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한글사랑’은 이제 썩 물러나라

강상헌 글샘터 강상헌l승인2011.10.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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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우수성을 만화로 배워본다’는 한글관련 한 시민단체 행사가 ‘오픈된다’는 한 언론사의 기사(記事)를 봤다. 그 단체의 공식 발표를 찾아보니 ‘10/6(목), 전시 오프닝 행사’라는 대목이 보인다.

‘오픈’이 무슨 말인가? ‘오프닝 행사’는 또 뭔가? 언제부터 ‘오픈’이 우리 말글에 이렇게 스며들었나? ‘오픈식’이란 말도 보인다. ‘오픈’과 ‘식(式)’을 합한 말이겠다. ‘오픈’이란 말에 어울리는 우리말이 없나? 사전을 ‘오픈’하여 찾아보라.

오픈이란 말을 쓰지 않은 글을 찾기가 어렵다. 그나마 ‘오픈’을 쓰지 않은 글은 ‘행사를 열다’ 또는 ‘열었다’가 아니고, ‘개최한다’ 또는 ‘개최했다’는 표현이었다. 그 단체의 ‘그 따위’ 정신 상태나, 글 쓰는 것이 직업일 터인 일부 언론 종사자들의 착란(錯亂) 수준의 말글 활용 실태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오픈’과 ‘오프닝’을 꾸중할 자격이 있는가? 엄정(嚴正)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라. 또 스스로의 말글 활용 습성도 뒤져보자.

필자는 한자로 된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야 우리 말글을 바르고 곱게 쓸 수 있다고 자주 말한다. 우리 말글의 중요한 요소인 한자 단어의 속뜻을 이해하면 어문(語文)의 해상도(解像度)가 높아진다. 더 선명한 그림이 마음속에 그려지는 효과를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말글로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일부러 한자말을 쓰거나 외래어 외국어를 쓰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 또 이런 경우 한자말이나 외래어 외국어의 미묘한 뜻의 차이(뉘앙스)는 정확한 소통을 방해하기도 한다. 실제 사례를 든다.

‘싸다’가 아닌 ‘저렴하다’는 말을 왜 그렇게 고집할까? ‘열다’ 대신 ‘개최하다’ ‘오픈하다’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 심리는 무엇 때문인가.

물건 값 대신 ‘대금’, 나이 대신 ‘연세’, 이름 대신 성함이나 존함, 좋아하다 대신 ‘선호하다’, 아는 사람 대신 ‘지인’, 어디에 있다 대신 ‘위치하다’ ‘주소를 두다’ 따위의 습성에도 우리의 언어에 대한 비틀린 심성(心性)이 숨어있다. 열등감(劣等感)일까? 문자(文字)를 써야 행세하던 시대를 보내던 비열(卑劣)함이 아직 남은 것인가.

한자말 단어는 써야할 때가 따로 있다. 그 단어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또 한자 단어에는 모양과 소리는 같고 뜻은 다른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많다. 자칫 엉뚱한 말이 되어 혼동을 부르게 한다는 얘기다.

대금이 무엇인가? 물건 값을 이르는 대금은 代金이다. 大?은 피리와 같은 전통 악기다. 貸金은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大金은 큰돈이라는 뜻도 있지만 ‘징’이라는 전통 악기의 한자 이름이기도 한다. 大禁은 역적(逆賊)질 같은 나라가 금지하는 큰 죄를 말한다. 그냥 ‘값’이라고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성함(姓銜)과 존함(尊銜)은 이름의 한문투 높임말이다. 안 써도 되는 옛 글자다. 명함(名銜)에도 있는 ‘함’자는 수결(手決) 즉 도장 대신에 손으로 쓰는(그리는) 표시다. 요즘 말로 서명(署名)이고 흔히 ‘사인(sign)’이라고 말하는 시그너쳐(signature)다. 어원을 따져 봐도 그냥 우리 말글의 ‘이름’이면 너끈하다. 왜 꼭 ‘성함’이라야 하는가? 이름은 상스러운가?

예쁜 여자가 TV광고에 나와 ‘지인’이라 하니까 그 말이 그렇게 유식하게 들렸을까? ‘아는 사람’으로 충분한 것을 꼭 지인(知人)이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또 知人은 그 ‘지인’ 말고도 옛말 지인지감(知人之鑑)에서처럼 ‘사람 됨됨이를 잘 알아봄’이란 뜻이 크니 이 구분은 필요 없을까? 다른 많은 ‘지인’들 즉 知印, 智仁, 至仁, 遲引, 知印, 至人 등의 뜻은 어찌할꼬?

지적하는 사람, 꾸중하는 선생이 없어 이렇듯 말글이 흐려지는가? 이런 행태는 기어이 잘못을 부른다. 교원(敎員) 한 사람을 만났던 기억, “교편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그가 자신을 소개했다. 교편(敎鞭)의 ‘편’은 채찍이다. 선생님은 스스로 아파하며 ‘사랑의 매’를 들었다. 교편을 한다는 이는 ‘짝퉁 선생님’이기 쉽다. 교편은 ‘드는’ 것이지 ‘하는’ 것이 아니다.

쓰지 않아도 될 말, 써서는 안 될 말을 무턱대고 쓰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바르고 고운 우리 말글을 제대로 쓰는 것은 한글날을 가진 대한민국의 문화시민으로서의 긍지(矜持)다. 항상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의 머리’[염두(念頭)]에 두고 항상 잊지 않아야 한다는 ‘염두에 두다’는 이 말을 요즘 ‘염두한다’라고 잘못 쓰는 이들이 있다. ‘생각한다’라는 뜻으로 질러버리는 것이다. 얼른 고쳐야 한다. 생각을 담는 그릇인 말글은 번듯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르다.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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