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아, 나 그대에게 정의를 기대해도 좋으랴?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11.07.2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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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모임이 ‘연찬회’ 얘기로 시끄러웠다. 요즘 신문과 방송에 화려하게 오르내리는 단어다. 일상적인 말도 아닌데, 어느덧 유행어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새삼스런 느낌을 갖게 됐다. 언어의 유행 또는 열쇠말(키워드)의 생성(生成)과 소멸에 관한 생각이다. 이 ‘용어’가 적절하게 정리된 한 언론(조선비즈 홈페이지)을 인용한다.

<이는 '관행 비리'다. 하천법을 만들고, 하천협회를 설립하고, 공무원 낙하산을 투하했다. 소속 공무원이 가 있기에 협회가 살도록 도와줘야 했고, '하천자재 및 공법전시회'를 협회예산조달 창구로 만들어 줬다. 매년 업체에 참가비로 300만원씩 뜯어내고, 공무원들은 연찬회를 연다며 흥청망청 쓰다가 걸려든 게 연찬회 사건의 본질이다. 비슷한 사례가 국토부 각 부서 곳곳에서 늘 벌어진다.>

국토부 뿐이랴? 이 관행은 소위 갑(甲)인 공무원(또는 공무원에 상응하는 기관의 직원)들과 ‘밥’ ‘호구’라고도 불리는 소위 을(乙)인 업체 관계자(또는 대표)들이 함께 제주도와 같은 관광명소의 호텔과 골프장 등에서 ‘일’을 위해 만나는 것이다. 대기업과 하청업체 사이도 대동소이(大同小異), 심지어는 정부 기구 사이에서도 갑과 을의 이런 관행이 빚어진다.

대개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2박3일 일정,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같은 해외에서 열리면 월요일 아침까지 3박3일이 되기도 한다.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기관’의 경우에는 주중에도 떠난다고 한다. 식사 후 ‘룸살롱에서 어울린다’는 여러 연찬회의 ‘모습들’에 관한 보도가 있었고, 어떤 기관은 ‘룸살롱이 아니고 나이트(클럽)였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다 ‘(여성이 있는) 유흥주점’이라고 정정했다던가? 저녁식사 비용(만?)은 자기들(공무원)이 냈다는 ‘입장’을 밝혀준 보도도 있었다. 아무렴, 당연히 그랬겠지! 낮말 밤말 듣는 새나 쥐 부르지 않아도, 목격자는 각지에 너무 많다. 폐쇄회로TV만으로도 너끈히 입증 가능하다. 우리의 자랑스런 공무원들이 설마 그랬을라고! 안심해도 되겠지.

그 모임 친구들 중에 공무원은 없었다. 대개 이런 연찬회와 같은 모임을 ‘메이드’(돈 내고 구성원 짜서 모임을 만든다는 일종의 은어)하는 입장의 사업가와 회사원들이었다. 한 친구, “기자들이 뭘 아나?”하며 필자를 보며 픽 웃었다. ‘신문에 난 게 다가 아니다.’는 투의 자못 신랄(辛辣)한 어조와 눈빛이었다.

그러다 ‘연찬회란 게 도대체 뭐냐?’ 하는 얘기로 말의 줄기가 돌았다. 먹고 마시는 것 아니겠냐, 당연히 잔치로 본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자로 써보자면, 연찬회(宴饌會)라는 것이다. 대개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 일요일 오후에 도착하는 2박3일의 형태임을 고려하면 6~7끼를 함께 먹고 자는 것이니 연찬회(連餐會)라는 ‘주장’도 나왔다. 돈을 내고 협찬하는 것이니 ‘乙의 입장에선’ 연찬회(捐贊會)가 될 수 있겠다고도 했다.

소기업을 꾸리는 한 친구는 ‘피눈물’과 ‘모욕감’을 애써 감추고, 그 며칠을 ‘인생에서 지워버린다’는 생각으로 ‘뭣 빠지게’ 모신다고 했다. 제 정신으로는 못한다고, ‘그것이 세상’이라고도 했다. 乙들이 경쟁적으로 젊은 공직자들을 새롭게 오염시키는 채널을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그 ‘불의(不義)의 고리’에 들어 있어야 최소한 ‘불편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었다.

공무원들은 어떤 경우 ‘출장’이라는 명분으로 자기 조직으로부터 출장비를 받기도 하는 것 같다고 회사원 친구는 털어놓았다. ‘일을 위해 휴일까지 반납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甲’도 있다고 했다. 확인해야 할 사항이지만, 이런 불합리의 ‘연찬회’에 국민의 세금까지 따로 지급되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전설적인 ‘큰 손’ 여인 장영자는 ‘경제는 유통이다’라는 말로 자신과 세상의 불의를 정의(?)내린 바 있다. 아직 이런 ‘통 큰’ 정의를 대체(代替)할만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으되, 그 같은 불의는 끊임없이 진화하여 ‘세상은 소통(疏通)이다’라는 비뚤어진 풍속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온 세상이 비리의 텃밭인양 하여 참 마음 씁쓸하다.

연찬회(硏鑽會)는, 사전에 따르면, ‘학문 따위를 깊이 연구하기 위하여 조직하는 모임’이다. 어떤 이들이 이런 엄연(儼然)한 이름의 뒤란에 그런 더러운 뜻을 똥칠했는지, 참 한심하다. 말과 뜻이 서로 걸맞지 않은 시대, 도리어 말과 뜻이 맞으면 어색한 세태다. 물정 모르는 무능한 글쟁이는 어쩌지 못하는 한숨 밖에 도리가 없다.

TV 뉴스에서, 곧 정부 각 부처의 사무관에 임용될 젊은 남녀 예비공무원들이 유격훈련을 받는 모습을 봤다. 하나같이 순수한 포부에 가득한 앳된 얼굴의 고시 합격자들, 참 좋았다. 그들의 말은 나라 위한 붉은 마음 거침없어 괜히 듣는 이 가슴까지 쿵쿵 뛰었다.

청년들아, 나 그대에게 성난 파도 같은 정의를 기대해도 좋으랴? 정녕 이 기쁨, 더 큰 기쁨으로 될 것 바라도 좋으랴?


강상헌 논설주간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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