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지원활동때 한국모델 수출한다는 생각 버려야”

조희연-이영채의 일본사회운동 탐방(4) 오하시 마사아키(大橋正明) 조희연 이영채l승인2011.10.1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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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국제협력지원의 활동가이자 개발학 학자

서남아시아지역과 네트워크 형성...국제협력NGO를 대표해 일본정부에 정책제언
프로젝트 제공 아닌 글로벌 시민연대라는 관점에서 국제협력 이루어져야

한국의 사회운동은 80년대 이후 30여년 동안 장족의 발전을 해왔으며 수많은 단체들이 출현했다. 하지만 무한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했던 한국의 민중운동과 시민운동도 여러 지점에서 발전의 '병목지점'에 도달해 있으며, '전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반면 일본의 사회운동은 대체로 '실패의 역사'로 한국에는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패에서도 배울 점이 있으며, 실패의 역사라는 피상적 인식 이면에서 전개되어온 건강한 운동들은 정체기로 진입해가는 한국 사회운동 진영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런 취지에서 한국의 사회운동을 전공하는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와 일본 사회운동을 전공하는 케이센대학교의 이영채 교수가 일본 사회운동의 중요한 전환점과 위기의 지점들에 대해서 성찰적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활동가나 학자 등을 두루 만나 연쇄 인터뷰를 진행했다.

호사카 노부토(사타가야 구청장), 가와사키 아끼라(피스보트 공동대표), 토리이 잇페이(노동운동가), 아하시 마사아키(학자), 요시다 유미코(생협운동 이사장), 우쯔미 아이코(평화운동가), 무토 이치요(신좌파 활동가), 우에무라 히데키(인권활동가) 등이다.

첫 순서는 지난 7월에 진행된 호사카 노부토 구청장과의 인터뷰이며, 편의상 두 교수의 질문은 구분하지 않고 '조희연+이영채(조+이)'로 통일했다.

이 인터뷰는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으며, 프레시안과 함께 연재하는데, <시민사회신문>의 발행주기에 따라서, 2번의 인터뷰를 함께 싣는다. 편집자

오하시 마사아키(大橋正明)는?

현재 해외협력 및 지원활동을 하는 국제NGO단체들을 지원하는 센터 자니크(JANIC: 일본 국제협력 엔지오센터)의 이사장을 하고 있다. 1980-87년 샤프라닐(SHAPLA NEER;시민에 의한 해외협력모임) 방글라데시 주재원 및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90-93년 국제적십자산하 이슬람적십자(赤新月社連盟) 겸 일본적십자사의 방글라데시 주재원으로 일했다. 93년부터 케이센 대학의 국제사회학과 및 평화학 연구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인도 및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지역과 깊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국제협력NGO단체를 대표하여 일본정부에 대한 정책제언활동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다.

조+이: 먼저 대학교수를 하면서도 일본의 엔지오운동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래 활동했는데, 국제협력NGO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오하시: 저는 93년부터 케이센여자대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본대학교 이사였고 초대학장이었던 무라이 수게나카(村井資長;1909년-2006년 와세다대학교 10대 총장) 교수의 소개로 부임을 했습니다. 무라이 학장은 제가 70년대 초반 와세다 대학교 학생이던 시절에 와세다대학교 총장이었는데 당시 학원 자치운동을 전개하다가 협상이 결렬되자 저희가 감금을 했던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제적십자사에서 일하고 있는 저를 교수로 초빙해주었습니다.

시민단체에서 일본 NPO센터 부대표이사, 샤프라닐(SHAPLA NEER;시민에 의한 해외협력모임,샤프라닐은 방글라데시 언어로 연꽃의 집.72년에 설립함. 방글라데시와 네팔의 남아시아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로 09년부터 인정NPO) 부대표이사, 아유스불교국제협력 네트워크(일본의 불교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국제협력NGO) 이사 등 여러 가지 직책을 맡아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요직책은 샤프라닐의 대표입니다. 72년에 만들어진 단체이고, 78년부터 참여했습니다.

오하시 마사아키 JANIC 이사장.

일본국제협력의 역사

조+이: 일본의 엔지오활동은 풀뿌리 조직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국제협력 엔지오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를 해주시지요.

오하시: 일본의 국제렵력 엔지오 활동은 60년대부터 시작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엔지오는 있었지만, 아주 미약했구요. 초기에 3개의 대표적인 국제협력단체가 있었습니다. 먼저 오이스카(OISCA; The Organization for Industrial, Spiritual and Cultural Advancement-International, 61년에 설립. 농촌을 중심으로 아시아의 농촌개발, 인재양성, 환경보존 등의 활동)라는 단체가 있는데, 아나나이 교(죠몽대마의 정령 아나나이(麻柱)를 숭배하고 복권을 지향하는 종교)라는 신토계열의 단체가 만든 엔지오입니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단체였는데, 나고야에 신자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종교법인은 아니지만, 유기농업을 하면서, 근면한 농업활동을 아시아에 가르쳐 주자는 지향을 가지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농업이 국가의 부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일본인의 민족주의적 정체성을 강조하기에 일장기를 거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JOICFP(Japanese Organization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 in Family Planning;1968년설립)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민간단체인데, 미국의 마그렛 상가(Margaret Higgins Sanger;1879-1966, 미합중국의 산아제한 활동가)가 만든 자매단체입니다. 한국에도 관련단체가 있을 것입니다. 2차대전이후 여성이 피임을 통해서 가족계획을 조정한다는 캠페인을 했지요. 사회당의 가토시제(加藤シヅエ;1879-2001,일본의 부인행방 운동가)의원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적극 주장했지요. 2차대전이후 일본에서 피임을 통해 인구를 감소시킨 정책을 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에 전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조이세프는 IPPF(국제가족계획연맹)의 산하단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단체는 아니지만 민주적인 정치단체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셋째로, JOCS(Japan Overseas ChristianMedical Cooperative Service, 1960년설립)라는 단체로 일본 그리스도교 해외의료협회입니다. 이 단체만이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보상의 측면에서 아시아에 의료를 제공한다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앞의 두 단체와는 지향이 좀 달랐지요. 리버럴한 기독교인의 속죄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국제협력 엔지오 단체에서 전쟁책임을 확실히 밝히는 단체는 이곳이 유일하다고 봅니다. 일본 엔지오 단체들은 대체로 아시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아시아에 봉사하고 지원하는 것 또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아시아와 사업을 하는 것과 일본의 전쟁책임을 속죄하는 차원에서 아시아를 지원하고 국제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행하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이지요. 70년대의 학생운동인 소위 ‘전공투 운동’에서 처음으로 아시아에 사죄해야 한다는 역사의식 나오게 되었으닌까요. 진보적 운동 속에서는 물론 빠른시기에 전후책임의 의식이 있었지만, 국제협력 엔지오영역에서는 희박했습니다. 일본의 엔지오에서 사죄의식이 없는 것을 보면, 신좌익의 운동 경험자들이 꼭 엔지오로 전환된 것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베트남전쟁 반대를 위한 평화연대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베헤련(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활동의 경험자들 중 아시아대한 역사인식 있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시아태평양자료센터(PARC;Pacific Asia Resource Center, 베트남반전운동이후 아시아민중과의 연대를 목표로 설립된 시민단체, 73년설립)였습니다. 배헤련은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서 해체하게 되고, 이 운동은 파르크를 통해 일본시민사회가 아시아와 새롭게 접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샤프라닐에는 시민에 의한 아시아교류협력 모임이라고 하는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시민에 의한 교류협력’이라고 하는 개념을 제가 속한 단체가 만든 셈이지요. 그 전까지는 급진적인 혁명주의적 맥락에서 ‘인민연대’라는 개념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좌측에서의 인민연대나 우측에서의 자선이나 구호지원이라는 개념과 달리, 시민연대라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일본의 국제협력의 방향성을 샤프라닐이 연 셈이지요.

일본 해외지원 기구들

조+이: 정부 차원의 해외개발원조인 ODA와 관련된 국제지원사업의 시민파트너인JANIC(Japan NGO Center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국제협력 엔지오센터,87년설립, 국제협력 지원 및 정책제언을 중심으로 한 엔지오지원센터)가 중요한 위치를 갖는 것으로 압니다. JICA(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국제협력기구,2002년 설립된 일본의 해외원조본부)라는 기구도 있는데, 일본의 해외개발지원과 관련기구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네요. 한국에서도 해외개발원조 감시가 시민운동의 새로운 감시영역으로 등장하고 있는데요.

오하시: JICA는 외무성 산하의 정부단체입니다. 정부의 해외개발원조자금의 실시기관이지요. JANIC는 1987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국제협력사업을 하는 JVC(일본국제볼란티어센터,1980년에 설립된 해외원조의 실무단체, 분쟁지역에서의 지원활동, 현재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활동중), 샤프라닐 등의 엔지오 단체들이 80년대 중반에 많이 만들어지고, 이런 단체들의 연합단체로 자니크(JANIC)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국제협력 엔지오 약500개 중 약100개 정도가 가입되어 있지만, 국제협력 엔지오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체로 보면 네트워크로서는 가장 큰 조직입니다. 성향은 리버럴한 조직입니다. 제가 나름대로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고요. JVC라는 단체는 샤프라닐만큼 그렇게 리버럴한 성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진보적인 성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JANIC의 국제연대 활동 팜플릿.
일본 엔지오 단체에는 실제 시민에 의한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월드비젼, 보수적 기독교단체, 신토회 등 보수적인 단체도 폭이 크고 다양합니다. 자선단체도 많이 있고요. 하지만 국제협력 엔지오 단체들은 남북격차의 주된 원인이 북반부 국가들의 이익추구에 있다는 정도의 비판적 공감대는 있습니다. 하지만, 신좌익의 진보적 혹은 리버럴한 지향과는 다릅니다.

조+이: 80년대 왜 엔지오가 많이 만들어졌는지요.

오하시: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기업의 해외진출과 관련됩니다. 일본기업의 해외진출지에서의 사회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출발한 단체가 많습니다. 부유해지니까,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실제 경험을 하니까, 그 경험으로 지원단체를 만들게 된 것이지요. 90년대에도 역시 엔지오가 증가합니다. 90년 전후에는 일본정부가 엔지오단체를 위한 공적지원금을 확대하면서 그 흐름은 더 가속화되고요. 예컨대 우생성(총무부)이 만든 국제봉사 적금 등 약7-8억엔의 기금이 있고, 환경성의 경우, 지구환경기금, 외무성의 경우는 엔지오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매년 약 50억엔을 엔지오 단체들에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조+이: JANIC의 경우 ODA예산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단순전달자인가요.

오하시: 해외개발지원 자금(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은 자이카에서 받기도 하고, 외무성에서 받기도 합니다. 대부분 실시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금의 형태이지요. 특정 지역을 위한 지원계획서를 제출하면 심사후 지원금이 나오는 식입니다. 자이카의 경우는 자이카의 사업을 위탁받는 식이 됩니다. 외무성의 경우는 지원적 성격이 강합니다. 프로젝트에 자기부담도 있지만, 프로젝트 지원입니다. 거기에는 인건비도 설정할 수 있고요. 프로젝트 비용의 몇%를 인건비로 사용하는 식으로 계획서를 제출하면 됩니다. 퍼센트가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외무성의 지원예산 등도 모두 해외개발자금(ODA) 예산으로 카운트 됩니다.

국제원조 할 때 자위대와 함께 한다?

조+이: 일본의 ODA에 대한 감시네트워크활동을 해온 것으로 아는데, 이 활동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주시지요. 특히 9.11사태와 이라크전쟁 이후 무슨 변화가 있었습니까.

오하시: 샤프라닐의 경우, 내부 규정이 있습니다. 전체 수입의 25%를 넘는 외부지원을 받으면 안됩니다. 단체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부 규칙을 만든 것이지요. JVC는 정부에 비판적이지만, 외부자금의 의존율이 많이 높습니다. 어려운 지점이 바로 그 지점입니다. 예를 들면 정부이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만, ODA는 세금이니까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JVC(일본볼런티어센터)와 같은 단체도 있습니다.

우리는ODA의 군사화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을 해왔습니다. 9.11사태와 이라크 전쟁이후 일본정부는 자위대를 파병하여 이라크와 아프간에 PRT(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군과 민간에 의한 전후복구팀)라는 부흥계획을 실시하고 있는데, 여기에 엔지오를 함께 동원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엔지오의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물론ODA로 가는 것은 중립성이 있는가? 자위대가 ODA지원금으로 움직이는 것은 문제가 없는가? 등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ODA활동에서는 엔지오단체와 군이 밀접하게 활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만.

조+이: 아주 중요한 문제 같은데,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면 좋겠네요.

오하시: PKO(국제평화유지군)에는 엔지오도 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는 전전의 경험들이 있어서 민간단체인 엔지오가 자위대와 같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심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해외개발원조, 즉 오디에이를 받는 한국엔지오들의 연합체가 있습니다. KICOC(Korea international coalition for overseas cooperation)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 점에서는 한국의 해외원조단체들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과 풍요로움 존중하는 인식 가져야

조+이: 일본의 오디에이 감시활동를 리드하고 있는 오하시 선생의 입장에서 한국의 엔지오 단체들의 활동에 대해서 조언을 한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현지의 리버럴한 단체와 파트너십을 형성하라는 조언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하시: 저의 선입견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국제교류협력단체들은 아시아의 현실에 대해서, 아시아의 각 국이 갖고 있는 문화의 풍부함을 잘 알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적으로 후진적인 지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도 뒤쳐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인지 엔지오 활동의 목표와 한국의 경제발전의 성과와 민주주의를 가르쳐주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것으로, 한국을 마치 아시아의 큰형이라는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시아는 일본이나 한국의 문화를 뛰어넘는 문화의 다양함과 풍부함이 있습니다. 또한 아시아에는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도 그것에 저항하려는 흐름도 있습니다. 그러한 지역사회 및 민중과의 연대가 중요합니다. 이런 것을 국제협력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글로벌 시민연대라는 관점에서 국제협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지 프로젝트를 한다는 관점이 아니구요.

샤프라닐도 현지 프로젝트를 하고 있지만, 저는 현지민에게서 배우려는 생각을 하자고 매번 주장합니다. 좋은 단체들이 있고, 연대도 하려고 하지만, 현지에서의 우리들의 개발의 모습이 바람직한가하는 의문을 가지고 언제나 논의를 합니다. 외람되지만, 저는 그런 인식이 한국의 국제협력단체의 활동에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존중하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프로젝틀 제공해준다는 인식은 금물이지요.

일본 엔지오들의 다양한 모금활동

조+이: 일본의 엔지오단체들은 운영을 위해서 다양한 재정조달과 모금활동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 한국의 단체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해 주시면 좋겠네요.

오하시: 일본엔지오가 쓰는 재정규모가 300억엔정도 됩니다. 약500개의 엔지오중, 예산규모가 40억엔이 되는 엔지오가 3개나 있습니다. MSF(국경없는 의사회)라고 하는 프랑스계의 엔지오가 50억엔정도규모이고 월드비젼이나 플랜인터내셔날도 큰 규모의 단체입니다. 이 3개를 제외하면JOICFP가 약20억엔 정도의 규모이구요.제가 일하는 샤프라닐은 재정규모상 약25위쯤될까요. 재정은 약 2억 8천만엔 정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체예산의 조달은 기부(33%),회비(7.6%),수공예품(크라프트) 판매(24%)로 충당되고 있습니다. 정부지원금인 공적자금은 작년은30%를 차지했네요.정부지원금은 가능하면 25%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주목할 점은 일종의 공정무역(평등무역)이라고 할 수 있는 크라프트의 제작이, 샤프라닐의 전체 지출에서 27%를 차지합니다. 그러니까 적자인 셈입니다. 지출에는 해외활동비(37%), 관리비(28%)가 있습니다. 저는 조성금이 25%, 회비가 7-8%, 기부금이 30%를 넘으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샤프라닐이 재정을 충당하는 방법은 다양한데요. 예를들어 중고 책을 기부받는 것이 있습니다. 기부자가 필요없는 책을 ‘BOOK OFF’(중고책 및 씨디,음반 취급 체인점)에 가져다 주면 북오프는 한 박스당1000엔을 샤프라닐에 기부합니다. 책 한 박스를 기부하면 물건에 따라 다르지만, 싯가가 약 3천엔 정도 된다고 할 때, 북오프는 10%를 붙여서 다시 샤프라닐에 기부를 합니다. 이 헌책에서 나오는 돈이 1년에 대체로 600만엔(약7천200만원)이 됩니다. 작년에는 1,500건 정도의 기부가 있었습니다. 북오프는 새 책을 팔면서도 샤프라닐에 기부금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엽서사업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엽서사업으로 얻는 돈은 약1500만엔에서 2천만엔이 됩니다. 쓰지 않은 엽서 또는 주소 등이 틀려서 버리게 되는 엽서를 기부받는 것이지요. 일본에는 매년 신년에 보내는 연하장에 복권형식의 번호가 있습니다. 100장에 두장정도는 당첨됩니다. 당첨된 연하장은 우체국에 가져가면 우표를 살 수 있는 티켓으로 바꾸어 줍니다. 한국에는 이런 제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구요.

오하시 이사장과 대담중인 조희연 교수(맨 오른쪽)와 이영채 교수.

조+이: 일본의 엔피오법 제정(98년 제정된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 이후 각 단체들은 어떤 세제혜택을 받고 있는지요?

오하시: 2011년 6월에 엔피오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당시에는 1만엔 기부를 하면, 1만엔의 기부금이 소득공제가 되는 식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천엔을 뺀 나머지의 절반 즉 4500엔을 세금에서 빼 줍니다. 이전에는 전체소득에서 기부금을 빼고, 나머지에 세금의 비율을 부과하는 형태였는데, 지금은 만엔을 내면, 천엔을 뺀 나머지의 금액중에서 예를들어 50%세금의 비율을 공제해주는 식으로 합니다. 그러면 나에게 4500엔이 되돌아 오기에, 실질적으로 5500엔만 기부하고 1만엔 기부한 혜택을 받는 셈이 됩니다. 공제혜택을 많이 주어서 납세자의 기부를 늘리고자 하는 것이지요.

엔피오의 경우에는 인정(認定) 엔피오(국세청장이 인정하는 세제상의 면세조치를 받는 NPO법인, 인정제도는 2001년에 시작됨.실적판정기간의 기부금등 수입금액이 경상수지금액의 원칙 20%이상을 인정조건으로 하고 있음)가 되어야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정엔피오가 되기 위해서는 기부서포트 테스트(PSP)를 증명해야 했습니다. 까다로운 절차로 수준이 높았지요. 기존에는 PSP증명이 50%가 되어야 했는데, 개정법에서는 20%까지 내렸습니다. 게다가 이번 개정법에서는 1천엔 이상을 내는 회원이 100명 이상이 되면 그 기준이 충족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조건이 완화된 것이지요. 그래서 인정엔피오가 많이 늘어나게 되었고, 인정엔피오가 되면 면세조치가 주어지구요.

조+이: 한국에서 그동안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바뀌었다고 민족의 자긍심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지 원조하고 있는 것에 자부심의 차원을 넘어서서 진정한 국제협력이 되도록 노력해 가는데 오하시 선생님의 경험과 지혜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인터뷰 진행자>


조희연 교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 현재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대표.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소장,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학술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역임. 저서로는 <한국의 국가 민주주의 정치변동>,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빈곤과 계로>, <박정희와 개발독재체제>, <동원된 근대화> 등이 있다.






이영채 교수

일본 케이센대학교(惠泉女學院大學校) 국제사회학과 교수. 케이오대 및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일본 PARC(아시아태평 자료조사센터) 연구원 및 현장잡지 [노동정보]편집위원 역임, 야스쿠니 반대 동아시아 촛불행동 일본실행위 사무국장. <참세상>에 일본사회운동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일본의 노동현장 잡지 [노동정보]에 한국의 사회운동의 글을 연재하는 등 한일시민/민중연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初恋」からノムヒョンの死まで』(梨の木舎), 『なるほど!これが韓国か--名言・流行語・造語で知る現代史』(朝日新聞社),『IRISで分かる朝鮮半島の危機』(朝日新聞社) 등이 있다.


조희연 이영채 교수

조희연 이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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