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장관의 잘못된 경고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개포동 재건축 지구의 지정을 보류한 다음날, 국토부 장관은 박원순 시장의 주택정책이 친서민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공공성을 따져 재건축 속도를 조절하게 되면 주택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구매력이 약한 서민들은 결국 서울 밖으로 쫓겨난다는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공공성을 내세워 재건축 발목을 잡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지자체 정책에 대해 장관이 경고하는 것은 국가정책의 수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정권과 성향이 다르고, 취임 한지 한 달 남짓하며, 이렇다 말한 시책을 아직 내놓지 않는 새 시장의 정책에 대한 작심한 듯한 쓴 소리는 발화자(發話者)의 편향성만 보여줄 뿐이다. 그간의 정책행보에서 권장관은 주택을 가진 중산층과 업계로 대표되는 공급주의 시장세력의 입장을 주로 대변해 왔다. 서민을 앞세워 재건축의 원활한 추진을 주문한, 새 시장에 대한 경고에도 이 입장이 강하게 배어 있다.

‘주택은 심리인 데, 주택시장은 현재 박원순 쇼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충격을 받고 있는 상황을 경계한 것’이 발언의 진의란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업계의 관계자도 거들었다. 권장관이 우려한 것은 ‘박시장이 너무 과격하게 기존 재건축 정책 기조를 흔들 경우 시장이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점’이라 했다. 시장의 어려움을 걱정하는 걸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국민의 공복(公僕)이 시장만 대변하는 건 분명 옳지 않다.

국가가 시장의 이익만 대변한다면, 잘못된 국가정책과 시장실패로부터 받는 서민약자들의 쇼크는 누가 대변하고 해결해주어야 하는가? 장관의 발언을 두둔한 국토부 관계자의 말대로 ‘시장흐름에만 맡기면’ 서민주거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가? 장관의 쓴 소리대로 기존 재건축으로 돌아가 ‘원활하게 추진’하면 집이 공급되고 집값이 떨어지며 서민들은 주택을 갖게 되는가?

최소한 관리처분 방식의 현행 도시정비는 이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주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경험이 그러하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정비사업으로 지역 내 소형주택은 멸실되고 중대형 주택으로 바뀌면서 주택수는 오히려 줄어든다. 새로 지은 주택은 넓고 비싼 집이 대부분이어서 저소득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싼 집이나 셋집의 씨가 마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니 세입자를 포함한 원거주민들의 재정착율이 10% 대 안팎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면 철거식 재개발·재건축은 사람을 쫒아낼 뿐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된 삶의 공간조직 마저 파괴해 버린다. 도대체 이러한 정비방식이 어떻게 해서 친서민적이라고 강요할 수 있나?

장관이 지적한 중에 또 하나는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의 효과다. 현 340만 가구를 500만 가구로 늘리기 위해선 재건축 등을 통해 주택공급이 원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장관이 가지고 있는 공급만능주의 입장을 보여줄 뿐이다. 서울의 주거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제 더 이상 양적 공급확대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간파할 수 있다.

2010년 통계청 인구센서스 자료에 의하면, 2005년과 2010년 사이 총주택수는 298천호 증가했다. 이에 따라 주택 보급률도 93.7%에서 97.0%로 높아져 주택의 절대적 부족 상황은 이젠 극복되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자가 보유율은 50.4%에서 51.3%로 0.9% 소폭 상승에 그쳤다.

이는, 주택 공급을 늘려도 무주택자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그렇게 크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27%는 주택 마련이 불가능한 계층인 데, ‘소득대비 높은 주택가격 비율(PIR)’이 전국 평균의 2배 이상이 되는 서울에서는 그러한 계층이 더 많다. 그래서 공급을 지속적으로 늘려왔어도 전국 평균 10%를 웃도는 50% 가구는 세입자로 사는 주거상황이 고착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다. 공급의 양적 확대만이 능사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서울시의 주택정책은 집을 공급해도 집을 살 수 없는 전체 가구 50%의 주거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런 제반의 측면에서 보면, 전면 철거 형태의 주거정비 대신, 공공 주도의 임대주택 8만 가구를 공급과 세입자의 주거안정에 초점을 맞춘 박원순 시장의 주택정책은 올바른 것이다. 서민 주거약자를 위한 저렴주택 및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파행적인 재개발·재건축 방식은 전면 보류되고 재검토되어야한다. 국토부가 해야 할 일도 서민주거안정에 걸림돌이 되는 도시정비제도나 임대차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