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공동 죄악’ 벗고 국민 바라보라

고상만l승인2011.07.0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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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검찰총장

조현오 경찰청장

경찰의 '수사권 조정' 판정패가 아쉽지 않고
‘완장 크기’ 몰두에 의구심
여론전과 비난, 그리고 집단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진흙탕 싸움’ 이제 그만
시대적 상황과 국민 요구 부응하는 민주제도로
바꾸는 개혁에 진정성 있어야

이슈&주장/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

‘파워 게임’에서 밀린게 아닌 민심을 사지 못한 스스로의 문제임을 각성해야
집단 선명성?이익에 국민 이용할 뿐 수사권 조정에서 진정성 확인할 수 없어
‘평검사 회의’ 집단행동 검찰도 시시비비 가릴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
힘이 약해 서러움 당한다고?… 수사 개시권 성과물 어찌 활용할 것인지 궁금


나는 인권운동가이다. 특히 인권운동 분야 중에서도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으로 대표되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군 의문사를 비롯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 그리고 억울함을 주장하며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의 인권에 대해 특별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일해 왔다.

그렇기에 이같은 일을 해온 인권운동가 입장에서 나는 극단적인 파열음을 내며 충돌했던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과 관련하여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관심 분야인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사 구조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같은 수사권 조정 논의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기능을 할 것인가 하는 관심이었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나는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검찰이 가진 수사 권한을 경찰에게 대폭 나눠주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각종 언론 매체에 글을 쓸 때도 그러했고 공중파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여해서도 어김없이 그러했다. 그리고 이같은 주장을 처음 시작한 때가 대략 1998년 이었으니 수사권 조정 논쟁은 참 오래된, 그리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린 과제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6월 20일, 국무총리실 주도하에 “검찰의 수사 지휘권은 유지하되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명시한 조항을 신설하는 것”을 큰 골자로 한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발표되었다. 다만, 아직 국회에서의 입법 절차가 남아 있고 또한 이 합의안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찰의 분위기를 감안해 볼 때 이 사안이 완전히 종결된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누가봐도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싸움은 결국 경찰의 ‘판정패’임이 분명하다. 수사 개시권을 따내는 것이 ‘진짜 목표’가 아니었던 경찰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일선 경찰이 보는 시각은 더욱 비감한 듯 하다. 합의안 발표가 난 당일, 이를 보도한 해당 기사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 댓글에는 현직 경찰관으로 보이는 한 네티즌의 글이 눈에 띄었다.

그는 “이럴려고 댓글 달라고 문자 보내고 지지하라고 문자 보냈냐. 박살나더라도 끝까지 싸웠어야지 누구 맘대로 타협이야. 제발 좀 박살나더라도 끝까지 싸워라도 보지”라며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의 울분만 보일 뿐 그러거나 말거나 일반 국민은 별반 반응이 없다. 정작 그동안 경찰의 수사권 조정에 찬성 입장을 가졌던 나 역시도 전혀 서운하지도, 아쉽지도 않았다. 나는 그 답이 ‘경찰의 판정패’ 이유라고 주장하고 싶다.

검찰과 경찰이 말하는 수사권 조정의 당위성은 무엇?

사법개혁 공대위
'대검 중수부 폐지' 검찰청법 개정안 입법청원 사법개혁 촉구 인권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2일 민주당 천정배 최고위원ㆍ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ㆍ진보신당 조승수 대표ㆍ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 등 야4당 소속 국회의원 11명을 소개의원으로 하여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골자로 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국회에 입법청원했다. 청원인은 김선수 민변 회장ㆍ김유환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ㆍ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ㆍ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ㆍ하태훈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등 사법개혁 공대위 상임대표 5명이다.

돌아보면 검찰과 경찰은 모두 ‘국민의 입장에서...’라는 논리로 그동안 자신들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3일 조현오 경찰청장은 경북지방경찰청을 방문하여 “8조 원의 예산을 운용하는 큰 조직(경찰)의 손발을 묶으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포문을 열며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각급 경찰서장 등에게 하달한 “수사권 조정에 직위를 걸어야 한다”는 자신의 지시문을 두고 “나라와 국민이 아닌 조직만을 위한 것은 공직자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라며 비판한 김준규 검찰총장에 대해 “수사권 조정에 직위를 걸라는 지시를 집단이기주의로 폄하하지만 국민에게 보다 나은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수사권 조정이 필요하다”라고 재차 반박하기도 했다.

살펴보면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경찰의 주장은 좀 더 다양하다. 경찰청 홈피에 실린 ‘수사구조 개혁’ 사이트에서 보는 경찰 주장은 그 자체로만 보면 아주 상큼할 지경이다. 현행 법률을 ‘독재와 인권 침해 우려가 높은 구시대 법’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하면서 이 잘못된 법의 뿌리가 일제시대 당시 식민지 정책을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호소하고 있다. 그러면서 수사권 조정은 ‘시대적 상황과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민주적 제도로 바꾸는 개혁’이며 이를 통해 ‘분권과 견제’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의 주장은 보다 직설적이다. 경찰 조직에게 독립적인 수사권을 부여할 경우 빚어질 파문을 경고했다. 즉, 검찰의 수사 지휘없이 독립적인 수사권을 부여할 경우 13만여명에 이르는 방대한 경찰 조직이 통제 불가능한 거대 권력기구가 될 것이며, 이로인해 과거 양천 경찰서에서 발생한 피의자 고문사건처럼 경찰에 의한 인권 유린이 빈발하고 사건이 은폐되는 등 심각한 오남용이 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찰측의 재반박이 이어졌다. 6월 15일 경찰청 관계자는 검찰의 인권유린 주장에 대해 “최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도 피의자가 자살하는 등 적잖은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며 “경찰의 '봐주기 식 수사'보다 요즘은 검찰의 자의적 수사 개입이 더 많다”고 반박했다. 서로의 얼굴에 먹물을 튀기는 점입가경. 그 자체다.

서로의 추악한 과거를 들추며 폭로전, 과연 국민을 위해?

이처럼 검찰과 경찰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형사소송법 제196조 1항 때문이었다. 물론 세세하게 살펴보면 다른 여러 가지도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충돌의 이유는 ‘사법 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해야 한다’는 이 법 조항 중 ‘검사의 지휘를 받아’라는 문장이 걸림돌이었다.

경찰은 이 여덟 자를 통째로 삭제하자는 것이었다. 이 조항 때문에 속된 말로 ‘새파랗게 어린 검사에게 30년 경력의 경찰이 일일이 지시를 받는 굴욕’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경찰의 이같은 주장은 반대로 검찰 입장에서는 ‘절대 수용 불가’일 수밖에 없었다. 지휘 범위를 벗어나 대등한 관계로 서겠다는 경찰의 요구는 명문대 법대 출신에 고시 합격자들인 검찰 입장에서 흔히 고졸 출신이라며 비하해 온 경찰에게 유린당하는 참담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조직의 사활을 건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검찰대로, 경찰은 경찰대로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물자와 권력과 사람을 동원하여 여론전과 비난, 그리고 집단 행동까지 그야말로 최선을 다한 ‘진흙탕 싸움’을 해 온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6월 20일, 사실상 경찰의 판정패로 결론난 이 싸움은 이제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합의안을 기준으로 국회에서 조만간 법안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국민은 그들 검경의 주장처럼 인권과 이익을 보장받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검찰은 만족하고 경찰은 불만스럽다는 이 결론 때문이 아니라 애초부터 이 논쟁에서 국민의 인권 존중과 이익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는 설령 경찰이 요구한대로 수사권이 조정되었다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이 싸움을 보는 나의 관점은 간단했다. 작은 완장(경찰)이 보다 큰 완장에게 그 완장의 크기를 내 달라는 싸움이었을 뿐 처음부터 그 사이에 국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싸움 양상도 아름다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 기관의 구성원들이 보여준 조직의 이익을 위한 충성심은 두고 두고 논란이 될 것 같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6월 17일, 검경 수사권 조정을 논의하는 ‘수사 현실의 법제화 입법공청회’가 열린 국회에서의 일이다. 평일 임에도 불구하고 약 2천여명의 현직 경찰관이 이 공청회에 대거 참석했다. 불과 500명이 입장 가능한 회의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네 배가 넘는 경찰관으로 가득 채워진 그곳에서 경찰의 입장을 옹호하는 발제에는 환호를, 반면 검찰 입장을 옹호라는 발제에는 심한 야유를 보냈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음이 이런 경우 아닐까.

검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중수부 폐지를 언급하는 사법개혁 논의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자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일시 중단하는 등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황당한 ‘앙탈’을 부린 사건이나 이번 수사권 조정에 대해 ‘평검사 회의’를 소집하여 집단행동을 한 처신 등이 그렇다. 과연 엄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려야하는 검사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이처럼 자기 주장의 선명성과 이익을 위해서만 국민을 이용할 뿐, 두 권력 기관이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보이는 모습에서 그 진정성은 확인할 수 없었다.

국민의 이익은 없고 완장의 크기만 두고 싸우는 검찰과 경찰

서두에 밝힌 듯 나는 그동안 수사권 조정에 있어 경찰의 입장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결국 내가 지지했던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사실상 실패했음에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실망스럽지도, 그렇다고 안타깝지도 않다. 미안하지만 시작도 단순했으니 변심의 이유도 단순하다.

1998년. 근 50년만에 정권 교체로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요구처럼 민주주의와 인권을 국정의 가치로 두고 사회 전 분야에서 강력한 개혁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가장 빠르게 많은 변화를 보여준 조직은 내가 보기에 적어도 ‘경찰’이었다.

물론 이 시기 경찰도 문제는 많았다. 예를 들어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벌어진 경찰의 난폭한 진압이라던가 정리해고에 맞선 대우자동차 노동자를 상대로한 무자비한 집단 폭력사태, 그리고 여의도 농민시위 과정에서 빚어진 농민 사망 사건 등등이 그러했다.

하지만 과거 독재 정권하에서 최루탄과 곤봉, 그리고 인권 침해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무시 무시한 ‘독수리’ 대신 앙징맞은 ‘포돌이’로 마스코트를 바꾸듯 당시 경찰이 변화하려는 노력만큼은 검찰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비록 수면 위에서는 강하게 부딪혀도 물밑에서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다각적인 실무 접촉과 대화가 가능한 시기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치안도 서비스’임을 내세워 위급 상황에서 펑크난 자동차 바퀴마저 교체해주는 경찰의 '과잉 친절'이 화제가 된 시기도 이때부터였다. 또한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는 취지에서 발족한 ‘경찰청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라던가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 끝에 숨진 대공분실을 인권보호센타로 개조, 일반인에게 공개한 일 등은 분명 경찰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용기있는 자세였다고 나는 평가했다.

반면 검찰은 요지부동이었다. 소위 '정권은 유한하나 검찰은 무한하다'는 자부심과 아집이 그대로 느껴졌다. 특히 지난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문제가 됐던 사안에 대해 국가 신뢰성 회복 차원에서 국정원과 국방부, 검찰, 경찰 등이 스스로 조사해 밝히는 자율적인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발족을 요구한 것에 대해 끝까지 유일하게 거부한 기관 역시 검찰이었다.

그래서 그랬다. 검찰을 바꿀 수 없다면 검찰의 큰 완장을 쪼개고 쪼개 지나치게 큰 권한을 주체하지 못하는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 것이다. 또한 그것이 진정한 '분권과 견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경찰이 약속한 변화를 믿었고 그들에게 힘이 되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것이 그 당시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경찰은 이미 예전의 그 경찰이 아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하에서 스스로 변화를 다짐했고 일부 실천했던 그 경찰의 모습은 이제 상징물 ‘포돌이’만 남고 나머지 모든 말들은 공허하다 못해 그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용산참사 사건 과정에서 빚어진 철거민을 상대로 한 야만적인 살인 행위는 그만 언급하자.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평화적인 집회 현장에서의 난폭한 경찰의 진압, 경찰 차량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집회 참가자들에게 가하는 황당한 욕설과 반말을 들으며 나는 극심한 자괴심과 혼란감을 느꼈다.

특히 현 조현오 경찰청장이 취임 직전,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케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황당한 명예훼손 발언과 이후 이를 처벌해 달라는 유족의 고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검찰과 경찰이 합작으로 무시해 버리고 있는 이 ‘공동의 죄악’ 행위에 대해 국민으로서, 인권운동가로서 나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변한 적도, 그리고 변하려고 하지도 않은 검찰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으니 그만 두고 다만, 경찰의 지금 모습은 적어도 내가 신뢰하고 믿었던 그 경찰이 아니다. 그런데 어찌 그때처럼 내가 경찰을 믿고 그 권한을 나눠줘야 한다고 지지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큰 공룡이 작은 공룡을 관리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국민의 마음을 사는 경찰이어야 산다

결국 수사권 조정 논의는 경찰의 그 오랜 숙원과 바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허망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경찰은 냉정하게 자신의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경찰이 느끼는 그 허전함과 실망감에 공감하는 국민이 도대체 얼마나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검찰의 힘이 너무나 세기에, 그래서 검찰과의 ‘파워 게임’에서 밀려 또다시 경찰이 굴욕을 당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핵심은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한 경찰, 그 스스로의 문제임을 각성해야 한다. 그것이 답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은 도대체 경찰이 하자는대로 하면 무엇이 좋아진다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검찰이나 경찰이나 다 똑같이 정의롭지 못하며 시시비비를 공정하게 밝혀줄 정의의 사도라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수사권이 검찰에게 있던, 경찰에게 있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따라서 경찰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근원적 힘은 국민이어야 한다. 말로만 국민을 위한 경찰이 아니라 진짜 국민의 마음을 사는 경찰, 국민의 인권과 이익을 위해 어느 조직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하고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경찰은 살 수 있다.

경찰은 검찰보다 힘이 약해 서러움을 당한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경찰은 우리 국민 절대 다수에 있어 '염라대왕보다 무섭고 하느님보다 높은' 분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경찰이 기대한 결과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번에 수사 개시권을 명문화한 그 성과물을 두고 경찰이 어떻게 그 권한을 활용할 것인지 지켜볼 것이다.

그리하여 경찰이 ‘누리기 위한 완장으로서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과 이익을 위해 제대로 일하기 위한 권한’으로 수사권 조정이 꼭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제대로 일궈지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인권운동가인 내가 바라는 진짜 ‘수사권 조정의 핵심’임을 밝힌다.


고상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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