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만 잘 덮어도 내 글이 또렷해진다고?

한자숲 노닐기-입을 피(被) 강상헌l승인2011.11.0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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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인간사 상황 묘사하는 말 지어낸 옛사람들 지혜 느껴져

고령양전동암각화. 동심원(同心圓)과 기하학적(幾何學的) 무늬가 특징이다.(국립중앙박물관 ‘문자 그 이후’전 도록)

최근 한 방송사 뉴스에서 들은 ‘피습 당하다’와 어떤 신문의 제목에서 본 ‘피살 당하다’라는 문장을 생각해 봅니다.

피습(被襲)은 ‘습격(襲擊)을 당(當)하다’는 뜻입니다. ‘피습 당하다’는 ‘습격 당하는 것을 당하다’는 이상한 말이 됩니다. 피살(被殺)은 ‘살해(殺害) 당하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피살 당하다’는 ‘살해 당하는 것을 당하다’가 되지요. 마치 역 앞이 역전(驛前)인데 ‘역전 앞’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방송사와 신문사의 선배 세대나 데스크, 또 교열(校閱) 담당 부서가 이런 단어의 오용(誤用)을 바루지 못해 시청자와 독자의 귀와 눈에까지 이르게 됐는가 하는 점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오자(誤字) 탈자(脫字)는 귀신도 속인다고들 합니다. 아무리 뚫어져라 교정을 봐도 잘못된 글자가 남는다는 ‘신문쟁이’들 동네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단순한 오용이나 실수의 차원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에 의한 것이 아닌지 저어합니다. 한두 군데가 아니지요. 이런 말이 잘못임을 집어내는 감각이나 능력도 함께 떨어지고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의 내용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모형, 고래 등의 사냥 모습을 볼 수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선사관)

말의 대부분은 각각의 뜻을 지닙니다. 특히 우리말에서 비중이 큰 한자말은 한 글자 한 글자의 한자가 독립적인 뜻을 가지고 그 단어 전체의 뜻을 구성합니다. 이런 단어를 이루는 낱낱의 소리 즉 음소(音素)가 가지는 뜻을 ‘속뜻’이라 합니다. 이 속뜻이 모여 그 단어 전체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속뜻을 알면 당연히 그 말의 형태가 또렷해지지요. 요즘 말로 언어의 해상도(解像度)가 높아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낱낱의 음소의 뜻이 분명해지면 이 음소와 다른 음소가 합쳐져서 만드는 다른 단어의 뜻도 쉽게 풀이됩니다. 이를테면 풀 해(解), 모양 상(像), 법도 도(度)의 세 음소를 알면(속뜻을 알면) 해석(解釋), 상상(想像), 제도(制度)의 뜻을 생각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요.

옷 의(衣)자의 변천
피(被)라는 글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글을 쓴 까닭에 피습 당하고, 피살 당하는 이상한 현상(現象)의 문장이 빚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에서 너무도 많이 쓰이는 피해(被害)라는 단어를 비롯해 피폭(被爆) 피랍(被拉) 피선(被選) 피소(被訴) 등에서 이 被는 위력이 큽니다. 영어 공부에서 자주 나오는 문법용어 피동태(被動態)에도 이 말이 들어있군요.

위에서 든 사례의 옳은 활용방법은 ‘습격 당하다’ 또는 ‘피습하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살해 당하다’ 또는 ‘피살되다’가 적절합니다. 이제 ‘피선에서 뽑히다’가 아닌 ‘피선되다’가 옳은 이유를 아실 테지요. ‘피폭하다’ ‘피랍되다’ ‘피소하다’가 각각 맞습니다.

이 글자 被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옷을) 입다’입니다. 글자의 앞부분은 옷 의(衣)입니다. 이 글자에서처럼 부수자로 쓰일 때는 被자의 왼쪽 부수로 변신합니다. 뒷부분은 가죽 피(皮)이고요.

가죽 피(皮)자의 변천
한자 구성 원리로는 형성(形聲)문자입니다. ‘옷[衣]’이라는 뜻[形]에 ‘피(皮)’라는 소리[聲]를 합쳤다는 말입니다. 가죽 皮는 소리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가죽이라는 ‘옷’의 재료를 나타내 이 단어의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듭니다. 그렇게 ‘입는다’는 뜻이 지어졌습니다.

옷처럼 덮어 쓰는 것에는 침구(寢具)인 이불이 있습니다. 이불도 한자로 被입니다. ‘입을’이라는 이 글자의 훈(새김)이 어떤 자전에는 ‘이불’인 이유입니다. 또 이 ‘덮어 쓰는’ 것에서 ‘덮다’ ‘당하다’는 뜻이 생겨났지요. 내가 의도적으로 행동한 것(능동 能動)이 아니고, 상대가 한 행위 때문에 어떤 상황을 맞게 된 것(피동 被動)입니다.

전문(篆文) 입을 피(被)자(민중서림 한한대자전)
옷과 가죽 두 글자를 합쳐 ‘당하다’라는, 눈에 보이지는 않되 중요한 인간사(人間事)의 한 상황을 묘사(描寫)하는 말을 지어낸 옛사람들의 지혜를 새삼스럽게 생각합니다. 지금 그 문화를 누리는 우리에겐 당연하지만, 이런 단어가 없어서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가정(假定)하면 머리에 쥐가 날 일이지요.

옛글자 衣는 저고리(상의), 皮는 손으로 뱀 가죽 벗기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들이 차츰 기호(記號)로 바뀌고 서로 합치고, 또 변화합니다. 오늘의 문자지요.



토/막/새/김

표현은 인류의 기본 욕구, 한국의 암각화

기후 토양 등이 좋아 일찍 인류가 깃든 터전에는 대개 바위그림 즉 암각화(岩刻畵)가 있다. 선사(先史)시대 사람들이 생활과 생각을 그린 것이다. 그들의 언어라고 할 상징적인 그림과 기호를 볼 수 있다.

사냥 잘 하고, 아기 잘 낳고 따위의 희망과 자연이나 미지(未知)의 위대한 존재를 향한 숭배 등이 내용. 한국의 대표적 암각화는 울산반구대암각화(국보) 울주천전리각석(국보) 고령양전동암각화(보물) 등이다.

반구대의 고래사냥, 천전리와 양전동의 포개서 그린 원 그림이나 기하학 무늬가 유명하다. 또 경주 안심리, 영일 칠포리, 남원 봉황대에도 암각화가 있다. 국내 암각화는 다 돌에 새긴 것, 알타미라 벽화처럼 물감으로 그린 동굴 그림이 없는 것이 특징.


강상헌 논설주간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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