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쿠데타’ 좌시하지 않겠다

‘역사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11월 14일 450여 개 독립·민주화, 교육·학술, 시민사회, 학부모·노동·청년 등의 단체로 구성된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역사연대)가 발족했다. 수구세력들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모든 역사 날조 행위를 막아내고, ‘역사정의’를 이뤄내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건국절 논란으로 시작된 수구세력의 역사조작은 이미 도를 넘어 섰다. 항일세력을 탄압하고 무고한 양민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던 간도특설대 장교출신 백선엽·김백일의 기념조형물이 세워졌는가 하면, 사월혁명 때 시민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끌어내려진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도 다시 세워졌다. 시민사회가 온 힘을 다해 저지했던 박정희기념관도 올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들이 집요하게 역사왜곡에 앞장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공영방송’ KBS까지 권력의 시녀가 되어 이들 친일·독재·재벌 세력을 찬양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 과거회귀세력의 역사파괴는 거짓 영웅 만들기에 그치지 않고 ‘교과서 개악’이라는 보다 구조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과부는 최근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하면서, 친일파 청산 노력과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독재·민주화 운동 관련 역사적 사실들을 삭제했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 독재, 박정희 5·16 군사쿠데타, 전두환 신군부에 대해서도 모두 삭제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을 껴넣어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색깔론으로 오염시켰다. 이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와 상식을 무시한 채 역사교육과정 개정과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밀어붙였음은 물론이다. 학계와 국민들의 저항이 심하자 뒤늦게 부랴부랴 검정기준을 만들었지만 실효성이 없는 미봉책에 불과한 데다 본질적인 문제는 전혀 변함이 없다.

이는 수세에 몰린 친일·반민주세력들이 단기적으로는 내년 대선에서 특정 정치인의 입지를 공고히 하여 보수정권을 재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수구세력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음모가 깔려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스스로가 친일·독재·반민주 세력이 기반인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거대 괴물종편의 등장으로 더욱 악화될 언론환경을 감안하면 앞으로 보다 조직적인 역사조작이 자행될 것이 분명하다.

역사연대는 무엇보다도 ‘헌법적 가치’를 되살려 수구세력의 범죄 재구성에 맞서고자 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국민들에게 부여한 자유, 평등, 인권, 민주, 평화 등의 가치가 현실사회에서 실효성을 발휘하고, 헌법이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건국이념과 헌법정신 바로알기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또한 역사를 유린한 주범들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을 것이다. 역사연대는 지난 달 24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1인시위와 서명운동의 방법으로 이주호 교과부 장관 퇴진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 장관은 정해진 절차마저 유린하며 현 정권 임기 내에 역사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꾸려는 데 앞장섰다. ‘MB특보’ 출신 사장 김인규 씨는 공영방송을 ‘친일·독재 미화방송’으로 추락시켰다. ‘백선엽·이승만 미화 다큐 방송’으로 촉발된 김 씨 퇴진요구는 ‘친일·독재찬양방송저지비상대책위원회’의 활동을 이어받아 온라인에서 서명운동을 계속 펼쳐갈 예정이다.

한편으로는 교과서 집필과 출판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입법 추진과 함께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각 정당과 입후보자들에 대한 정책제안 및 설문을 통해 교과서 개정절차 확립 및 내용 개악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정책적인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역사연대는 △2012년 ‘6월항쟁’ 25주년과 ‘10월유신’ 40주년 학술대회 개최 △국민의 혈세를 들여 친일파와 독재자를 찬양하는 기념사업 저지, 서훈 취소, 수상거부, 조형물 철거 운동 △박정희 기념사업과 대한민국역사관 건립에 맞서는 시민역사관 건립 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지난 우리사회에서 진행된 친일·독재 청산작업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일궈 낸 소중한 성과였다. 그러나 친일·독재 등의 범죄세력은 권력을 등에 업은 채 과거의 유물로 박제화된 틈을 뚫고 ‘범죄의 재구성’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피흘려 이룬 민주주의와 그 역사를 과거회귀세력?사익추구세력들에게 송두리째 빼앗길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민주주의 역주행’ 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벌써 잊었는가. 국민들은 결코 ‘민주주의 쿠데타’, ‘역사 쿠데타’를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정의’가 이들의 역사범죄를 분명히 심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