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재갈

한정선의 금수회의록 한정선l승인2012.04.0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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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에는 대지, 물, 불, 바람, 말 등 여러 신들이 살고 있었다. 신들은 영역을 평등하게 나누고 서로의 권한을 침범하지 않아 사이가 좋았다. 논쟁과 힘겨루기를 즐기다가 이따금 다투긴 해도 쉽게 풀어졌던 것은 소통의 신인 말(馬)의 중재와 공정한 비판 덕택이었다. 말은 신들 사이의 소통은 물론 신과 짐승, 짐승과 짐승 사이의 소통도 주관했다. 순식간에 천리를 날아가 닫힌 곳을 열어주는 그의 소통 능력에 세상은 평화로웠다.

그런데 신들의 다툼이 잦아졌다. 불의 신(火神)이 신들 사이에 분쟁의 불씨를 교묘하게 심어놓기 때문이었다. 물의 신(水神)과 결코 화해할 수 없었던 불의 신(火神)은 세상을 혼자 독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고, 차츰 지배욕의 불길을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불씨는 세상을 밝히고 따뜻하게 하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불씨를 잘못 놓으시면 큰 환란이 일어납니다.”

말이 화신에게 일침을 놓았다. 화신은 불길로 말을 훅 집어삼키려다가 눌러 참고, 태도를 바꾸어서 말이 수신과 작당해 물로 대지를 덮으려 한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고 다녔다. 또 세상의 들짐승과 날짐승들을 언변으로 꼬드겨서 하늘을 차지하려 한다는 소문도 퍼뜨렸다. 날조된 괴 소문은 신들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말은 재갈이 물린 채 천상의 법정으로 끌려 나갔다. 모든 신들과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일정한 거리를 지켜야 하는 덕목을 내팽개치고 세상을 어지럽혔다는 게 죄목이었다. 들짐승과 날짐승 떼가 말의 무죄를 증명해주기 위해 신전을 에워쌌으나 오히려 괴 소문을 진실이라고 입증해준 꼴이 되고 말았다.

신의 법정은 말의 혀를 잘라 벙어리로 만들고 지상으로 추방시켰다. 말은 기가 막힌 일을 알리고자 히히힝 하는 콧소리로 울부짖곤 했다. 말귀 밝은 짐승들이 그 비통한 소리를 알아듣고 일제히 함성을 지를 때마다 온 세상이 뒤흔들렸다.

겁먹은 화신은 후환의 싹을 제거해야 한다며 신들을 설득해 다른 짐승들의 말길마저 깡그리 틀어막았다. 그러나 짐승들이 제각각의 독특한 울음소리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소리가 화신의 귀에 비웃음처럼 들렸다. 화신은 모두를 감시해도 안심이 되지 않는 신경쇠약증에 걸려 은연중에 제 음모를 내뱉고 말았다. 그는 날개가 뽑히고 신의 능력을 박탈당한 뒤 사막으로 내쫓겼다.

이런 이유로 권력의 화신이 된 인간은 말 뿐만 아니라 짐승들과 소통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이 내는 울음소리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게 되었다.

권력은 말에 재갈을 물리고 싶어 한다.


한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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