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대 방법과 ‘얼치기 어법’

강상헌 글샘터 강상헌l승인2012.02.01 11:40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한석규, 참 좋은 배우다. 청결한 인상하며, 정겨운 중저음 목소리에다 선량한 눈빛이 마음을 끈다. 열정을 폭발시키는 대목에서는 보는 이를 마구 흔든다. 만나고 싶은 사람 1호다.

그가 상을 탔다. 연말 방송사마다 가족잔치 하듯 벌이는 ‘무슨무슨 대상’에서였다. 어떤 이는 상 받고 울고, 신에게 감사도 하는 걸 보니 작지 않은 상인 듯, 선남선녀 즐비한 화면에 붙들렸다가 한석규를 만났다. 그 행사의 최고상인 ‘연기대상’을 받은 것이다. 그는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을 열연했다. 느긋하게 수상 소감을 듣다가 갑자기 아연(啞然)했다. 어이없는 마음이 들었다. 한석규의 육성(肉聲)을 글로 대충 옮겨보자.

“고마워요.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연기를 할수록 그런 생각이 드네요. 외모 목소리 정신세계... 그런 것을 주신 것이 부모님이니까, 부모님에 대한 고마운 생각이 나이 들어갈수록 많이많이 들어요. 배우가 있기 까지는 몇 가지 중요한 것이 있어요. 첫째는 원작이예요... 이제 알겠어요. 감사드리고 싶어요. 또 중요한 것은 동료예요... 출연해주셨어요...”

부드럽고 정다운 말투에 착한 뜻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행사장의 관객과 TV 시청자를 향해 ‘-요’로 끝나는 어법(語法)으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국어 당국의 견해로 이 어법을 풀어보자. “웃어른께 ‘감사해요.’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인가요?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하는 건가요?”라는 한 시민의 질문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답변이다.

- ‘요’를 붙인 종결형도 상대편(듣는 이)에게 존대의 뜻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이는 상대를 보통으로 높이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형으로, (웃어른과 같은)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상대에게는 잘 쓰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참고하여 상대가 깍듯하게 대해야 할 대상이라면, 아주 높이는 뜻을 나타내는 ‘-ㅂ니다’를 붙여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선생님이 어린 아이에게 쓰는 말투로 우리 사회는 이 ‘-요’ 종결형을 이해한다. 반말에 ‘요’를 붙여, 반말보다는 상대를 더 배려하는 느낌을 품도록 하는 말투인 것이다. 다소 어정쩡한 존댓말이라고나 할까. 존댓말에도 등급(等級)이 있는데 ‘-ㅂ니다’는 아주 높임(극존칭) 급이고, ‘-요’는 예사 높임(보통존칭) 급인 것이다.

사전과 상의해보자. “(주로 ‘해’라고 할 자리에 쓰이는 종결 어미나, 일부 ‘하게’라고 할 자리에 쓰이는 종결 어미 뒤에 붙어) 듣는 이에게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상대에게는 잘 쓰지 않는다.”라고 국어사전은 ‘요’의 뜻을 가르쳐준다.

“빨리 해.”와 “빨리 해요.” “나를 모르겠어?”와 "나를 모르겠어요?" “돈이 없어.”와 “돈이 없어요.” “기차가 참 빠르지?”와 “기차가 참 빠르지요?”를 비교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어법이다.

물론 일부 학자들은 ‘요’가 빠진 형태(‘요’결락형)와 ‘요’가 들어간 형태(‘요’통합형)의 두 가지가 최근 새로운 형태의 존비법(尊卑法)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정리하기도 한다. 즉 ‘-요’가 일반적인 존대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의 정서나 기왕(旣往)의 어법으로 따질 때 이는 아직 거리가 있어 보인다.

우리 말글의 존대(尊大)와 비하(卑下) 방법이 매우 어렵기는 하다.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어법 중 가장 골치를 많이 썩이는 것이 존댓말이다. 이제는 대충 모든 상황에 존대의 방식을 구겨 넣는 ‘얼치기 어법’이 정설(定說)보다 더 유행이다.

“최근에 새로 나온 제품이신데요.” “이 상품은 다양한 기능이 많으십니다.” “그건 좀 더 저렴하세요.” “이 카드 무이자 할부 가능하십니다.” 백화점의 일상적인 대화다. 어디에 잘못이 있어서 우리 말글이 이렇게 굴욕의 도가니에 갇혀있나?

스타는 남의 본보기가 되는 이다. 지성적인 이미지로 우리를 매혹하는 한석규의 수상소감이 마냥 개운하지만은 않은 까닭이다. 남 앞에 서는 이, 특히 성군(聖君) 세종대왕을 연기한 그 큰 배우는 공부를 더 해야 한다. 마음과 경륜을 담는 그릇인 말과 글의 바르고 고운 쓰임새를 더 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로 그의 수상 소감은 바뀌어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배우 한석규가 여전히 좋다.


강상헌 논설주간

강상헌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상헌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