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트? 미국인도 모르는 한국 영어

말글 사랑방 강상헌l승인2011.11.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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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어’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말 중의 하나가 ‘멘트’다. 영어에는 없는 단어다. 영어 어나운스먼트(announcement)를 줄인 말이라고 생각된다. 이 단어의 -ment는 ‘동작’이나 ‘결과’를 뜻하는 접미사(接尾辭)다. 즉 앞의 말뜻을 명사(名詞)로 고정하는 장치다. 어나운스(announce)는 발표하다, 알리다, 선언하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다. (외국에서도)방송과 관련하여 쓰이는 예가 많다.

우리 언어생활에서 ‘멘트’는 대충 ‘말하다’ ‘언급(言及)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해 ‘한 말씀’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로 굳어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한 말씀’의 뜻으로 ‘어나운스먼트’를 축약(縮約)하기 위해서는 ‘먼트(ment)’가 아닌 ‘어나운스(announce)’ 부분이 반영돼야 어색하지 않은 활용일 것이다.

bombardment(폭격) acknowledg(e)ment(승인, 인정) judg(e)ment(판단, 판결) payment(지불) fulfil(l)ment(소원성취, 실현, 달성) 등의 단어를 마저 보면 그 뜻이 확실해진다.

영어권(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지역) 사람들에게 ‘멘트’라는 말을 들려줘도 뜻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반년 정도 산 영어권 사람은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 우리 생활에서 이 말이 많이 활용되는 까닭이다.

‘논평(論評)하다’ ‘지적(指摘)하다’ ‘거론(擧論)하다’의 뜻인 코멘트(comment)나 멘션(mention)이라는, 어나운스먼트 보다는 덜 쓰이는 영어 단어가 우리말에서 일반화되다시피한 ‘멘트’의 뜻을 다소 보완해주기는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멘트=말하다’는 등식(等式)을 정당화해주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방송멘트 앵커멘트 사회자멘트 고백멘트 사랑멘트 감동멘트 닭살멘트 작업(용)멘트 ARS멘트 음성안내멘트 등 멘트의 활용 예는 참 다양하다. 심지어는 아나운서멘트라는 말도 쓰인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有機體)다. 그 생성(生成)과 변용(變容), 소멸(消滅)이 스스로 이뤄지며, 그 (생겨날) 무렵의 환경이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멘트’라는 좀 덜 떨어진 말이 우리말에서 이렇듯 야무진 터전을 갖추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의 공부나 궁리(窮理)가 부족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버리는 것이 백번 낫다. 그 말이 아니라도, 우리말로 표현할 말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이미 중독되어 도저히 버리지 못하겠다고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면, 적어도 이 말의 원래의 단어와 우리말에 귀화(歸化)한 모양의 어색함을 잘 살펴야 한다. 알고 쓰자는 것이다. 영어권 사람에게 ‘멘트’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까닭도 알아야 할 터다.


강상헌 논설주간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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