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은 생태운동, 지역운동과 연계 고민해야”

조희연-이영채의 일본사회운동 탐방(3)토리이 잇페이 전(全) 통일노동조합 서기장 조희연 이영채l승인2011.10.1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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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운동은 전쟁 가해자의 경험 때문에 자기부정에서 시작
총평, 시민·학생운동에 존중 없어...노조는 NGO·NPO와 연대해 갈 필요


한국의 사회운동은 80년대 이후 30여년 동안 장족의 발전을 해왔으며 수많은 단체들이 출현했다. 하지만 무한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했던 한국의 민중운동과 시민운동도 여러 지점에서 발전의 '병목지점'에 도달해 있으며, '전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반면 일본의 사회운동은 대체로 '실패의 역사'로 한국에는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패에서도 배울 점이 있으며, 실패의 역사라는 피상적 인식 이면에서 전개되어온 건강한 운동들은 정체기로 진입해가는 한국 사회운동 진영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런 취지에서 한국의 사회운동을 전공하는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와 일본 사회운동을 전공하는 케이센대학교의 이영채 교수가 일본 사회운동의 중요한 전환점과 위기의 지점들에 대해서 성찰적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활동가나 학자 등을 두루 만나 연쇄 인터뷰를 진행했다.

호사카 노부토(사타가야 구청장), 가와사키 아끼라(피스보트 공동대표), 토리이 잇페이(노동운동가), 아하시 마사아키(학자), 요시다 유미코(생협운동 이사장), 우쯔미 아이코(평화운동가), 무토 이치요(신좌파 활동가), 우에무라 히데키(인권활동가) 등이다.

첫 순서는 지난 7월에 진행된 호사카 노부토 구청장과의 인터뷰이며, 편의상 두 교수의 질문은 구분하지 않고 '조희연+이영채(조+이)'로 통일했다.

이 인터뷰는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으며, 프레시안과 함께 연재하는데, <시민사회신문>의 발행주기에 따라서, 2번의 인터뷰를 함께 싣는다. 편집자

토리이 잇페이(鳥井一平)는?

일본노동운동의 노사협조주의를 거부하는 대표적 중견노동운동가이다. 단일노조인 전통일노동조합의 사무국장이며, 민주노총 및 아시아의 노동단체들과 국제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의 수출자유지역내의 일본기업의 직장폐쇄로 인한 한국노동자들의 ‘원정투쟁’을 지원해 온 일본 지원단체의 사무국장으로 오랫동안 한일연대운동에 관여해 왔다. 일본 사회당 계열의 노동단체 전노협의 국제부를 담당하였고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전국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 중국 연수생 및 기술생의 노동조건개선 등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조+이: 어떻게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일하고 있는 전통일이라는 단체에 대해서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토리이:저는 1953년생이고, 일본에서는 70년대 전공투 운동의 마지막 세대입니다. 고교때 학생운동을 경험했고, 노동운동을 목표로 25살 때 오사카에서 도쿄로 상경하였습니다. 도쿄의 아라카와구(荒川?)의 플라스틱 성형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노동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사장에게 철저히 파괴당하였습니다. 혼자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어렵게 되자, 한 명으로도 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전통일노동조합(70년에 결성된 개인가맹의 노동조합. 임시, 파트직, 파견 등 직종 및 신분관계 없이 가입할 수 있는 단일노조)이 있다는 말을 듣고 1981년에 가입했습니다. 그후 88년부터 전통일의 사무국에 합류했습니다.

토리이 잇페이 전통일노동조합 서기장.
전통일은 1970년에 창립되었습니다. 당시 총평(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50년 7월결성)이 만든 노동조합이죠. 노동조합에서 민간문이라고 할 경우 당시 동맹세력(1964년에 결성된 전일본노동총동맹. 우익정당인 민사당을 지지하였고, 반공색채를 뚜렷이 하면서 사회당을 지지한 총평과 대결한 노동운동세력)의 관공노조(전일본관공노조연합회, 官公?)가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소영세기업이 전체 노동자의 70%를 차지하고 있었고, 총평은 이들을 조직하기 위해 100만명 조직화운동을 내걸고 각 지역으로 활동가를 보냈습니다. 도쿄의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전통일이 설립되었습니다. 전국일반노조는 전국 각 도를 기준으로 조직되지만 전통일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면 그 자체로 순수한 단일노동조합입니다.

렝고(연합)과 일본 노조운동의 분화

렝고(연합)는 전일본민간노동조합총연합회의 약자로서, 1989년 11월 결성되었고, 2010년 11월 현재 54단산, 680만 조합원을 통괄하고 있고, 무파업 및 노사협조주의를 표방하는 노조연합체다. 1950년 만들어진 총평을 중심으로 하는 급진적 노동운동의 시대가 마감하고 총평의 다수가 참여하고 기타 온건노동조합운동이 합류해서 만들어진 현단계 일본 최대 노동조합연합체다. 총평이 사회당에 대응하는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전후 1955년 체제에서 자민당에 대응하는 사회당의 사회적 기반이 총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당이 해체적 위기를 겪고 사회주의가 붕괴되며, 총평의 최대의 조직이었던 일본국철의 노동조합이 민영화에 따라 약화되면서 일본의 급진적 노동조합운동이 현저히 약화되게 된다. 연합은 원래 1970년대 말부터 존재하였는데, 1989년 11월 공공부문까지 통합하여 최대의 연합체로 출범하였고,, 이에 따라 총평, 동맹(전일본노동조합총동맹), 중립노련(중립노동조합연락회의), 신산별(전국산업별노동조합연합) 등의 전국조직들이 해산하였다.
이러한 노동조합 연합운동의 우경화에 대응하여 공산당계 노동조합들은 ‘전국노동조합총연합(전노련)’을 결성하였고, 총평의 해산과정에서 렝고에 합류하지 않는 중간지대, 비공산당계, 반노사협조주의적 경향을 갖는 흐름은 ‘전노협(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를 결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본노동조합운동의 분화

조+이: 일본은 전후 50%를 넘는 노동조합 조직율을 가지고 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냉전시대에도 노동조합의 역할이 활발했는데, 많은 변화를 겪어왔고 현재의 신자유주의 글로벌시대에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일본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간단히 설명해 주시죠.

토리이:저 자신 일본의 노동운동 전체를 설명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됩니다. 저의 경험으로 보면 제일 중요했던 것은 총평이 렝고(연합,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일명 연합)로 바뀌어가는 시기입니다.

전(全)통일노동조합도 그 영향으로 분열했습니다. 전통일은 이미 1983년에 제1차 분열을 경험했는데요. 총평이 전민노협(1982년에 노동전선의 통일을 민간주도로 해 나가기위해 총평이 만든 전일본민간노동조합연합회, 88년 관공노에 합류, 현재는 렝고에 가맹)을 만든 시기입니다. 전통일은 전민노협에 가맹하는 그룹과 반대그룹으로 나뉘었죠. 전민노협에 합류한 그룹은 전노련이라는 지금의 NTT노조가 되었습니다.

전통일에 가입한 이주노동자들의 모국을 지도로 설명하고 있는 토리이 전통일노동조합 서기장.
당시 전민노협은 총평을 상징하는 기구인데, 동맹은 민간단체가 있었지만, 총평은 전통노련(전기통신정보산업노동조합연합)의 키시가와(岸川)위원장이 민간을 대표했을 정도로 약했습니다. 전통일이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중심역할을 요구받았습니다. 하지만 83년2월 분열을 하게 되었죠. 1983년은 일본의 노동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국철의 분할민영화(나카소네 내각이 실시한 정책으로 일본국유철도를 JR이라는 6개의 지역별 여객철도회사와 1개의 화물철도회사로 분할하여 민영화를 단행.87년4월에JR발족, 민영화과정에서 국철노조원 1047명이JR에 채용되지 못하고, 구국철청산사업단에서 해고된 문제가 발생하여 24년간 복직투쟁을 해 옴)가 실시된 해 입니다. 이 시기의 영향으로 전통일도 분열하게 되었지만, 이후 총평을 계승하고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노동운동을 유지하는 세력으로 28년간 독자적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조+이: 총평은 동맹세력에 비하면 다수파였는데, 왜 통합의 움직임이 생겨납니까? 그리고 총평이 렝고로 합류하는 것에 대해서 왜 반대한 것입니까?

토리이: 역시 ‘동맹세력’에 대한 반대 입장입니다. 동맹세력은 어용노동조합이지만, 단지 어용노동조합만이 아닌, 대정익찬회(아시아태평양전쟁시기 일본의 군부의 방침을 지지한 국수주의 결사세력)처럼 반공우익의 전체주의 동원체제의 산물입니다. 역사문제에 있어서도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침략은 없었다고 기관지에 공식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이런 조직과 함께 할 수 는 없지요.

총평은 다수파였지만, 총평속에서도 동맹과 통합하려는 세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업내노조이고, 노조는 정치문제는 거론해서 안 된다는 자기모순적인 길을 간 것입니다. 노동조건의 향상이라는 것은 정치문제와 깊이 관여되어 있습니다. 그런 정치적 움직임을 배제하고, 또한 공산당 세력을 배제하고 남는 것이 동맹세력과 통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통합에 각 산별단체들이 찬성과 반대로 분열하였지요. 일본 교직원노조(47년 3개의 교원조직이 통합해서 결성)도 분열되었습니다. 공산당의 전노련(전국노동조합총연합회, 89년결성, 약100만조합원)그룹은 렝고에 가맹하지 않았고, 비공산계열중 렝고에 합류하지 않은 그룹이 자연히 사회당계열인 전노협(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 89년결성, 약20만조합원)으로 모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업장 순회하며 연대투쟁하는 도쿄 총행동

국철노조 투쟁.

조+이: 도쿄총행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한국에서는 대기업의 계열회사에서 해고나 직장폐쇄가 있을 경우 본사와는 독립된 자본임을 강조하면서 연대 책임을 부정하고 있어서 법적대응이 어려운데요.

토리이: 도쿄총행동은 년4회 열리며, 여름에는 6월 22일이었습니다. 1970년 도쿄지방노동조합평의회때부터 실시해 온 노동쟁의방식이죠. “단 한명의 해고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파업중인 해당 사업장을 3개월마다 순회하면서 연대하는 행동입니다. 이 행동은 일체 경찰에 그 경로를 신고하지 않은 채 강행하기 때문에 매번 경찰과 긴장감이 감도는 속에서 행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법원이 인정하는가의 여부를 떠나 노동자의 권리라는 노동조합법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사용자를 광의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도쿄총행동의 원칙입니다. 중요한 성과는 해고가 있을 경우 직접 고용하고 있는 회사만이 아니라 지배적인 모기업 또는 메인 뱅크 등의 고용책임을 제시한 것이 결국 노동조합법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입니다. 해고나 구조조정, 또는 직장폐쇄를 결정하는 것은 모기업의 전체 판단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지난 6월22일에는 환경청앞에서 전체행동을 하고 두 조로 나뉘어서 각 사업장을 순회하고 마지막으로 도요타 건물 앞에서 해산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산케이신문의 문제(1994년 산케이 신문 계열인 일본공업신문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마츠자와 위원장의 복직투쟁문제)지만 관련 업체인 후지TV 본사 앞에서 행동을 했습니다.

도쿄 총행동.

35미터 크레인 위에 있는 김진숙씨에 강한 연대의식

조+이: 도쿄총행동은 매우 흥미롭네요. 한국에서는 희망버스라고 해서 부산한진중공업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투쟁을 지지하는 운동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토리이: 희망버스에 대해서는 메일 등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역시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일본의 운동의 경우 과거에 총평의 노동운동, 전공투, 그리고 산리즈카 투쟁이 있었지요. 그 시기에는 정말 목숨을 내 걸고 했던 운동들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목숨을 거는 투쟁보다도 ‘지지 않겠다’라는 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꼭 이기겠다’가 아니고 ‘절대 지지않겠다’라는 신념으로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운동을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파업의 경험이 없는 젊은 조합원들에게 ‘한 번 더 싸우자’라는 다짐들이 ‘지지 않겠다’는 투쟁을 해 온 토대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93년에 해고노동자 신분에서 쟁의를 하고 있는데 회사 사장이 저에게 가솔린을 뿌리고 불을 붙혔습니다. 여기 흉터는 그때 생긴 것들입니다. 한국에서는 반대로 분신의 투쟁이 있지만요. 그때 죽기 직전이었고 오랫동안 민주노총과 약 23년정도 연대를 해 왔기에 많은 한국 동지들이 병문안도 와 주었습니다. 이 정도면 목숨 걸고 싸운 형태가 될지 모르지만, 병상에 있을때, 뭐라할까요, 지지않는 다른 형태의 싸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네요.

도쿄 총행동 문건.
예를 들어 전통일의 경우, 해고철회투쟁을 통해 몇 번이나 승리의 경험이 있는데, 해고한 회사 앞에서 매일 전 조합원이 함께 도시락을 먹는 것을 했습니다. 도시락 투쟁이라고 할까요. 결국 1년만에 승리했습니다.회사가 아주 싫어하는 방식으로 싸운 것입니다. 여러가지 연대의 방식이 있을 것입니다. 35미터 크레인 위에 있는 김진숙 동지에게는 강한 연대의식을 느낌니다.

조+이: 한국의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이 있고 교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최근 민주노총은 ‘집단이기주의’라는 우익적 비판과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운동에는 적극적이 아니라는 노동자운동 내부에서의 비판에 직면해 있기도 합니다. 일본의 경험에 기초해본다면 어떤 조언이 가능할 것인가.

토리이:방금전의 ‘지지않겠다’라는 일본의 운동방식으로 보면 많은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정규직고용문제, 이주노동자 운동이라는 것은 조직화해야 한다고 몇 번 말하더라도 의지만가지고는 조직화가 어려운 운동입니다. 민주노총이 의지만 가지고 있다고는 보지 않아요. 매우 정밀한 분석에 기반해서 실행하고 있다고 봅니다만, 역시 한국은 일본의 침략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어서 인지 한국, 또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같은 것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민족다문화공생이라는 것은 외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토리이 전통일노동조합 서기장.

우리들이 이주노동자의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회의이후 데모행진을 하지요. 한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한국의 민족음악을 가지고 데모에 참여합니다. 그것은 이주노동자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죠. 한국의 민족음악이지요.

일본의 사회운동의 경우는 전쟁의 가해자의 경험이 있기에 자기부정에서부터 운동이 시작됩니다.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와 국가인 기미가요를 반대하는 것이 다민족다문화공생을 위한 운동의 첫 걸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있지요. 하지만, 민주노총이나 한국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의 경우, 이런 문제가 얼마나 토론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노총은 같은 노동자 입장에서 어떤 책임의식에서 이 문제를 대응하고 있는지 함께 토론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이: 한국에서는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의 관계는 중요한 쟁점입니다. 일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토리이:전노협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요. 전노협은 정확히 말하자면 당이 없습니다. 일본사민당과 민주당은 현재 렝고가 그 지지기반입니다. 사회당이 존재했을 때 지지하는 노동조합들이 많았지만, 렝고내에는 현재 대다수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전노련은 공산당이지요. 그래서 전노협의 당은 없어요.

사회당의 후신으로 신사회당 그룹(96년1월 사회당에서 독립한 정치세력, 일본국헌법의 유지, 비무장중립, 사회주의경제를 주장)이 있습니다. 국회의원은 없지요. 전노협은 신사회당과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당적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전통일 등의 저희들은 중소노조노동정책네트워크(98년12월5일 결성. 전일본건설운수연대노조 및 전노협전국일반 등이 98년노동기준법개악반대투쟁에서 연대를 강화하기위하여, '노동자의 권리와 도산연구회'의 활동을 통해 결성)를 만들어서 히라가씨를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된 정책제안 대상은 사민당과 민주당 양쪽 다 입니다. 국회의원 연구모임 등을 조직하여 노동정책을 설명합니다. 양 당의 이주노동자 및 비정규직 정책을 제안하고 있지요.

토리이 전통일노동조합 서기장.

한국과 관련해서는 민주노총과 총평을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총평은 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직이었습니다. 평화운동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우경화를 막아 온 것이지요. 결국 렝고의 모습으로 돌아갔지만요. 민주노총은 노동자가 만든 조직아닙니까. 자신을 가지고 정당활동을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총평의 경우 활발한 대중투쟁을 해 온 단체였지만, 정당과의 관계는 애매했습니다. 그리고 총평탄생때는 노동조합내의 조선인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그 출발이 있었기에 성격상 한계가 있었습니다.

조+이 : 노동조합 및 정당 활동의 정책적 전문성이 노동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면 시민운동 및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계관계도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 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미나마타 병(50∼60년대 고도성장기에 발생한 4대 공해병의 하나) 등 공해병이 발생했을 때 오히려 노동조합은 해당 기업의 이익을 지키려고 침묵하면서 노동운동이 사회운동에서 배제된 이유가 되기도 했는데요.

토리이 : 제가 기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게 그 지점입니다. 노동조합은 사회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사회의 일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총평은 그런 점에서 잘못된 판단을 했습니다. 시민운동이나 학생운동에 대한 존중이 없었습니다. 노동조합은 할 수 있는 것도 많지만 할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그 지점을 시민단체, NGO, NPO 등의 단체들과 어떤 의미에서는 겸허하게 연대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하다보면 노동조합 제일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이 필요한 가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지요.

일본의 총평은 빠른 시기부터 노동조합과 생태운동, 환경운동, 지역운동, 공해운동과 의 연계운동을 고민해 왔어야 했습니다. 일상적인 활동 속에서 조합은 시민단체, NGO, NPO와 연계를 맺는 속에서 여러 가지 경고성 의견을 듣게 됩니다. 노동조합들만의 연계에서는 그런 의견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요. 자금력과 조직력, 대중력과 비교가 안 되는 작은 시민단체들이지만, 노동조합과는 대등한 관계를 일상활동 속에서 만들어야 합니다.

조희연 교수와 이영채 교수가 함께하고 있다.

생협 등 지역활동과 노동조합

조+이: 노동조합이 지역활동 또는 생협 등의 연계활동을 통해서 실행하고 있는 대안적 노력도 있습니까.

토리이:우리들이 관여하고 있는 자주생산네트워크(90년초부터 2000년대 일본 기업은 미증유의 도산사태를 경험. 소속 노동자들이 고용과 직장을 지키기 위해 실시한 운동. '도산에 지지않는다 도산은 찬스다'가 슬로건)가 있습니다. 도산한 회사를 노동조합이 재건하는 것인데요. 노동자 자주기업이라고 할 수 도 있구요. 1995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끝나고 기업들이 실제 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조합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러 왔으며, 함께 회사를 재건했습니다.

노동조합의 시점에서 기업 경영의 시점으로 전환하면서 자주생산을 하고 경영을 위해서 지역의 여러운동들과 관련단체 들과 연계하지 않는다는 점들을 배우게 되었죠. 생협의 조직들도 기업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현재 약18개 회사가 있습니다. 또한 노동조합이 스스로 생협을 조직해서 활동하는 곳도 있어요. 전국노동자공제조합이 대표적입니다.

<인터뷰 진행자>


조희연 교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 현재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대표.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소장,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학술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역임. 저서로는 <한국의 국가 민주주의 정치변동>,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빈곤과 계로>, <박정희와 개발독재체제>, <동원된 근대화> 등이 있다.






이영채 교수

일본 케이센대학교(惠泉女學院大學校) 국제사회학과 교수. 케이오대 및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일본 PARC(아시아태평 자료조사센터) 연구원 및 현장잡지 [노동정보]편집위원 역임, 야스쿠니 반대 동아시아 촛불행동 일본실행위 사무국장. <참세상>에 일본사회운동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일본의 노동현장 잡지 [노동정보]에 한국의 사회운동의 글을 연재하는 등 한일시민/민중연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初恋」からノムヒョンの死まで』(梨の木舎), 『なるほど!これが韓国か--名言・流行語・造語で知る現代史』(朝日新聞社),『IRISで分かる朝鮮半島の危機』(朝日新聞社) 등이 있다.


조희연 이영채 교수

조희연 이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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