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본주의와 기업사회책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유럽의 재정위기 등 2차 대전 후 잘 나가던 자본주의에 심각한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무자비한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양극화가 아닌가 싶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최근의 시위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Bretton Woods체제와 Washington Consensus(주: IMF 같은 국제 금융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작은 정부, 소득재분배정책 포기, 복지 예산 축소, 탈규제 민영화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야한다는 국제적 합의)를 중심으로 한 미국 조도의 신자유주의적 국제경제 질서가 정착되었다.

국내적으로도 많은 나라에서 정도와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였다. 미국은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이 주류를 이루었고 영국도 대처 수상 이후 동일한 정책을 주로 사용하였다. 그 결과 “1%의 극소수가 부를 독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강요되었고 현재까지 많은 영역에서 그러한 정책이 관철되고 있다. 특히 MB 정권 이후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라는 미명 하에 부자 감세 등 수출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편 결과 중산층 붕괴, 물가 상승, 청년 실업 등 사회적 불안정이 커지고 있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위기에 대해 경제학적 해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수요공급의 미시적 정책이나 통화 정책도 별로 신통하지 않고, 전가의 보도이던 케인즈의 재정 정책(뉴딜)도 이미 세계화된 경제 규모에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정책은 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는 데 반해 문제는 이미 세계적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Marxist라면 이러한 위기는 바로 금융자본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결과 나타나는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 과정이고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절호의 찬스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또한 전혀 비현실적이다. 사회주의 세계정부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이미 국경을 넘어 세계적 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거대기업을 사회주의적 국가계획이라는 기법으로 통제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거나 경제적 성과라는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볼 근거는 없다.

결국, 개별적 국가 체제를 가지고 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제 활동을 “공동선”에 합치하도록 유도할 방법은 쉽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훌륭하신 경제학자님들 주장처럼 각 경제 주체는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더라도 시장이 스스로 공동선을 달성해준다면 좋겠지만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시장의 실패는 항상 있어 왔다. 시장도 완벽하지 않고 사회주의적 대안도 비현실적이라면 우리에게 무슨 방안이 남아 있을까?

나는 이 대목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ISO26000에서 규정하듯이 사회적 책임을 “조직의 결정과 활동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직이 지는 책임으로서 투명하고 윤리적인 행위를 통하여 지속 가능한(sustainable) 발전에 기여하도록 (건강과 사회 복지를 포함), 이해관계자(stakeholders)의 기대사항을 고려하고, 법률과 국제 규범을 준수하고, 조직 전반에 걸쳐 통합되고 조직의 관계 속에서 실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 자신의 권력을 이해관계자의 기대사항 즉, 공동선에 합치하도록 행사하여야 한다는 전제에서 기업이 가지고 있는 세계화된 권력을 사회가 용인하겠다는 일종의 사회협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기업이 그 동안 정부가 해왔던 일의 상당 부분을 자신의 책임으로 자발적으로 맡아야 함을 의미한다. 기업의 목적은 단순한 “이윤 최대화”가 아니라 자신의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자들의 기대상항을 고려하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금방 알아차렸겠지만 대안으로서 기업의 사회책임은 대단히 엉성한 주장일 수 있다. 자발적 사회협약은 언제든지 방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발적인 것만큼 힘 있는 것도 없다. 강요된 책임보다 스스로 지는 책임이 훨씬 효과가 클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에 기업이 그 책임을 방기한다면 누가 어떻게 이를 응징할 수 있을까? 바로 깨어있는 소비자, 의식 있는 투자자들이다.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기업을 응징하는 최후 종결자는 바로 우리 자신들밖에 없다. 민주주의에 있어 최종 심판자는 평소 아무 힘도 없는 유권자이듯이, 대안으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바로 소비자와 투자자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민주주의적 경제 생태계를 전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