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에 양들과 늑대들이 드넓은 한 우리에 살았다.

“울타리를 쳐주면 안 될까요?”
때때로, 불안해진 양들이 주인에게 요구했다. 양들은 울타리를 가로막아서 경계선을 둬야 무서운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애원했다. 그때마다 주인은 자신이 눈뜨고 있는 한 양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고 무엇이든 골고루 나누며 살게 하겠다고 장담했다.

주인의 말대로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다. 다만 괴이한 일은 아무도 편을 가른 적이 없는데 한 우리 안에서 늑대와 양들이 저절로 갈라져서 살고 있었다.

늑대는 짐승 가죽으로 만든 천막이나 가죽보료 등을 팔았고 양들은 양젖으로 만든 치즈, 말린 꽃잎차, 약초 등을 팔았다. 날이 갈수록 늑대들은 이상하게 벌이가 커지더니 엄청난 부자가 된 반면, 양들은 부지런하고 착실하게 벌어도 새끼들을 굶기지 않고 겨우 키울 수 있는 정도였다.

“우리가 저걸 만들어 팔면 더 손쉽게 큰 돈 벌겠는 걸.”
양들의 가게를 지켜보던 늑대들이 소곤거렸다.

곧 그들은 공장들을 짓고 치즈와 약초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양들보다 훨씬 싸게 팔았다. 근근이 입에 풀칠하며 사는 작은 짐승들이 늑대네 치즈와 약초를 사려고 날마다 줄을 섰고 양들의 가게는 파리만 날렸다.

“늑대가 우리 동네로 와서 약초나 치즈를 못 팔게 울타리 쳐주세요. 놔두면 우리 모두 굶어 죽게 되요.”
양들이 주인에게 몰려가 아우성쳤다.

“그건 상거래의 자유를 해치는 건데.. 울타리 치는 것을 생각해보지.”
주인은 궁한 대답 끝에 흐리한 약속을 했다.

주인이 늑대들의 말을 들어본 후 울타리 하나 치는데 꼬박 몇 해가 걸렸다. 하지만 그 울타리가 허술해서 간신히 생계를 꾸려가던 양들의 치즈 가게나 꽃잎 차, 약초가게는 깡그리 늑대들한테 넘어갔다. 알거지가 된 양들은 새 벌이를 찾아 먼 곳으로 떠났고 부모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새끼 양들은 굶어서 말라죽었다.

늑대들은 남아있는 양들을 모조리 잡아먹고 양가죽과 양털을 가공해서 다른 마을에 팔았다.

늑대와 양을 한 우리 안에서 키우지 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가능한 걸까.

*우화(寓話)의 대가 해림 한정선 작가가 <시민사회신문> 이번호부터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을 통해‘꼼수 세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다양한 사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를 시원하게 풀어냅니다.

한정선 작가

한정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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