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시민사회는 경쟁·협력유형

송성수l승인2011.09.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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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기회구조와 시민사회단체 자원동원 능력의 ‘입체적 관계’

정부와 주창형NGO 관계유형 및 유형변화(3-끝)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소속 주요단체를 중심으로-

시민사회논단-송성수 박사 논문

정치적 기회구조의 개방성과 시민사회단체의 자원동원 능력에 따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는 다양한 관계유형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유형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처럼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정부-시민사회단체 관계유형은 각 정권의 특징과 시민사회단체의 특성에 발맞춰 다음 단계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신문>은 정치권력에 참여하는 다양한 행위자(시민사회단체)의 도전과 이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따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는 어떤 관계유형이 생겨나고, 이 관계유형 변화의 동학을 알아보는 특집기사를 세 번에 나누어 다뤄본다. /편집자
이념성향 일치도·시민사회 규모변화·대정부 견제가 관계유형 구분 지표
실질적 민주주의 확대와 시민사회단체 역량 증대는 대세의 흐름으로 인식

정부-시민사회 관계는 정치적 기회구조와 자원동원 능력에 따라 변화
중산층 참여욕구와 정부 견제심리가 확대될수록 경쟁·협력유형 이동
전체 시민사회단체 활력·풀뿌리 시민사회단체 활성화면 협력 증대
거버넌스가 강조되면서 시민사회단체 참여의 제도화는 확장될 가능성

오늘날 정보화와 세계화는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이다. 더디기는 하지만 민주주의는 진전되고 있으며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욕구에 기반 한 이들의 참여활동이 증가 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향후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는 어떤 관계를 형성하게 될까? 시민사회단체는 여전히 ‘정부의 활동에 반대’를 일삼거나 ‘권력획득을 위해 홍위병 노릇’을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고, 정부는 ‘NGO를 포섭’하거나 ‘시민사회단체를 탄압’하는 데에 역량을 집중할까?

민주화가 진전되고 사회가 다원화 되면서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의 관계가 복잡해졌다. 압도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일방적으로 추진되어 오던 국정운영 방식이 시민사회단체의 성장과 다원주의의 확산 등의 요인으로 인해 변화되기 시작했으며, 정부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짐에 따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관계유형은 더욱 다양해졌다.

공안기구감시네트워크
인권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안기구감시네트워크는 21일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구잡이 채증은 시민 감시이며 사찰이고 인권 침해”라며 “경찰의 도가 넘은 채증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정보1과장을 직권남용, 비밀누설죄 및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처벌할 것을 요구하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했다.

정치적 기회구조가 정부-시민사회단체 관계유형에 있어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다원주의에 대한 정부의 개방성이 높고 정치적 제휴의 안정성이 높다하더라도 다른 행위자(시민사회단체)의 역량이 미미할 경우 맺을 수 있는 관계유형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낙천?낙선운동에서 확인했듯이- 시민사회단체의 확대된 영향력으로 인해 정치적 기회구조가 바뀌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권특징과 NGO특성에 따라 이동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치적 기회구조의 개방성과 시민사회단체의 자원동원 능력에 따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는 다양한 관계유형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유형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처럼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정부-시민사회단체 관계유형은 각 정권의 특징과 시민사회단체의 특성에 발맞춰 다음 단계로 이동하곤 하는데, 즉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정치?사회적 환경의 특징과 각 정권에 대응하는 시민사회단체의 특성의 차이에 따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의 관계유형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노태우 정권에서는 정부-시민사회단체의 관계가 갈등유형에 가까웠으며, 김영삼 정권에서는 포섭유형, 김대중 정권에서는 경쟁유형, 노무현 정권에서는 협력유형에 가까웠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것을 정치적 기회구조의 개방성과 시민사회단체의 자원동원 능력으로 구분해 보면, 정치적 기회구조가 폐쇄되어 있고 자원동원 능력이 있을 때 갈등유형이, 정치적 기회구조가 일부 개방(폐쇄)되어 있고 자원동원 능력이 낮을 때 포섭유형이, 정치적 기회구조가 개방되어 있고 자원동원 능력이 높을 때 경쟁유형과 협력유형이 나타나며, 경쟁유형과 협력유형의 구분은 -미시적으로- 연대를 통한 대정부 견제 수준의 높고 낮음에 따라 구분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시민사회단체의 관계유형을 구분 짓는 지표 중 -정권에 따른- 관계유형 변화에서 주목할 만한 지표들이 발견되는데 △정부-시민사회단체 이념성향 일치도의 변화 △시민사회단체의 규모(영향력)의 변화 △연대를 통한 대정부 견제 수준의 정도가 그것이다.

이념적 일치감과 불일치

먼저 노태우 정권이 김영삼 정권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갈등유형이 포섭유형으로 변화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유형 변화에서 이념성향 일치 여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 되고 있다. 즉 노태우 정권에서 이념성향 불일치가 확연했다면 김영삼 정권에서 부분적으로 이념성향 일치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을 조희연(2004)이 분류한 민주주의 이행기 정권들의 성격으로 해석하면, 노태우 정권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 출범한 민선 정부이기는 하지만 군사정권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권위주의적 기득권으로 질서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직접선거에 의해 당선되었다고는 하나 노태우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군사정변과 연계되어 있었으며, 거리에 나서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등 노태우 정권에 대한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권위주의적 지배엘리트를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해오던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를 요구해 오던 시민사회단체를 ‘불편한 존재’ 혹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공안정국을 통해 이들을 압박해 나갔다. 쉽게 말해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간 이념적 일치감이 형성될 수 없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민주화운동의 옛 동지이자 후원자였던 김영삼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른바 문민정부가 수립되자 정부에 대한 이념적 일치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를 시작한 때로 구분되고 있는데, 권위주의적 기득권 질서가 무너지고 양김식 기득권 질서가 탄생하면서 정부-시민사회단체가 이념적으로 유사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김영삼 정권은 군사정권과 달리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기획하고 복지정책의 토대를 공고히 하였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시민사회단체와의 이념적 일치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처럼 각 정권의 이념성향의 차이에 따라 정부-시민사회단체의 관계유형이 바뀐 것은 지극히 한국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한국 정치의 특성 때문인데, 즉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군사정권과 이에 저항한 시민사회(단체)의 대결구도가 고착화되면서 정권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정부-시민사회단체의 관계가 달라졌으며, 특히 북한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대응이 어떠한가에 따라 양자 간 관계유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도구적 또는 변화 추동

김영삼 정권이 김대중 정권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포섭유형이 경쟁유형으로 바뀐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유형 변화에서는 시민사회단체의 성장이 핵심 요소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시민사회단체의 역량 변화(성장)는 개량 분석과 질적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많은 연구자들이 밝힌바와 같이 시민사회단체의 규모가 1990년대 후반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의 회원수도 이 기간에 크게 늘어났다.

일례로 참여연대의 회원수 변화를 살펴보면 1994년 45명, 1995년 349명, 1996년 867명, 1997년 1,530명(김영삼 정권기간)이었던 것이 1998년 3,324명, 1999년 6,199명, 2000년 10,879명, 2001년 14,596명, 2002년 13,165명(김대중 정권기간)으로 확대되었다.

회원수와 함께 회비의 변화를 통해서도 이 시기 시민사회단체의 역량이 증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1993년 4억 100여 만 원, 1994년 4억 900여 만 원이었던 경실련의 회비가 1995년 3억 300여 만 원, 1996년 2억 800여 만 원으로 줄어들었다가 1997년 8억 200여 만 원, 1998년 8억 2,000여 만 원으로 다시 크게 늘었다.

이처럼 시민사회단체와 회원의 규모가 성장하는 등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관계유형이 바뀌었는데, 김영삼 정권에서 시민사회단체가 필요에 따라 도구적으로 활용됐다면 김대중 정권에서는 시민사회단체가 주도적으로 정부의 변화를 추동하기까지 하였다. 다시 말해 확대된 힘을 바탕으로 정부의 포섭 내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인데, 폭발적으로 증대된 시민사회단체 역량이 이를 가능케 했다.

마지막으로 김대중 정권이 노무현 정권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경쟁유형이 협력유형으로 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정치적 기회구조와 자원동원 능력 모두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미시적 차원에서 연대를 통한 대정부 견제 수준이 낮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김대중 정권 시기에는 연대를 통한 대정부 견제가 강했지만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정지원도 늘어날 것

참여연대가 연차보고서를 통해 확인한 바와 같이 2003년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이 단체의 연대를 통한 견제활동 건수가 확연히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연대를 통한 대정부 견제 수준이 낮아지면서 정부-시민사회단체 관계유형이 변하였는데, 김대중 정권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활동과 견제 수준이 -낙천낙선운동에서 확인 했듯이- 기득권 지배엘리트의 뿌리를 뒤흔드는 수준이었다면 노무현 정권에서 시민사회단체의 견제 수준은 (특정 정책과 관련된)부분적이었으며 협력에 포획된 양상이었다. 다시 말해 참여정부가 시민사회단체의 정책 아젠다를 선점하고 협조를 요구함으로써 견제보다 협력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관계는 정치적 환경의 변화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동성을 통해 몇 가지 함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첫째, 정부-시민사회단체의 관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정치적 기회구조와 자원동원 능력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다양하게 변화한다. 둘째, 실질적 민주주의가 심화되고 중산층의 참여욕구와 정부에 대한 견제심리가 확대될수록 정부-시민사회단체 관계는 경쟁유형 또는 협력유형으로 이동한다. 셋째, 전체 시민사회단체의 활력이 유지되고 풀뿌리 시민사회단체가 활성화될 때 정부-시민사회단체 사이에 협력이 증대된다.

앞서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하였듯이 향후 시민사회단체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시민사회단체는 더 많은 회원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거버넌스와 민관 파트너십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시민사회단체 참여의 제도화는 확장될 가능성이 크며, 효과적인 파트너십의 실현을 위해 재정지원이 늘어날 것이 예견된다. 이념정당이 약화되고 포괄정당이 ‘유행’하는 현실에서 이념이 차지하는 비중이 차츰 희석되고 네티즌 등 ‘새로운 시민’의 참여에 따라 연대활동 양상이 크게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실질적 민주주의 확대와 시민사회단체 역량 증대는 대세의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다.

‘새로운 시민’ 참여에 큰 변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 시민사회단체는 ‘제5의 권력’이라 호명될 정도로 성장하였으며, 이들은 정부와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 전 부문에 있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수준은 높지 않으며, 정부-시민사회단체 관계에 대한 인식도 여전히 ‘국정에 대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집단’, ‘진보정권을 호위하는 홍위병 집단’, ‘정권에 타협하는 기회주의 집단’ 등 단면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의 활동 영역과 방식이 다양한 만큼 정부-시민사회단체는 입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특히 정치적 기회구조와 시민사회단체 자원동원 능력의 변화에 따라 관계유형이 변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비록 이명박 정권에서 역진(逆進)현상이 나타나기는 하였으나 정부-시민사회단체의 관계 유형은 점차 경쟁유형과 협력유형에 가까워지고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협력관계유형”

시민사회단체와 높은 이념성향 일치도 보여
NGO지원사업 축소와 재정악화는 큰 고민

참여정부는 청와대에 국민참여수석실과 시민사회수석실을 신설해 국민과 시민사회단체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국정에 반영하고자 하였다. 당시 시민사회단체의 참여활동을 보장하는 참여정부의 제도화 작업은 특히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측면에서 강조되었는데 ‘주민소환법’ 발효, ‘주민투표법’ 제정, ‘주민소송제도’ 도입, ‘주민참여예산제도’ 시행 등이 대표적이다.

△시민사회단체 참여를 보장하는 법제 마련=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를 견제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이자 풀뿌리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보장하는 이와 같은 법제를 통해 주민투표, 주민소환, 주민소송 등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정책 결정 사항을 주민투표에 부쳐 결정하도록 하는 주민투표가 전국에서 시행되었으며,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의해 행해진 위법, 불법 등의 행위에 대해 시민사회단체가 문제를 지적하며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등을 대상으로 각종 주민소송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주민투표와 주민소환 그리고 주민소송은 지방정부를 견제하는 강력한 도구로써 법제 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일정 수 이상 주민의 집단서명으로 선출직 지방공직자의 해임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 실시를 청구할 수 있고, 실시된 투표에서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선출직 공직자를 임기 중에 해임시키는 주민소환이 가능하며, 이 과정에서 위법이 드러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민소송을 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과 함께 노무현 정권은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올릴 수 있는 참여마당을 만들어 국민과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장려하며 쌍방향 소통을 확대해 나갔다.

△정부의 시민사회단체 재정지원= 정부의 시민사회단체 재정지원에 대해 보수 언론과 야당의 문제제기가 고조되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는 직접적인 재정지원 이외에 다양한 방식의 간접적 재정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나섰는데, ‘비영리민간단체에 대한 우편요금 감면’, ‘기부금품모집규제법’ 개정, ‘공공기관의 민간 개방’ 등을 통한 지원이 그것이다.

당시 민관협력 등 거버넌스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꾸준히 증가하였지만 행정자치부의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따른 지원 사업은 축소 위기에 빠져들었다.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참여정부의 재정지원에 야당의 반대 목소리가 커진 결과인데, 당초 150억 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던 ‘비영리민간단체공익활동지원사업’ 예산이 2004년 100억 원으로 삭감되었다.

이처럼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삭감된 것은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이해부족과 이 사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었는데, 정부가 정해 놓은 공익사업에 대해 시민사회단체가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받아 진행하는 공익사업을 특정 단체에게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보조금 사업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삭감을 주장한 야당(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은 ‘2004년 대통령 탄핵반대’ 활동에 참여했던 단체 중 일부가 다음 해 공모사업에서 선정되자 언론을 앞세워 “‘탄핵반대’ 단체가 정부로부터 재정을 지원 받아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행자부 지원사업의 부당성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노무현 정부의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직접적인 재정지원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에 따라 간접방식의 재정지원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었다.

△정부-시민사회단체 이념성향 일치도= 보수 집단으로부터 ‘퍼주기’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에서 ‘대북포용정책’이 지속되었다. 특히 진보와 보수가 정면으로 충돌한 ‘국가보안법’ 폐지와 관련해서 노무현 정권은 ‘역사의 무덤’에 묻어야할 법이라고 표현하며 시민사회단체와의 이념적 일치성을 드러냈는데, 당시 남북간 국지적 마찰이 빚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 사업이나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관계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노무현 정권은 복지 부문에서도 시민사회단체와 높은 이념성향 일치도를 보였는데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확충하고 개선하려는 논의를 지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였던 차상위 계층에 대한 지원도 확대해 나갔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환영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철학이나 생활신조에 있어 시민사회단체와 친화적 성향(김준기, 2006)을 나타냈다. 예를 들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각 분과위원회별로 관련 부처 장관인선을 위한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경실련, 여성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급 인사들을 추천위원으로 포함시켰고, 정보통신부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보통신정책에 대한 네티즌과 소비자들의 의견을 모아 장관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 발 더 나아가 건교부는 중앙부처 처음으로 NGO만 전담하는 보직인 ‘NGO담당관’을 새로 만들기까지 하였다. 시민사회단체 인사가 정부 요직에 임명된다는 것은 시민사회단체의 이념을 담은 주요 아젠다를 정부가 적극 수용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당시 시민사회단체가 주장해온 주요 아젠다와 이슈를 정부가 선점함으로써 오히려 시민사회단체가 활력을 잃게 되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정부-시민사회단체의 이념성향 일치성이 높아졌다.

△재정 자율성= 시민사회단체의 재정 자율성은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의 경우 참여정부 초기 58%대였던 회비 비율이 2004년, 2005년 60%대를 넘어섰으며 사옥 건립을 위해 특별 회비와 후원금 등을 대대적으로 모집한 2006년을 제외하고 이 비율이 유지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이 높은 재정 자립도가 모든 단체에게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소규모 풀뿌리 시민사회단체의 경우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인해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시민사회단체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시민사회단체의 재정문제가 심심찮게 거론되곤 하였다.

정현백 前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시민운동 리더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재정 확보’라고 진단하며 시민사회단체의 재정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극소수 단체를 제외하곤 빈곤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 그는 바람직한 시민사회단체의 재정확보를 위해 ‘진성회원 확대’에 집중해야 한다며, 2003년 국정홍보처의 민주공동체실천사업 심사자료를 소개하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시민사회단체의 평균 수입구조는 회비 26%, 중앙정부 지원 26%, 후원금 17%, 기타 9%, 민간기금 6%, 지자체 지원 6% 등’(<시민의신문> 2004. 5. 31)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어려운 재정상황 속에서 재원문제는 시민사회단체와 리더의 최대 현안이 되었다.

△시민사회단체 및 회원 규모= 시민사회단체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는데 2006년 <시민의신문>에서 발간한 『2006년 한국민간단체총람』에 따르면 한국의 NGO 수는 23,017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18,266개에 비해 3년 만에 약 26% 증가한 것이다. 2001년 이후 중앙행정기관과 각 시?도에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2001년 3,236개였던 시민사회단체가 2007년 7,072개로 급증하였다.

회원수 변화를 통해 시민사회단체의 규모를 살펴보면, 창립 당시 245명이었던 참여연대 회원수가 1997년 1,000명 선을 넘었고, 2000년 1만 명 선을 넘어섰으며, 2001년에는 1만 4,000명대에 이르렀다. 이후 매월 회비를 납부하지 않는 ‘종이회원’을 정리하고,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탈퇴하는 회원이 증가하면서 회원수는 1만 명 내외를 유지하였다.

이 시기 시민사회단체의 회원수가 정체되거나 줄어든 것은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되는데, 노무현 정권과 시민사회단체를 ‘유착관계’로 인식한 국민들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망을 시민사회단체에 대입함으로써 회원 규모의 빠른 성장세가 멈추어 선 것이다. 참여연대가 2002년 이른바 ‘종이회원’을 정리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2002년과 2003년 가입자수를 웃도는 탈퇴자 수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2005년, 2006년, 2007년 전체 회원수가 1만 명 이하였던 것을 통해 당시 탈퇴자 수가 크게 늘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연대를 통한 견제 정도= 연대활동을 통해 대정부 견제 수위를 높이고 영향력을 확대해오던 시민사회단체 내부에서 연대활동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었다. 이와 같은 흐름은 견제보다 협력에 비중을 두었던 당시 시민사회단체 내부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은데, 당시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대거 정부 요직에 진출함은 물론 각종 위원회를 통해 이들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게 되었고, 시민사회단체의 주요 아젠다가 오히려 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자 ‘밖에서의 견제보다 안에서의 협력’에 역점을 두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간격이 좁아지면서 연대를 통해 정부에 대한 견제와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연대활동의 필요성이 감소한 것이다.

당시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는 ‘이라크 파병’, ‘한미자유무역협정’, ‘부안 방폐장 건설’ 등의 이슈를 놓고 극심한 갈등을 빚었으며, 이에 시민사회단체는 대규모 연대를 통해 정부를 압박해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활동은 정부(정치) 개혁과 부패한 지배세력을 견제한 이전의 활동과 달리 특정 정책에 대한 저지활동에 집중하였다는 차이가 있다. 즉 연대를 통한 대정부 견제 활동이 사회의 전면적인 개혁을 추동하려는 것보다는 특정 이슈에 집중되었으며, 그 수준 또한 크게 약화되었다.


송성수 박사, 기획실장

송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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