바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 언론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된 사회, 결코 이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만일 우리가 전국레지스탕스평의회의 진정한 후예였다면, 이런 모든 일들에 암묵적인 찬동자가 되기를 단연코 거부했으련만.

인권운동가의 관점에서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생각했다. 프랑스 사람인 저자가 프랑스 젊은이에게 던져주는 문제 제기인데, 짚어내는 모든 내용이 사실은 2011년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한 반인권적인 단속이 그러했고 전체 외국인 체류자에 대해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극우세력의 추방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무상급식 논란 과정에서 제기되는 포퓰리즘 비판에서부터 언론 종편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재벌과 거대 언론사의 독식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올해 아흔을 훌쩍 넘긴 그의 '열정적 분노'에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즉흥연설의 감동으로 만들어진 책 <분노하라>

이 책이 출간된 과정 역시 특이했다. 먼저 저자 스테판 에셀이 지나온 삶의 궤적부터 그랬다. 에셀은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에서 출생한 사람이었다. 일곱 살이 되던 해 프랑스로 이주했고 스무 살이 되던 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그는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드골(1959년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가입,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서 나치에 저항하며 싸우던 중 체포되어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극적인 탈출에 성공했고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프랑스에서 영향력 있는 외교관으로, 그리고 정치인으로 활동한다. 특히 그의 활동 중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대목은 그가 1948년 제정된 세계인권선언문의 초안 작성에 직접 참여했다는 점이다. 에셀이 가진 사상적, 이념적 배경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한편, 1917년생인 에셀이 아흔 두 살이 되던 2009년, '레지스탕스의 발언' 연례 모임에서 행한 즉흥 연설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이 자리에서 에셀은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분노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즉흥 연설을 했다.

그리고 마침 그 자리에 함께했던, 프랑스의 작은 소도시에 위치한 앵디젠 출판사의 실비 크로스만 등이 에셀의 즉흥 연설에 감동해서, 그에게 연설 주제를 가지고 책을 낼 것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책 <분노하라>는 프랑스에서만 7개월여간 무려 200만 부가 팔렸다. 그리고 프랑스 젊은이들의 각성을 촉구한 이 책은 그 후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되면서 전 세계에 이른바 '분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장에서 만난 '건강한 분노'가 고맙다

6월 10일, 나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개최된, 반값 등록금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사회 문제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비판받아온 요즘 대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그 현장에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기대했던 것처럼 집회 현장은 재기 발랄한 학생들의 목소리로 출렁거렸다. 그들의 위트 넘치는 구호와 엄청난 분노 에너지를 느끼며 어느새 기성세대가 된 나는 가벼운 흥분마저 느꼈다.

등록금 반값하고 정치는 제값해라!
돈 없는 우리도 대학 좀 다녀보자!
00대학교 등록금 반값 특공대
!

매년 올리고 올리고 또 올리는, 그래서 두 자식의 대학 등록금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자신이 없었던 어느 50대 가장의 자살사건을 접하면서 느꼈던 분노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분노가 세상을 바꾸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는 것을 지난 역사속에서 확인했기에 촛불 집회에 참석한 대학생들의 '건강한 분노'에 나는 행복했다. 그들이 가진 건강한 분노, 그리고 실천하는 분노가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에셀은 '분노와 참여를 차단하는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러한 무관심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우리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에셀은 이러한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지지 정당에 투표할 것과 시민단체에 참여할 것이 그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군가의 분노 덕에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권리를 누리고 있음을 수시로 망각한다. 지하철 등 공공요금을 정부가 제멋대로 인상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불심검문에 불응하면 형사 처벌하겠다는 황당한 경찰의 법 개정이 결국 무산 될 수 있었던 점 등이 바로 그렇다. 환경, 소비자 권리, 인권을 위해 싸우는 누군가의 분노가 있었음을 우리는 고마워하지 않고 망각한다는 것이다.

에셀은 말한다, "이제 당신이 분노할 때"

에셀은 이 책에서 '이제 당신이 그 의무를 행사할 때'임을 강조하고 있다. 생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말처럼, 독재정권에 대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한 것처럼 분노가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아가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 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에셀의 말하는 분노는 공익적이다. 그래서 좋다. 소위 "사회적 불의는 잘 참고 개인의 불이익은 못 참는" 그런 치졸한 분노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드는 촛불과 같은 분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말한 '평화적 봉기를 통한 분노'가 6월 초부터 지금까지 서울 청계광장에서 내내 계속되고 있는 반값 등록금 촛불처럼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그리고 희망적으로 흘러가도록 하고 있음을 다시한번 확신한다.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분노하는 것이 이기는 길'임을, 그리고 그 평화적 봉기를 통해 세상이 정의롭게 '창조'되며 그 창조를 위해 저항하라는 사실을 알려준 저자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를 통해 '정의로운 분노'가 들불처럼 번져가기를 기대한다. 에셀이 말한 실천처럼 오늘, 나는 그들의 정당한 분노에 함께하기 위해 촛불을 들 것이다.

<분노하라>(스테판 에셀 씀, 임희근 옮김, 돌베개 펴냄, 2011년, 6000원)


고상만 객원기자

고상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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