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제시한 재벌 총수일가 집행유예의 일반적인 근거는 “회사의 피해를 변제하였으며 다른 전과가 없고 개인의 이득을 취한 바 없다”는 것이었다.

경제개혁연대는 2006년 1월부터 2007월 7월말 현재까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상의 횡령 또는 배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총수와 전문경영인 239명의 판결내용을 분석해 지난달 28일 발표했다.

지배주주일가 29명의 집행유예 선고 이유는 △피해액 변제(28명, 96.6%) △범죄전력(16명 55.2) △개인적 이득 없음(11명, 37.9%) △범행자백&자수(6명, 20.7%) △사회공헌 및 경제발전기여(5명, 17.2% ) 등의 순이었다.

이런 양형근거는 일반사건 양형과 비교했을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먼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피해액 변제의 경우 재벌총수 일가가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도 재력을 이용해 회사 피해액만 변제하면 실형을 피할 수 있고 지배권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그릇된 편견을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항소심 판결 등에서 확인된 것처럼 재판부가 ‘개인적 이득 없음’을 지배주주일가가 기업집단에 대한 지분 유지, 부실 계열사 지원, 불법 비자금 조성 등 개인의 지위 보전을 위한 경우까지 포괄적으로 적용시켜 집행유예 취지와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다.

또 최근 총수들이 감형의 주된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경제 기여와 사회공헌 활동의 경우에도 재판부가 범죄자의 재력과 사회적 신분에 따라 양형을 차별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불법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후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경우에도 경제기여와 사회공헌 활동을 근거로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정 회장측은 만일 실형을 받게 되면 한국 자동차 산업이 영향을 받게 된다고 주장하는 한편 이번 달 사회공헌위원원회를 발족할 것이라면서 1조원 사회환원 계획을 거듭 밝혔다. 또 “재판부가 선처해 여수엑스포 유치라는 국가적 과제를 달성는데 공헌하게 해달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재판부가 77명의 전문경영인에게 유행유예를 선고한 근거로는 개인적 이득 없음(54명, 70.1%)과 전문경영인의 항변(52명, 67.5%)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전문경영인에 대한 이러한 판결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주주들의 신임으로 지위를 보장받은 전문경영인이 총수의 사익추구 행위에 동조해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일률적으로 선처하는 법원의 태도는 기업 지배구조개선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전문경영인들로 하여금 회사나 전체 주주의 대리인으로 충실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총수에게 충성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왜곡된 통념을 유지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결과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일반범죄에 비해 경미한 처벌은 화이트 칼라에 대한 사법적 규율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지배구조 개선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뿐 아니라 형법의 목적 가운데 하나인 예방적 효과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라며 “일반 범죄와 화이트칼라 범죄 간의 양형 격차를 확대함으로써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조장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고 평가했다.
심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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