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이유없이 죽은 아들과 함께 했던 시간에서 멈춰 있습니다”

평범한 어머니가 반미주의자가 된 그 사건, ‘이태원 살인사건’의 기억 고상만l승인2011.10.1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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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사람들의 차가운 눈빛과 냉대가 무엇보다 서러워 한없이 눈물만 흘렸어요”
“3대 독자를 재미삼아 죽였다?”...살인범 단죄 못함에 분노와 울분 토로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안타까워했지만 솔직히 저는 박수치며 봤습니다. 중필이가 이걸 보면서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을까. 누구도 미국에 대항하지 못하는데 참으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지금도 그 사람이(오사마 빈 라덴) 살아있다면 백악관을 폭파 시켰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인들이 많이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인권이 중요하다는 걸 알 겁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알카에다 테러 사건을 두고 故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02년 4월, 홍익대 재학중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들의 5주기 추모제 자리에서 였습니다. 그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던 이 어머니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미국에 대해 극심한 원한을 품게 된 것일까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와 민중의힘은 지난 13일로 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아더 패터슨에 대한 한국 송환을 촉구했다. 지난 1997년 이태원의 한 햄버거가게에서 당시 대학생이던 조중필씨를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던 패터슨은 형 집행정지로 출소해 미국에서 체류하다 지난 5월 미국 경찰에 체포되어 한국 송환을 위한 재판을 받고 있다.

기억하고 싶은 않은 1997년 4월 3일, 그리고 이태원

필자가 조중필씨의 어머니를 처음 만난 때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그러니까 1999년 9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당시 모 인권단체의 민원실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 당시 50대 후반이었던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씨(69세)가 한 뭉치의 서명용지를 들고 사무실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만난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사연은 참으로 어처구니없음, 그 자체였습니다.

어머니를 만나기 전, 필자는 조중필씨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언론 보도였습니다. 97년 4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그곳에서 한 대학생이 숨졌습니다. 숨진 이는 당시 홍익대학교 3학년이었던 조중필(당시 23세). 사건이 일어난 그날 조씨는 국기원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를 한 후 여자 친구를 데려다 주기 위해 이태원동으로 갔다고 합니다.

문제가 발생한 곳은 여자친구의 집 근처에 도착한 후 마지막으로 음료수를 마시자며 들린 햄버거 가게였습니다. 여자 친구가 음료를 시키는 동안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던 조씨는,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도 그곳에서 조중필씨는 살해당했습니다.

가해자는 바로 체포되었고 수사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친구 사이였던 미군과 미 군속 자녀인 아더 패터슨(당시 17세)과 애드워드 리(당시 18세)가 휘두른 잭크 나이프에 의해 무려 9군데나 공격을 받은 조씨가 그 자리에서 절명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조씨를 살해한 동기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들은 “그저 재미로 그랬다.”라고 했습니다. 체포된 에드워드의 당시 경찰 진술입니다. 친구였던 아더 패터슨과 함께 햄버거 가게에 있었는데 그때 패터슨이 자신에게 새로 산 재크 나이프를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장난을 치고 있던 중 마침 그들 곁으로 화장실에 들어가는 조씨가 눈에 띄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패터슨이 자신에게 “내가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라고 하면서 그를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조씨를 따라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패터슨이 아무런 의심없이 등을 돌리고 서 있던 조중필씨를 향해 재크나이프를 휘둘렀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이 사실 앞에서 당시 많은 이들이 그랬고 저 역시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건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기에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응당 살인자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제가 조씨의 어머니를 처음 만난 99년 9월 이전까지는 말입니다.

죽은 이는 있는데 살인자가 없는 ‘살인 사건’

하지만 놀랍게도 그러한 생각은 순진한 것이었습니다. 저를 찾아와 그동안 자신이 겪어야했던 기가 막힌 사연을 전하는 그 어머니 말씀은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어머니는 눈물로 말했습니다. “내 아들은 죽었는데 살인범이 없다고 합니다. 아무도 살인범으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살인 혐의로 1심 법정에 세워졌던 패터슨과 에드워드. 하지만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며 부인했고 상대방이 조씨를 살해했다고 서로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살인범이라고 공방만 거듭 하던 중, 결국 6개월 이상 구속 상태에서 심리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1심 심리를 종결 하던 날, 판사가 그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분명 칼을 휘둘러 조중필씨를 살해한 사실은 맞습니까?” 그들은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불행의 씨앗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고심 끝에 아더 패터슨에게 증거 인멸과 폭력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그리고 다른 에드워드 리에게는 조씨를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4개월후. 살인 혐의를 면한 패터슨은 항소를 포기하고 수감 생활을 하던 중 98년 8?15 특사로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혐의에 대해 억울하다며 항소했던 에드워드는 항소심에서 살인죄는 면하지 못했지만 미성년자인 점 때문에 20년형으로 감형되었다고 합니다. 너무 적은 형량에 억울했지만 가족들은 그렇게라도 사건이 마무리 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대법원 판결이었습니다. 사건의 모든 것이 엉클어지면서 결과가 뒤집어 진 것입니다. 즉, 그때까지 살인혐의로 기소되었던 에드워드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98년 9월 30일, 다시 열린 고등법원 재판에서 놀랍게도 에드워드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바로 당일 석방된 것입니다. 정말이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묻는 그 어머니의 황망한 표정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검찰의 우격다짐 "한번 찍으면 그대로 간다?"

이처럼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검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국적을 가진 이들이 연루된 사건이었기에 이 사건 수사에 관여한 미 범죄수사단(CID)은 처음부터 패터슨을 진범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 검찰은 미 범죄수사단(CID)과 달리 에드워드가 이 사건의 살인범이라고 고집했고 결국 그를 살인죄로 기소했습니다. 그리하여 미 범죄수사단이 최초 진범으로 지목했던 패터슨은 수감된지 1년 4개월만에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고, 이어 에드워드가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아 석방됨으로서 결국 이 희대의 살인사건이 “희생자는 있으나 가해자가 없는 기막힌 사건”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결국 어머니의 3대 독자였던 조씨의 목숨을 ‘그저 재미 삼아 죽였다’는 진짜 범인은 살인죄로 지금까지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그 어머니의 처절한 한과 울부짖음만 14년째 맴돌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더욱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은 검찰의 그 다음 대응이었습니다. 대법원에서 에드워드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된 후 결국 무죄로 석방되었을때 검찰은 이 사건의 진범일 수밖에 없는 패터슨에 대해 즉각적으로 출국 금지 조치를 취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조씨 가족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패터슨의 출국 금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담당 검사의 실수라고 했지만 이같은 황당한 검찰을 비웃듯 패터슨은 에드워드가 무죄 석방된 바로 다음날, 오산 미군기지를 통해 미국으로 도망쳐 버린 것입니다. 이 기상천외한 희대의 사건이 14년이 지나는 지금까지, 어쩌면 이제 불과 공소시효가 반년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끝내 미제로 처리될지 모르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면 믿겠습니까?

아들의 한을 풀기위해 나선 서명 요구에 도망가던 사람들

조씨의 어머니가 거리에 나서게 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한민국 검찰과 그리고 미국으로 도망가 버린 패터슨에 대한 분노로 어머니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심정과 고통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모든 어머니에게 그렇지만 막내아들 조중필씨는 그 어머니에게 정말 남다른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어렵게 낳은 3대 독자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학기마다 장학금을 받으며 늘 부모에게 순종했던 착한 아들이었다고 어머니는 회상했습니다. 그런 아들을 그저 “재미삼아 죽였다”고 말하는 그 살인범들 마저도 올바로 단죄하지 못하는 형편에 처했으니 그 분노와 울분이 바로 이후 어머니의 삶을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나선 거리에서, 여러 집회장에서, 그리고 낯선 인권단체를 찾아다니며 어머니는 미국으로 도망간 패터슨의 송환과 살인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고자 거리로 나섰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자식을 위해 부끄러움도, 그리고 발이 부어오르는 고통도 참으며 그 어머니는 매일 매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어머니. 그렇게 혼자 다니시면서 서명을 받아봐야 얼마 받지도 못하실텐데 어떠세요?”

너무나 딱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여쭤 본 물음에 어머니의 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자신이 겪는 몸의 고통보다 매일 매일 거리에서 만나는 또 다른 절망과 서러움 때문에 더 힘들다고 말입니다. 아들의 억울한 사연을 전하며 이름 하나만 적어달라고 내미는 서명용지를 본 후 자신을 향해 던지는 뭇사람들의 차가운 눈빛과 냉대가 무엇보다 서럽다고 어머니는 제 앞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 서러움이 복받쳐 몇 번이고 거리에서 눈물을 쏟아야 했다고 말입니다.

미국과 관련된 어떤 사건에 대해 부정적인 서명을 요구하는 어머니에게 사람들은 마치 사상범이나 몹쓸 병균이라도 가진 것처럼 자신을 피하는가 하면 심지어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망갔다고 합니다. 처음엔 그것이 서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답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다른 사람들의 그러한 무관심이 사실은 내 모습"이었다고 어머니는 독백했습니다. 그들의 무관심과 냉대가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불행한 일이 결코 나한테만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닌데 부탁하는 서명을 두고 놀라 도망치던 그 뒷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느낀 섭섭함은 잊을 수 없다던 그 어머니의 눈물이 오늘 가슴 아프게 떠오릅니다.

14년 맺힌 어머니의 한은 풀릴 수 있을까

이것을 다행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여하간 조씨의 어머니가 목 메이도록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토록 한맺힌 서명을 받아가며 바라고 바라던 아들의 살해범 아더 패터슨이 마침내 미국 사법당국에 검거되어 살인 혐의로 한국 정부에 송환될지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12년 4월이 공소시효인 이 사건에 불과 6개월여 기간밖에 남아 있지 않은 동안 과연 정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할 수 있을지 저는 걱정과 불안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가 없었던 이태원 조중필 살인사건. 이제 이 기막힌 사건의 종지부를 위해, 그리고 자국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해줄 무한 의무가 있는 대한민국 정부와 검찰이 적극 나서주기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그것이 조씨의 어머니가 국민으로서 당연히 보호받아야할 권리가 이뤄지지 못해 겪어야 했던 지난 14년간의 고통을 위로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요.

못 다핀 꽃, 고 조중필씨의 안타까운 넋과 그 어머니가 겪으며 지나온 고통과 상처가 이제 그만 아물기를 기원합니다.


고상만 객원기자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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