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NGO는 복합·다층·이중적 관계

송성수l승인2011.07.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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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영역과 이슈에 대한 시민단체 대응 방식에 따라 갈등·경쟁·협력 발생
효과적 국정운영을 위해 협치 필수적이지만 NGO 영향력 커지는 것 경계

정부와 주창형NGO 관계유형 및 유형변화(1)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소속 주요단체를 중심으로-

시민사회 논단 - 송성수 박사 논문

정치적 기회구조의 개방성과 시민사회단체의 자원동원 능력에 따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는 다양한 관계유형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유형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처럼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정부-시민사회단체 관계유형은 각 정권의 특징과 시민사회단체의 특성에 발맞춰 다음 단계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신문>은 정치권력에 참여하는 다양한 행위자(시민사회단체)의 도전과 이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따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는 어떤 관계유형이 생겨나고, 이 관계유형 변화의 동학을 알아보는 특집기사를 세 번에 나누어 다뤄본다. /편집자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점차 확대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정부의 활동에 반대를 일삼는 집단’, ‘권력획득을 위해 홍위병 노릇을 하는 집단’, ‘얼굴을 바꾸어 나타난 개량주의 집단’이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최근 ‘거버넌스 실행을 위해 협력이 필요한 집단’이라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기는 하지만 시민사회단체의 역할과 이들이 정부와 맺는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이와 같은 단면적 인식은 정부-시민사회단체 관계유형 인식을 단순화시키는 우를 범하게 하는데, 정부에 대해 ‘갈등’만 일으키는 집단, 정부로부터 ‘포섭’된 집단, 정부와의 ‘협력’에 천착하는 집단이라는 오해를 초래해 민주화 이후 나타나는 정부-시민사회단체 간 다양한 관계유형에 대한 이해를 저해하곤 한다.

다시 말해 정부에 대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시민사회단체의 입체적 관계에 대해 올바로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각 정권의 특성(정치적 기회구조)과 정권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특징(자원동원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관계유형의 차이와 그 변화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관계는 역사적·정치적 맥락과 사회·경제적 구조에 따라 상이하고, 시민사회단체의 활동 목표와 조직의 특성에 따라서도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이 강조된다. 따라서 양자 간의 관계는 일반론으로 규명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각국의 정치·경제·사회적 구조 및 시대적 상황의 차이에 따라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의 인식에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 목표 또한 상이하다. 이에 따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 서로 다른 관계유형이 형성 되고, 이 관계유형 또한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관계를 유형화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자의 호기심은 (한국)정치적 기회구조의 변화와 시민사회단체 자원동원 능력의 차이에 따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관계유형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 관계유형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지를 관찰하는 데에 있다.

정권별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유형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관계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활동 영역과 이슈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대응 방식에 따라 갈등, 경쟁, 협력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관계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효과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시민사회단체 등 민간의 협력이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정부는 항상 시민사회단체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민사회단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이러한 참여에 따라 비판과 견제의 칼날이 무뎌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의 관계를 하나의 유형으로 단정 짓기란 쉽지 않은 일이나, 졸고에서는 두드러진 특징을 바탕으로 대표적 유형을 찾아 각 정권에 대입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글에서는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관계유형을 정치적 기회구조의 변화와 시민사회단체 자원동원 능력의 차이를 중심으로 해, 이 두 가지 요인의 수준에 따라 ‘갈등유형’, ‘포섭유형’, ‘경쟁유형’, ‘협력유형’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다시 말해 정치적 기회구조가 폐쇄적이고 시민사회단체의 자원동원 능력이 높은 경우 갈등유형, 정치적 기회구조가 폐쇄적(일부 개방)인 가운데 시민사회단체의 자원동원 능력이 낮은 경우 포섭유형, 정치적 기회구조가 개방적이고 시민사회단체의 자원동원 능력이 높은 경우 경쟁유형과 협력유형으로 구분하였으며, 미시적으로 경쟁유형과 협력유형은 연대를 통한 대정부 견제정도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치적 기회구조는 참여를 보장하는 법제 마련, 정부의 재정지원, 정부-시민사회단체 이념성향 일치도를 검토하였으며, 시민사회단체의 자원동원 능력은 시민사회단체의 재정 자율성, 시민사회단체 및 회원의 규모, 연대를 통한 대정부 견제 정도를 통해 살펴보았다.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현대제철, 석면사문석 사용 말라”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소속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 전국금속노련, 전국석면피해자와가족협회, 당진환경운동연합과 석면피해자, 회원 등은 지난 13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사옥앞에서 현대자동자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제철이 사용중인 석면사문석의 사용을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포스코가 소재지역의 포항환경운동연합과 현대제철이 소재지역의 당진환경운동연

노태우 정권 시절=갈등관계유형

△시민사회단체 참여를 보장하는 법제 마련= 이 시기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는 전무하다시피 했으며, 노태우 정권은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수용하지 않은 채 힘으로 억누르려했다. 당시 정부는 시민사회단체를 활성화시키기보다 ‘사회단체등록에관한법률’과 ‘기부금품모집금지법’ 등을 통해 통제하려고 했다.

각종 사회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1963년) ‘사회단체등록에관한법률’은 일정한 범위 외의 단체는 결성 후 10일 이내 주무관청에 등록하고 변경사항이 있으면 다시 변경등록 하도록 하는 등 까다로운 등록절차와 매년 두 차례에 걸쳐 회원수와 활동사항을 보고하고 위반 사항이 있을 시 등록을 취소하는 등의 조치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통제하였다.

‘기부금품모집금지법’ 또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제약하는 굴레였는데, 이 법에 따라 무분별한 기부금품 모집을 규제하고, 모집된 기부금품이 적정하게 사용될 수 있게 하고자 하였으나 실제로는 시민사회단체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길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다.

시민참여를 보장하는 법제의 낮은 수준과 참여활동에 대한 노태우 정권의 강압적 태도는 ‘시민운동=정권퇴진운동’이라는 트라우마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되며, 합법적 절차를 통해 출범한 단체(전교조)에 대한 노태우 정권의 압박이 지속되는 분위기 속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의 법제 마련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부의 시민사회단체 재정지원=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은 각 부처의 관련 개별법이나 1986년 제정된 ‘보조금예산및관리에관한법률’에 근거하는데, 관련 개별법으로는 새마을운동본부, 바르게살기협의회, 자유총연맹 등의 국민운동 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육성법, 재정경제부의 소비자육성법, 여성부의 여성발전기본법 등이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지방자치법과 관련 조례에 근거(김경희, 2001)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노태우 정권의 인식은 정부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를 일삼는 ‘불온’ 혹은 ‘불법’ 단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에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를 활성화하거나 지원하는 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정권의 기호에 맞는 단체들을 설립해 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바르게살기운동조직육성법’을 제정해 바르게살기협의회를 설립하고 지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관변)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재정지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노태우 정권은 정부의 의지에 맞는 사업과 단체에 대해 특혜와 같은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돈을 통한 지배”를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보조금예산및관리에관한법률’이나 ‘바르게살기운동조직육성법’이라는 법률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 (관변)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은 보조금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와 같이 사용 내역에 사무실 운영비와 인건비 등의 경상비까지 포함되어 있는 ‘보조금’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공모 방식을 통해 사업비만 지원하는 ‘재정지원’과 방식과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시민사회단체 이념성향 일치도= 당시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이념적 불일치는 대북정책에서 선명하게 나타났다. 전대협을 중심으로 한 통일운동 세력에 대해 노태우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확대 적용하고, 이들에게 ‘좌경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여론몰이에 앞장섰다.

특히 임수경 씨와 문익환 목사의 밀입북 사건을 계기로 노태우 정권은 검찰, 안기부, 보안사, 경찰 등으로 구성된 공안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여 이른바 ‘좌경급진세력’에 대응(김영명, 2006)하기도 하였다.

당시 정권과 언론은 문익환 목사에 대해 일제히 ‘색깔이 의심스러운 위험한 인물’이라고 하거나 ‘소영웅주의적, 감상적 통일주의자’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주력하였으며, ‘우리정부의 협상력을 파탄시키고 북한의 대남공작에 놀아난 것’이라는 주장 아래 이들을 구속하고 새로운 공안정국을 일으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빌미로 삼았다(이승환, 2009).

정치사범으로 분류되는 시국사범의 규모와 법률위반 내용을 통해 노태우 정권과 시민사회단체의 이념성향 일치도를 살펴보면 그 차이를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밝힌 연도별 시국사범자 수를 비교해 보면 1988년 779건, 1989년 1515건, 1990년 1812건, 1991년 1356건, 1992년 1145건, 1993년 202건, 1994년 775건, 1995년 623건, 1996년 1269건, 1997년 1375건이었다.

또한 법원 행정처에서 작성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제6공화국 시기 국가보안법 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이유로 총 4,340명이 공소제기 된 반면 김영삼 정권에서는 총 1,875명이 기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국사건으로 기소된 인원을 연도별로 비교하면 노태우 정권 출범 첫해인 1988년 679명이었던 시국사범이 김영삼 정권 출범 첫해인 1993년엔 330명으로 반 이상 줄어들었으며, 각 정권 3년차인 1990년과 1995년에는 각각 1,379명과 371명으로 나타났다.

거칠게 말해 김영삼 정권 때 시국사범 숫자가 노태우 정권 시기의 4분의 1수준으로 낮아진 것으로, 노태우 정권과 시민사회단체의 이념성향 일치도가 낮았음을 짐작케 한다.

△재정 자율성= 노태우 정권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재정 의존도는 제로(zero)에 가까웠다. 반독재?민주화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던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군사정변의 일원이자 군사정권의 연장선에 있었던 노태우 정권에 대해 비우호적 입장을 유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 민주주의 확대를 요구하며 갈등하였다. 따라서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이를 원치도 않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그만큼 시민사회단체의 재정 자율성이 높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한데, “美, 이집트 민주화운동 자금 지원”이라는 제목의 2011년 1월 29일자 <조선일보> 기사는 1970~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사회단체의 재정 상황을 설명하는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문은 “2007년 12월 6일자 미국 외교전문에 따르면 미 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USAID)는 이집트 민주화와 국정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에 2008년 6,650만 달러, 2009년 7,500만 달러를 후원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하며 “미 정부의 자금은 이집트 정부는 물론 이집트와 현지에서 활동하는 미국 비정부기구에 건네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 이래 지속되어 온 군사정권에서 한국시민사회단체는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는데, 당시 이들의 활동자금은 대체로 외국지원에 의존하거나 독지가의 기부에 의존하는 구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토론회가 지난 2005년 6월 개최되었는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아시아 민주포럼’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는 “1970~80년대에 유럽 등지에서 아사아권으로 들어오는 민주화운동 자금의 50% 이상이 한때 한국에 들어오기도 했다.”고(<한겨레 신문> 2005. 6. 6) 전하였다.

한편 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시민사회단체 내부의 노력도 다방면에서 이루어졌다. 변호사들의 경우 무료 변론을 자임하고 나서는가 하면 스스로 단체를 만들어 운영비를 후원하기도 했다. 경실련의 경우 창립초기 30명의 지도위원 중 3명이, 90명의 상집위원 중 7명이 법조인이었다.

이들 전문가 집단은 경실련(시민사회단체) 활동과 관련해 법적인 문제를 자문할 뿐만 아니라 단체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재정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기도 하였다.

△시민사회단체 및 회원 규모= 민주화의 열기 속에 수많은 단체들이 창설되었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매년 새로 결성 된 노동조합 수가 1,428개(87년), 2,061개(88년), 1,719개(89년)였으며, 1988년 4월에는 15개 언론사 노조가 모여 전국언론사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하고 11월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을 출범시켰다.

같은 시기 전국대학생대표자들의 모임인 전대협이 탄생하는가 하면 교원들의 모임인 전교조가 출범하는 등 시민사회단체와 참여자의 규모가 점차 확대되었다. 전교조의 경우 전국 10개 지역에서 1만 5,000명이 참가하면서 출범하였고, 전대협의 경우 1987년 결성 당시 전국 95개 대학에서 약 3,500여명이 모여 결성식을 강행하였다.

또한 민주화운동 세력이 제도정치권, 시민운동권, 민중운동권으로 분화되면서 시민사회단체의 설립이 시작되었는데 ‘신사회운동’의 대표적 모델인 한국여성민우회가 1987년 창립되었고, 시민사회단체의 ‘맏형’으로 불리는 경실련이 1989년 창립되었다.

‘신사회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러한 단체들은 노동운동, 민주화운동과 차별화된 활동을 전개하였지만 당시 그 규모와 영향력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었다.

한편 시민사회단체의 규모는 회원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시기 시민사회단체의 회원수가 빠르게 확대되었다. 경실련의 경우 창립 다음 해인 1990년 2배 이상 회원수가 증가(1,904명→4,586명)하였고 노태우 정권 말기인 1992년에는 7,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활발하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운동’을 표방하고 나선 시민사회단체들도 차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연대를 통한 대정부 견제 정도= 재야세력, 노동자, 학생그룹 등이 연대해 노태우 정권에 대해 ‘독재타도, 정권퇴진’을 외치던 당시 시민사회단체의 견제 정도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1987년 이후 노동조합들은 지역단위의 협의회와 부문별 협의회를 결성하며 연대활동을 강화해 나갔다.

지역 협의회의 경우 1987년 12월 마산창원지역노동조합총연합 창립을 시작으로 하여 1988년 진주, 서울, 인천, 전북 등 총 16개 지역에서 지역 협의회가 건설되었으며, 부문별 협의회의 경우 1987년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을 시작으로 1989년 병원, 화물, 출판 등 12개 업종별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이 때 출범하게 되었다.

노동조합 설립은 1989년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다수의 노동조합에서 기존의 한국노총을 대신하는 새로운 상급단체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으며 이러한 요구에 따라 1990년 1월 노동기본권의 쟁취, 비민주시대의 청산 등을 과제로 선언한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창립되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적인 연대활동은 1991년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가 전개한 공명선거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금권?관권선거로 얼룩진 선거 문화를 일소하고 공명한 선거를 이루기 위해 기획된 이 활동에 경실련, YMCA, 흥사단 등이 참여해 연대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공선협은 이후에도 선거 때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기구를 구성(하승창, 2001)해 연대활동을 펼쳤다.

이렇듯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은 연대활동을 통해 정부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여나갔다.

<다음호에 계속>



송성수 기획실장

송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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