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이 바뀌면 대한민국 교육이 바뀝니다”

교육비리에 맞서다 해직된 김형태씨의 서울시 교육의원으로 지낸 1년 고상만l승인2011.09.0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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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차원의 교육 시스템'이 성공 열쇠인 핀란드교육 과감하게 벤치마킹해야

정의와 양심이 이기는 세상이 되어 공익제보자가 힘든 삶 걸어가는 일 없었으면
옳은 것이 이긴다는 진리를 제자들에게 꼭 증명해 보여주고 싶은 심정 변함없어
잘못에 대해 시정·개선 요구할 수 있는 권한 가진 교육의원이 되었다는 게 행복
'교육비리 근절 특별 조례' 만드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반드시 목표 이룰 것

김형태 교육의원은 서울시 교육의원으로 있을때 교육비리근절조례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기자가 해직교사 김형태(45, 서울시 교육의원)의 이름을 처음 들은 때는 2009년 10월경이었던 것 같다. 당시 서울 양천고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김형태 교사는 학내 비리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에 감사를 요청한 것이 빌미가 되어 해직되면서 218일간에 걸친 1인시위를 했다. 그리고 이 사연이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에 의해 국정감사에서 제기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그 후 김 교사에 대한 소식은 교육 비리와 관련된 TV 시사 프로그램의 토막 소식을 통해 듣곤 했다. 기자는 그의 안타까운 해직 파문이 어서 마무리되기를 바랐다. 그러다가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그가 서울시 제5선거구(강서·양천·영등포) 교육의원으로 출마한다는 소식에 기자는 간절하게 그의 당선을 기원했다. 하지만 경험 있는 '정치꾼'도 아닌 그가 험난한 선거판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쉽게 떨칠 수 없었다.

해직교사에서 교육의원으로, 선생님의 변신

그러나 기적이었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고 유쾌한 기적'이었다. 해직교사였던 그가 서울시 교육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그 스스로도 당선을 확신하지 못한 출마였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어려운 출마를 결심한 이유가 새삼 놀랍다.

그는 "진보 교육감을 표방하고 출마한 당시 곽노현 후보가 표를 모아 당선되는데 나의 출마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불쏘시개로서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당시의 심정이었다"라고 고백했다.

해직교사인 그가 그렇게 '유쾌한 기적'을 통해 서울시 교육의원으로 당선되고 1년이 지난 7월 중순경, 한번쯤 만나고 싶었던 그를 우연히 만난 곳은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서울시 교육환경개선 현장검증단' 행사였다. 3일간 서울시내 각 학교를 방문하며 실태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기자와 김형태 의원이 같은 팀으로 배정된 것이다.

그때 식사를 하며 들은 김형태 의원의 말은 의외였다. 218일간이나 해직교사로서 검찰청에서, 교육청에서, 그리고 해직된 학교 앞에서 교육 비리에 맞서 싸워온 그 힘과 용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는 기자의 물음에 대해 던진 답이었다.

"저같은 초식형 인간이 어떻게 하다가 이런 육식형 인간들과 싸우게 된 것인지 저도 참 답답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기자는 그때 그의 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 원래 채식주의자이신가요?"라며 어처구니 없는 반문을 던지자 김형태 의원은 특유의 미소를 빙그레 띄우며 말을 건넸다.

"그 뜻이 아니구요. 초식형 인간은 소심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뜻하는 거죠.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모진 말도 잘 못하고 또 사소한 일에도 괜히 마음이 쓰여 잠도 못 자면서 힘들어 하는 스타일 말입니다. 그런데 육식형 인간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는데 가령 저를 파면한 학교 재단 측 사람들 경우처럼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그렇게 모질게 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초식형 인간이 분신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지독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던 사연은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중 알게 된 사실은 참으로 가슴 아팠다.

학내비리를 고발했다고 해직되면서 218일간 1인시위를 한 기형태 교육의원.

교육비리 고발하려고 분신을 고민했던 해직교사

서울 양천고 재직 중이던 2008년 4월, 당시 김형태 교사는 학교의 급식 비리 등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클린신고센터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후 진행된 감사에서 그가 제기한 대부분의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다.

하지만 결말은 엉뚱했다. 잘못된 교육 비리가 바로잡히는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앙심을 품은 재단 측이 김형태 교사를 파면한 것이다. 비공개 문서를 외부에 유출하고 유언비어를 퍼트렸다는 등의 9가지 이유가 징계 사유였다. 그때가 2009년 2월이었다.

이후 같은 해 6월, 김형태 교사는 다행히도 파면 취소 결정을 받았다. 징계에 있어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새로운 2막을 여는 짧은 축복이었다. 학교 측의 보복은 지독했다. 파면 취소 결정 며칠 만에 재단 측은 김형태 교사에 대해 징계위를 열어 또 다시 파면했다.

그렇게 시작한 싸움이 2009년 3월 10일부터 218일간의 1인시위로 이어진 것이다. 끝까지 보복한 재단에 맞서 역시 끈질기게 싸운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자 돌아온 김형태 의원의 답은 정말 '선생님다운 정답'이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이긴다는 진리를 제자들에게 꼭 증명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컸다. 너무나 절망스러웠으며 또한 절박했다고 한다. 그리고 교육 비리에 무관심한 우리 사회에 절망하여 분신자살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교육 비리에 맞서 싸운 해직교사가 그 학교에서 분신자살을 하면 사람들이 뭔가 깨달으며 새롭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처절한 절박함 때문이었다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다행히 현재까지는 해피엔딩이다. 이에 해직교사로서 살아온 그의 삶과 교육의원으로 보낸 지난 1년, 그리고 그가 꿈꾸는 서울교육에 대해,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공익제보자가 '죽기보다 힘든 삶' 살지 않기를

- 교육의원으로 당선된 지 어느덧 1년이 되었다. 해직교사로서 사학 비리에 싸우고, 너무나 힘들어 분신자살까지 생각할 정도였다는 글을 아프게 읽었다. 그래서 당선되고 1년이 지난 지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내가 겪은 지난 2~3년의 폭풍우 같은 경험이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말과 상식이 통하기보다는 힘과 돈이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제라도 정의와 양심이 이기는 세상이 되어 나 같은 공익제보자가 죽기보다 힘든 삶을 걸어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던 교사가 거리의 투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나 깜깜하고 절망스러웠으면 분신까지 생각했겠는가?
그래서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시민단체의 추천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것 역시 정의로운 시민들이 '강하고 힘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려는 뜻'으로 당선시켜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임기 마치는 그날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좋은 의정활동으로 보답하고 싶다."

- 해직교사에서 서울시 교육의원이 되면서 위상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는 어떤가.

"솔직히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교육의원의 영향력이 차관급이라고 하니 내가 벼락 출세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웃음) 그러나 속된 말로 출세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더구나 내가 애초부터 교육의원이 목표도 아니었잖는가.
하지만 굳이 달라진 것을 꼽자면 교육의원이 되기 전, 약 500명 정도와 내가 관계를 맺고 살았다면 지금은 한 5만 명,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산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솔직히 적응이 잘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정말 어떤 날은 지역구 행사가 7개씩이나 겹치고 하루에 받은 명함이 40장을 넘을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예전에 알고 지내던 분들과 연락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분들에게 늘 죄송하다."

시정과 개선 요구할 수 게 가장 신난다

- 교육의원으로서 지난 1년에 대해 스스로 평가한다면 어떤가?

"교육의원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좋아진 점은 교육청이나 시청에 '자료 요구권'과 '발언권'이 생겼다는 것이다. 너무나 식상한 답변일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이 점이 가장 행복하다. 이렇게 자료를 요청하여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또 보도자료 등을 내면서 잘못에 대해 시정이나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교육의원이 되었다는 것이 나로서는 매우 신나는 일이었다."

- 자료를 분석하고 이를 보도자료로 내면서 지역구도 관리하는 등의 일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함께 일을 도와주는 이들은 얼마나 있나?

"쉽지 않다. 더구나 요즘은 교육 문제가 워낙 '뜨거운 감자'라 여러 이슈가 제기되니 솔직히 일이 많다. 그래서 제대로 잘못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려면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한데 이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현재로서 정책조사원 1명뿐이다.

특히 내가 현재 속한 지역구가 서울 강서, 양천, 영등포구인데 인구 수만 따져봐도 무려 150만 명이나 된다. 그런데 이를 나와 함께 일하는 정책 조사원 1명과 단 둘이 하려고 하니 솔직히 무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1명의 정책 조사원을 두는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 실정인데 기본적으로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재미있는 것은 내 지역구에 속한 국회의원이 현재 6명이다. 그런데 이 6명의 국회의원을 도와주는 보좌진을 거칠게 합쳐보면 54명이나 된다. 이들 숫자만 단순비교해도 정말 어이 없는 일이 아닌가 싶다. 권위를 누리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은 갖춰줘야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솔직한 심정이다."

- 김 의원을 해직교사로 만든 학교와의 관계도 궁금하다. 교육의원 당선 후 변화된 관계가 있지 않을까 쉽게 예상할 수 있는데 어떤가?

"(웃음)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의원 당선되면 재단 측에서 한 번쯤 연락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 내가 순진했다.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지금도 해직 관련 소송은 진행 중이다. 다행히 최근 해직 관련 2심 재판에서도 파면 취소 결정이 나왔다.

그러나 학교 측은 나에 대해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여전히 음해하고 있다. 지난번에도 내가 1인시위 도중 수위 아저씨를 폭행했다며 검찰에 고소하여 이 때문에 경찰서와 검찰청에서 2번씩 조사를 받기도 했고 심지어 국과수에 가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억울한 일이다.

교육 비리를 저지르고도 바른 소리, 쓴소리 했다며 보복적으로 교사를 파면한 것에 대해 사과는 고사하고 여전히 보복하는 적반하장에 화가 난다. 하지만 돈과 힘으로 비리를 덮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깨닫게 해주고 싶다."

'시 쓰는 선생님'이 꿈인 그가 투사가 된 이유

- 선생님이었을 때 이야기 좀 듣고 싶다. 당시 국어 교사로 있으면서 '시 쓰는 선생님이 꿈'이었다고 들었다. 그런 교사가 어느 날 사학 비리에 맞선 투사가 된 경위가 궁금하다.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이 결국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웃음) 권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니 나에게 많은 고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성 문제나 학업 문제도 있었지만 학교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0교시 수업부터 방과후학교, 야간자율학습 강제까지. 그러다가 질 낮고 비싼 체육복 구입이나 급식의 질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학생들 편에 서서 대변하려고 애를 쓰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행정실 관계자를 통해 '급식 비리' 등 학교 비리를 알게 되면서 결정적으로 내 삶이 바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학교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정말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재단 측으로부터 돌아오는 답은 '해볼 테면 해봐'식이었다. 그래서 결국 고심 끝에 지도 감독 권한을 가진 서울시교육청에 공익제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순진했던 것 같다. 나는 당시 이렇게 해서 교육청 감사가 이뤄지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당시 교육청 감사는 사실상의 은폐 감사로 끝났고 이후 그 감사 요청한 이가 나라는 사실을 재단 측이 알게되자 결국 보복당하게 된 것이다. 시작은 미약한데 끝은 그야말로 창대해진 꼴이랄까.(웃음)"

- 인터넷에서 제자들이 김 의원에 대해 "선생님으로 계실 당시 학생들의 생일도 챙겨주고 또 발을 씻겨주시기도 했다. 특히 백혈병 걸린 학생을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여 병을 치료해준 일로 TV에 보도되기도 했다"라고 쓴 글도 읽었다. 사연이 궁금하다.

"(웃음) 사실 별거 아닌데 학생들이 선거에 나간다고 하니 좋은 이야기를 써준 것 같아 민망하다. 교사로 있을 당시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교도소'라고 부르는 현실에서 나름대로 내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 담임을 맡고 있는 아이들 생일에 생일잔치를 열어 주기도 했고 수학여행을 가서 한 명씩 발을 씻겨주기도 했다.

병 치료와 관련한 이야기는 약 10여 년 전쯤 내가 담임을 맡았던 한 학생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1학년에 강아무개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입학 1달 만에 백혈병을 앓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반 아이들이 그 친구의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먼저 도와주자며 나선 것이다. 아이들이 나서니 나도 함께 나서게 된 것이다.

그래서 주위에 헌혈할 사람도 찾아 나서고 또 병원비도 좀 모금하기도 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그 제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출간한 시집이었다. <아부지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라는 제목이었다.

제자들에게 참 고마운 것이 많다. 해직 시절과 선거 때 많은 힘이 되었다. 지금도 인터넷 카페(제자들이 만들어 준 카페 <리울 샘 모꼬지> 3000명 회원, 대부분 양천고 졸업생)나 페이스북, 그리고 문자 등으로 소식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제자들이 솔직히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지탱해준 힘이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자들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 교육의원으로서 지난 1년간 가장 열심히 노력한 분야는 무엇이고 성과는 무엇인가. 또 가장 많이 변한 것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교육비리 근절을 위해 가장 노력했다. 양천고, 진명여고, 숭실고 등 사학비리를 바로 잡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서울시교육청 '감사자문위원회' 위원으로서 교육청 감사관실의 인원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원활한 업무 지원을 위해 내부에 법무팀을 둘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상급식 특위 부위원장과 혁신학교 자문위원도 맡아 친환경 무상급식 실현과 서울형 혁신학교 도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교육의원 직선제 이후 예산을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노력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2억에서 최대 20억 원까지 교육의원이면 자기 지역구 예산으로 끌고가는 특권 아닌 특권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그러한 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에는 학교에서 예산을 얻기 위해 의원을 찾아오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지금은 철저하게 원칙을 지켜 합리적으로 예산을 집행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농담처럼 일부 의원들은 지역구에 갖다줄 예산이 없어 의원 할 맛이 안 난다는 말도 하기도 한다. 그만큼 달라지고 있는 것인데, 앞으로도 더욱 많은 변화를 기대해도 좋다."

- 그래도 아쉽고 부족한 점은 있을 것 같다. 지난 1년간의 활동 중 후회되는 점을 꼽는다면 무엇인가?

"전문성 부족으로 미처 짚지 못한 것, 그리고 즐겁게 의정활동을 하지 못한 것도 좀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건강관리를 잘 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해직 이후 건강관리를 잘 못했고 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해직 관련 소송으로 마음의 상처도 깊어진 것 같다. 아울러 초선의원이라 더 깊이 있게 짚지 못한 면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보다 의무감으로 일하기 보다는 기뻐하는 마음으로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지혜로운 의정활동을 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 최근 곽노현 교육감에게 "사학 비리 척결할 자신 없으면 동반 사퇴하자"는 극한의 주장을 본회의장에서 했다고 들었다. 교육감과 매우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김 의원이 이렇게까지 강한 발언을 할 정도라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인가?

"사실 누구보다 곽 교육감의 당선을 바랐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래서 당선을 자신하지 못하면서도 진보 교육감의 당선에 도움이 된다면 하는 심정으로 출마를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취임 초 "고질적인 비리사학에 대해 이사장 하나만 그만두게 해서는 달라지지 않는다. 연대책임을 물어 전체 이사를 그만두게 해야 그들 학교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까지 말해 오던 교육감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전과 달리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비리 사학의 반발도 예상되고 법적 공방을 할 경우 교육청이 패소할 수도 있다는 법률적 검토 의견도 있으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교육감의 고민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산 속에 있으면 산이 보이지 않듯이" 교육감이 지나치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는 것이 아닌가 아쉬웠다.

현재 사립학교법은 문제가 많다. 같은 비리도 공립의 경우 파면이지만, 사립은 전혀 다르다. 사실상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리고 있다. 그렇기에 사학비리를 근절하려는 강력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사학비리는 절대 척결될 수 없다. 그러니 법적 잣대로만 보지 말고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곽노현 교육감과 공동 운명체에 가까운 내가 본회의장에서 '동반 사퇴'까지 언급하며 발언하게 된 것이다.

한편, 우려와 달리 곽노현 교육감이 최근 해당 비리사학에 대해 감사 결과대로 이사들을 전원 해임하는 행정처분을 내리는 결단을 내렸다.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김형태 교육의원은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 제5선거구 교육의원으로 선출됐다. 왼쪽은 곽노현 현 서울시교육감.

교육비리 근절 조례 만들겠다

- 앞으로 교육의원으로 남은 임기가 약 3년 정도 있다. 그동안 꼭 하고 싶은 일도 있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교육비리 근절 특별 조례'를 만드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싶다. 나는 평소 "교육비리는 아이들의 꿈을 훔치는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핀란드형 교육 혁명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만큼 서울형 혁신학교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현재보다 행복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 양천고와의 해직 소송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 최근 2심에서도 승소했는데 만약 최종심에서 복직이 확정되면 다시 교사로 복직할 계획인가.

"나는 지금이라도 모든 짐을 내려놓고 학생들이 기다리는 교실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앞으로 파견될 양천고교 임시 이사들과 서울시교육청이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남은 3년 임기 동안 사심 없이 정말 멋지게 의정활동을 하고 싶다. 이를 통해 서울교육을 확실하게 혁신시키고 내 임기가 끝나는 날, 시민들로부터 진정한 박수를 받을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노력할 각오이다."

- 평소 지역구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지역구가 국회의원 6명이 배출되는 서울 강서, 양천, 영등포구를 모두 포괄하고 있는데 매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정말 선거 치르는데 지역구가 너무 넓어 죽는 줄 알았다. (웃음) 선거구민이 모두 150만 명이나 되는데 이들에게 명함 하나 들고 혼자서 선거운동하라고 하니 새벽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무리 명함을 돌려도 끝이 없었다. 이건 진짜 문제 있는 선거법이다. 이런 실정이니 거기서 들어오는 많은 민원과 행사를 챙기려고 하면 몸은 하나인데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사실상 지역구 관리는 불가능하다가 정답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구에서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늘 그분들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곤 하는데, 이 자리를 빌어 정말 노느라 지역구를 안 챙기는 것이 아니고 일하느라 제대로 못 챙기고 있다는 사실만은 믿어달라고 하고 싶다. 좋은 의정활동으로 꼭 보답하겠다."

강해서 잘린 것이 아니라 강하지 못해 잘렸다?

- 해직교사로서 싸운 명성(?) 때문에 김 의원을 직접 모르는 이들은 '대단히 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길 것 같다. 그런 분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다. 설명한다면 무엇이라고 하겠나.

"실제로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해직교사 출신이라고 하니 다들 내가 과격하고 강경파인 줄 안다. 하지만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 성격이 매우 부드럽고 섬세한 면을 보고 놀라곤 한다.(웃음)
나는 내가 학교로부터 두 차례나 파면당한 이유가 '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강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아마 학교에서는 김형태를 자르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 같다. 그러나 내가 예상과 달리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자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따라서 내 성격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외유내강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 참 알 수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려서 목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뇌종양으로 소천하는 바람에 가정경제를 위해 선생님이 되었는데, 시를 쓰며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사람을 야만의 시대가 불러내 투사로 만든 것이다. 바라기는 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 투사가 아닌 원래 내 모습처럼 살고 싶기도 하다."

- 끝으로 서울 교육의 획기적인 변화를 갈망하는 목소리가 높다.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답은 핀란드식 교육이 뿌리내리는 서울교육이다. 무한 경쟁이 아닌 협력, 차별이 아닌 지원과 배려가 숨 쉬는 학교를 꿈꾼다.

우리나라는 소위 경쟁에서 이긴 우수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그들을 우대한다. 하지만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잘하는 아이보다 못하는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이 아이가 왜 뒤떨어질까 원인을 분석한다. 그래서 선생님과 학교, 자체와 국가가 나서 그 아이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공부 못한다고 죄인처럼 기죽어 사는 아이들과는 달리 그곳 아이들은 공부 못해도 전혀 기죽지 않는다.

당당하게 가슴 펴고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 생활하는 북유럽 아이들을 보면서 솔직히 나는 교사로서, 교육의원으로서 눈물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렇기에 나는 '국가적 차원의 교육 시스템'이 성공의 열쇠인 핀란드 교육을 과감하게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학급당 인원 수를 낮추는 것이다. 학급당 인원 수가 선진국 수준으로 낮춰지지 않는 한 사고력, 창의력 수업, 학생 중심의 열린 수업, 토론 모둠 협력 수업 등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교육이 바뀌면 대한민국의 교육이 바뀐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기존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나부터 더 노력하겠다."


고상만 객원기자

고상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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