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성장이 핵심요소

김영삼.김대중 정부 관계유형 송성수l승인2011.09.0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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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주창형NGO 관계유형 및 유형변화(2)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소속 주요단체를 중심으로-

김영삼 정권이 김대중 정권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포섭유형이 경쟁유형으로 변화

시민사회 논단 - 송성수 박사 논문

정치적 기회구조의 개방성과 시민사회단체의 자원동원 능력에 따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는 다양한 관계유형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유형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처럼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정부-시민사회단체 관계유형은 각 정권의 특징과 시민사회단체의 특성에 발맞춰 다음 단계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신문>은 정치권력에 참여하는 다양한 행위자(시민사회단체)의 도전과 이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따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는 어떤 관계유형이 생겨나고, 이 관계유형 변화의 동학을 알아보는 특집기사를 세 번에 나누어 다뤄본다. /편집자
시민사회단체 활성화 기초 닦다
“김영삼 정권 시절=포섭관계유형”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보장하는 법제 마련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김영삼 정권은 제도개혁을 위한 우군세력화의 일환으로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보장하였으며, 이를 위해 시민사회단체 참여에 활력을 불어 넣는 법제 추진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예를 들어 ‘사회단체의 등록에 관한 사항을 법으로 규율함으로써 건전한 사회질서를 유지할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사회단체등록에관한법률’은 행정관청의 허가에 따른 불필요한 정부 개입이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으며, 이러한 지적에 따라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회단체신고에관한법률’로 개정(1994)되었고, 1997년에는 시민사회단체 활동의 자율성을 제고한다는 취지에서 동법을 폐지하였다.

△시민사회단체 참여를 보장하는 법제 마련= 또한 정부는 시민사회단체의 공익활동이 확대되자 이를 촉진하기 위한 일환으로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을 폐지하고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대체입법(1995) 하였다. 이 법을 통해 시민사회단체의 기부금품모집을 허용하는 한편 무분별한 모집을 규제하고, 모집된 기부금품이 적정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유도하려한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의 설립과 유지에 있어 재정문제가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지목되는 현실에서 이 법의 제정은 시민사회단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렇듯 문민정부는 시민사회단체 설립과 운영에 걸림돌로 인식되어오던 법들을 개정 또는 폐지함으로써 시민사회단체 활성화의 기초를 닦았다.

△정부의 시민사회단체 재정지원= 개별법에 따라 특정 단체를 지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공모를 통해 투명하게 재정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994년 정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공보처가 ‘민주공동체실천사업’을 진행하였는데, 사업 첫 해인 1994년 13개 단체에 6억7000만원을 지원한데 이어 1995년 27개 단체에 8억9000만원, 1996년 35개 단체에 9억9000만원을 지원했다.

1994년부터 공모방식으로 시행된 이 사업은 1999년까지 꾸준히 증가했다가 2000년부터 감소했는데 1994년 13개 단체를 지원했던 것이 문민정부 말인 1997년 39개 단체로 증가했으며 신청단체수도 19개에서 70개로 늘어났다. 이와 같은 정부의 재정지원은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되고 있는데, 그 중 지원을 통해 시민사회단체를 포섭하려한 의도는 정무장관실의 1994년 새해업무보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정무장관실은 이 보고서에서 ‘국제적 변화에 부응하는 시민운동 방향정립을 모색하는 계기로 시민사회단체의 해외시찰을 주선하는 한편 시민사회단체의 개혁동참 지원을 통해 시민사회단체의 자발적 개혁동참을 유도하겠다’(<연합뉴스> 1994. 1. 28)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김영삼 정권은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통해 시민사회단체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시민사회단체를 정책의 파트너로 인정하며 정책형성과정에 참여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정부-시민사회단체 이념성향 일치도= 김영삼 정권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평가는 복잡하다. 이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평가와 문민정부 출범 배경의 간극에서 오는 것인데, 이에 따라 이념성향 일치 여부에 대해서도 판단이 이중적이다.

이와 같이 이념성향에 대한 이중적인 판단은 대북정책으로 더욱 심화되었는데,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며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예고하고 간첩혐의로 장기복역 중이었던 이인모 씨를 조건 없이 북송하는가 하면 진보적인 인사를 통일부총리로 임명하는 등 김영삼 정권은 (부분적으로)시민사회단체와 이념적 동질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문민정부의 대북정책은 파격에 가까웠는데 남북정상회담 성사 직전까지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대북정책에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내부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다.
이념적 일치감은 경제와 복지 부문에서도 나타났는데, 특히 재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제정의 실현 차원에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기본법’(1995), ‘국민의료보험법’(1997), ‘고용보험법’(1993) 등을 제정하면서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이상 일련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김영삼 정권에서 단행되었던 대북정책과 사회복지정책 그리고 각종 개혁 정책들은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이념성향이 부분적으로나마 일치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재정 자율성= 노태우 정권이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 정부(김영명, 2006)였다면 김영삼 정권은 민선?민간 정부로 분류(조희연, 2004)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관계 설정이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정부지원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민감성이 떨어지게 되었으며 다수의 단체들이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의지하게 되었다.

경실련의 수입구조를 연구한 김태룡(2002)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경실련이 1995년의 경우 주로 정부의 프로젝트 수입에 의존한 결과 후원금의 조성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당시 경실련의 수입 구조를 살펴보면 회비수입이 23.57%, 후원금이 18.36%인 가운데 기타 및 사업수입은 58.07%였다. 당시 경실련 본부의 수입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1993년 전체 수입 중 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37.84%이었으나 1995년에는 23.57%, 1997년에는 11.31%로 감소했다. 이는 당시 대표적인 시민사회단체로 주목 받던 경실련의 재정 자율성이 낮았으며 정부지원 등 외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시민사회단체의 특성상 조사 대상에 따라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시민사회운동연구원이 1998년 23개 NGO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서도 회비 및 후원금 비율이 41.2%인 반면 정부지원 14.8%, 기업후원 8.5%, 공공기금이 6.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양용희, 1998).

이와 같이 이 시기 다수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하였고 재정적으로 회비 이외에 후원금, 찬조금, 수익사업 등 외부 요인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았다. 다른 시기에 비해 재정 자율성이 낮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민사회단체 및 회원 규모= 1990년대에 이르러 ‘신사회운동’에 뿌리를 둔 시민사회단체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환경운동연합(1993), 녹색연합(1993), 참여연대(1994) 등 대표적인 시민사회단체들도 이 때 창설되었다.

행정안전부(2002, 2004)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10년 동안 정부에 등록된 시민사회단체가 773개 단체였던 반면 1991년부터 1995년까지 5년간 설립된 시민사회단체가 632개였고 1996년부터 2000년까지 5년간 등록된 시민사회단체가 1482개에 이르렀다.

등록된 단체 숫자만을 비교했을 때에도 한국의 시민사회가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급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당시 시민사회단체는 ‘새로운 운동’에 대한 기대와 국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하였으나 그 세력이 사회 변화를 추동할 만큼 규모면에서 성숙한 단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2002년 현재 약 2만50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경실련의 경우 김영삼 정권시절 회원수는 1993년 9002명, 1994년 1만1047명, 1995년 1만1472명에 그쳤다(원유미, 2002). 이때가 경실련의 ‘전성기’라고 불리던 시기였음을 감안할 때 의외의 결과인데, 2010년 회원수의 2분의 1수준이다.

이 시기 참여연대 회원수 또한 경실련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1994년 245명이었던 회원수가 1995년 349명, 1996년 867명, 1997년 1530명으로 증가했으나 2010년 현재 1만 2000여 명의 회원수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 이와 같이 시민사회단체와 회원의 규모를 현재 상황과 비교했을 때 당시 시민사회단체의 역량이 크지 않았으며 자원동원 능력 또한 높지 않았음을 예상할 수 있다.

△연대를 통한 대정부 견제 정도= 부분적으로나마 정부-시민사회단체 사이에 이념적 일치감이 형성되면서 정부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견제와 저항이 줄어들었고 연대활동 수준도 낮아졌다. 당시 민주화운동을 선도하였던 전대협이 해소되는가 하면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위해 단일대오를 형성해오던 그룹들이 1987년 이후 3가지 구성요소들로 분화되어 자기발전(조희연, 2004)하였다.

이 중에서도 시민사회단체는 사회서비스, 시민사회, 인권, 여성, 소비자, 문화, 환경, 보건의료, 지방자치, 교육,학술 등 부문별, 영역별로 세분화되기 시작했으며 이 상황 속에서 시민사회단체 내부의 연대활동이 약화되었다. 특히 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구 사회운동과 정체성을 구분 짓는 ‘대안 중심적 운동’을 천명하면서 스스로 견제 기능의 약화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당시 시민운동을 대표하던 경실련이 외부단체와 맺은 연대활동 빈도수를 살펴보면 1993년 이후 경실련을 위시한 시민사회단체 내부의 연대활동이 감소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3년 15건(7.5%)이었던 연대활동 건수가 1996년 2건(2.1%), 1997년 2건(1.7%)으로 줄어들었다.

참여연대의 경우에도 연대활동 빈도수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7개 부문에서 전개한 연대활동의 총합이 1995년 26건, 1996건 26건, 1997년 35건이었다. 김대중 정부 기간 60건 대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2분의 1수준이다. 전반적으로 연대를 통한 대정부 견제 정도가 낮아진 것이다.

시민사회와 정당이 지난 20일 서울광장에서 개최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공무원ㆍ교사 정치탄압 중단, 언론 공정성 복원,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 실현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심판! 희망시국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사랑해요 김진숙” 이라고 쓴 글귀를 보이고 있다.

국정운영 중요 파트너로 인식
“김대중 정권 시절=경쟁관계유형”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보장하는 법제 마련이 보다 구체화되었다. 당시 정치적 기회는 개방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데, 정권교체를 달성하고 ‘제2건국’을 내세운 김대중 정권은 시민사회단체를 국정운영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며 이들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법제 마련에 앞장섰다.

△시민사회단체 참여를 보장하는 법제 마련= ‘50년 만의 민주적인 정권교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기득권에 의해 국정은 일방적 방식으로 운영되어왔으며, 부패척결 등 이들에 대한 개혁 작업은 구 지배엘리트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들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를 위해 국민의정부는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 하였고 이를 위한 방안으로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 제정, ‘부패방지법’ 제정, ‘주민감사청구제도’ 도입 등이 검토되었다.

이러한 법제들은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활성화시키는 한편 정부에 대한 견제 활동을 강화시키는 장치들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법제들을 최대한 활용해 정부에 대한 견제와 경쟁을 강화해 나갔다.

특히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과 ‘부패방지법’의 경우 정부 정책이 효과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예산이 적정하게 쓰이고 있는지 감시하는 한편 공직자의 부정부패와 부조리를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정부의 시민사회단체 재정지원= 2000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제정과 함께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제도화 되었다. 그동안 정부의 시민사회단체 지원 사업은 각 부처의 사정에 따라 임의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동법이 제정됨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공개경쟁을 통해 시민사회단체에게 매년 각각 75억 원씩 지원하게 되었다.

개별법에 의해 특정 단체에게 배타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던 관행을 보편적 지원제도로 변경(김동춘 외, 2004)하고자 만들어진 이 법은 ‘비영리 민간단체의 자발적인 활동을 보장하고 건전한 민간단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비영리 민간단체로 하여금 공익활동 증진과 민주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 법에 따른 ‘공익활동지원사업’은 과거 새마을운동, 바르게살기운동, 자유총연맹에게 지원되었던 150억 원을 이 세 단체를 포함한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모, 선정, 평가의 단계를 거쳐 지원받도록 바뀐 것이다.

이처럼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은 단체운영에 필요한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가 정책운영 혹은 사회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업을 정해두고 시민사회단체에게 이 사업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시민사회단체가 필요로 하는 신청금액보다 적은 지원금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중간 평가를 통해 부실한 사업의 반납, 정산을 통한 불명확한 자금사용의 환수 등의 규제(국정홍보처, 2003)를 함으로써 공모사업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강화되었다.

△정부-시민사회단체 이념성향 일치도= 김대중 정권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 이념적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국민의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이념성향은 대체로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복지정책과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함에 있어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즈음 시민사회단체들은 ‘시혜적’ 성격의 복지시스템을 넘어선 ‘보편적’ 복지 정책을 요구하면서 ‘국민생활최저선확보’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진일보시킨 것으로 ‘빈곤선 이하의 저소득 국민에게 국가가 생계·교육·의료·주거·자활 등에 필요한 경비를 주어 최소한의 기초생활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성장보다 분배에 무게를 둔 친서민 정책을 정부에 주문한 것이다. 이념적으로 분배 중심의 경제 정책을 정부에 요구한 것인데, 정부는 시민사회단체의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1999년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폐지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였다.

김대중 정권과 시민사회단체의 이념성향 일치도는 대북정책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났는데, 국민의정부는 기존의 대결적 대북정책과 달리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하였고,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가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안보를 튼튼히 하는 가운데 화해·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갈 것을 천명한 ‘대북포용정책’에 대해 야당과 보수단체가 ‘퍼주기 정책’이라며 극렬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이것을 크게 환영하며 남북 화해?협력을 위해 정부와의 협력을 확대해 나갔다. 이와 같이 당시 정부-시민사회단체의 이념성향 일치도가 김영삼 정권시절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정 자율성= 시민사회단체의 재정규모를 살펴보면 1997년 1000만원~1억원 미만(43.5%)이 가장 많았던 반면 2000년에는 1억원~10억원 미만(40.0%)이 가장 많았고 2003년에는 다시 1000만원~1억원 미만(49.1%)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1억원 내외의 예산을 갖고 활동했다는 것인데, 주목할 점은 김대중 정권 중반인 2000년 1억원~10억원 미만의 단체의 수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 전체 시민사회단체의 규모가 증가한 가운데 재정 안전성 또한 확대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의 신뢰도와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시민사회단체의 회원수와 회비가 크게 증가하였다. 1991년 설립해 1만 5,0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녹색연합의 재정현황을 살펴보면 2000년 회비+후원금 비율이 76.2%, 2001년 71%, 2002년 72%인 것으로 나타났다(녹색연합, 2003). 전체 예산 중 회비+후원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70% 이상으로 재정 자율성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주요 시민사회단체의 총수입 중 회비와 후원금의 비율을 보면 대체로 50%를 상회하였으며 경실련의 경우 90%를 넘은 것(원유미, 2002)으로 나타났다. 김영삼 정권시기 20% 수준이었던 참여연대의 재정자립도 또한 김대중 정권 때에 크게 증가해 60%대까지 올라섰고 2002년 상반기에는 87%대까지 수직 상승하였다. 녹색연합과 참여연대의 경우 자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재정자립도가 약 70% 이상의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당시 시민사회단체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2000년 현재 연간 예산이 1억원~10억원 미만이 40.0%인 것에 반해 1000만원 미만도 20.1%나 되었다. 2000년 국정홍보처의 민주공동체실천사업에 참가한 33개 시민사회단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재정의 27.7%가 정부 지원으로 충당된 것으로 나타났다(임승빈, 2000).

2003년도 민주공동체실천사업 심사 자료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확인됐는데, 시민사회단체의 수입구조를 세분화 해보면 후원금 17%, 회비 26%, 기타 19%, 민간기금 6%, 지자체 6%, 중앙정부 26%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주요 시민사회단체에서 자신감의 표현으로 100% 재정독립을 이야기 할 때 다수의 풀뿌리단체들은 여전히 정부의 재정지원에 의존하고 있었다.

△시민사회단체 및 회원 규모= ‘NGO 폭발’로 일컬어지는 시민사회단체의 급성장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정부에 등록된 5008개 시민사회단체의 60% 이상이 1990년대 후반 이후 창립되었다(행정안전부 2002, 2004).

이와 같은 시민사회단체의 급증은 1997년 ‘사회단체등록에관한법률’이 폐지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는데, 정보화의 발달, 중산층의 확대, 국제화의 진전 등의 요인과 더불어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특히 행정기관에 등록하지 않아도 시민사회단체의 설립이 가능해지게 되자 시민사회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것이다.

한편 회원규모를 통해 시민사회단체의 힘을 가늠해보면, 2000년 현재 1만 8000여개로 추정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약 12%가 회원수 1만 명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거칠게 말해 1만 명 이상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시민사회단체가 약 2000여개나 된다는 것이다.

경실련에서 1999년 독립한 환경정의시민연대의 회원수와 회비의 변화를 보면 당시 시민사회단체가 급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2000년 약 500명이었던 회원수가 2002년 약 1900명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회원의 충원구조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2004년 참여연대가 밝힌 회원 가입동기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회원충원은 개인적 친분에 따른 면대면(face to face)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2000년을 전후 해 그 비율에 큰 차이가 나타났는데, 개인적 대면을 통한 권유에 따라 가입한 회원의 비율이 2000년 이전에는 96%였으나 2000년 이후에는 42%로 줄어들었다.

면대면 권유를 통한 가입이 줄어든 대신 캠페인, 강연회 등의 공공매개를 통한 회원가입이 증가(한준, 2004)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체 설립 초기에는 지인을 대상으로 한 개인적 권유로 회원이 충원되었지만 단체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점차 그 활동 목적에 동의하는 대중이 늘어나면서 회원 가입 경로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자원동원’ 관점에서 봤을 때, 소수의 지인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참여유도 방식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공공매개를 통해)간접적인 참여유도 방식으로 바뀐 것으로, 자원의 외부 충원 구조가 한층 탄탄해지고 견실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대를 통한 대정부 견제 정도= 은수미(2004)가 조사한 1997년, 2001년 전체 사회운동조직의 연계활동 자료에 따르면, 1997년 총 61건이었던 연대활동이 2001년에는 69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대활동을 통한 대정부 견제 정도는 빈도수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강화되었는데, 공동성명서 발표 등의 약한 연계가 18건에서 13건으로 줄어든 반면 연합조직결성이나, 공동행동과 같은 강한연계가 15건에서 21건으로 늘어났으며 간담회, 토론회 개최 등의 중위 연계도 28건에서 35건으로 증가했다.

즉 전체 연대활동의 빈도수가 확대된 가운데 약한 연계가 줄어든 것 이상 강한 연계와 중위 연계가 늘어나면서 정부에 대한 견제 활동이 늘었다는 것이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가 수행하였던 연대 사업 활동내용을 살펴보면, 1996년 26건, 1997년 32건이었던 연대활동이 2001년 60건, 2002년 56건으로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견제활동을 위해 시민사회단체의 연대활동이 강화되었는데, 2000년 6월 ‘판공비 공개운동 전국 네트워크’를 발족시키며 대정부 견제활동을 강화하였고, 2000년 1월 12일에는 전국 412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총선시민연대’를 구성하여 부패정치인 퇴출 운동에 박차를 가하며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해 나갔다.

이러한 연대활동은 횟수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큰 변화를 보였는데 ‘12.12반란자 기소 촉구 공동행동’,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등의 정치적 담론을 넘어 ‘정치관계법 시민사회단체 공동입법운동’, ‘동강댐 건설 반대운동’, ‘언론개혁국민연대’, ‘외국인노동자 차별철폐와 기본권 보장을 위한운동’ 등 사회 전반의 이슈에 대한 폭넓은 연대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정부에 대한 견제를 확대했다.
다음호에 계속


송성수 박사, 기획실장

송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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