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자 신변안전, 그리고 ‘제노비스법’을 말하자

‘수원 납치 살해사건’으로 본 경찰개혁 고상만l승인2012.04.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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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 뒤 보복당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시민의식을 탓하지 말아야
‘범죄 신고자에 대한 정보보호에 무심한 경찰도 무섭다’는 말 곱씹어야

차마 사건을 언급하기도 꺼려질 만큼 ‘수원 납치 살해사건’은 충격적이다. 매일 매일 새롭게 드러나는 충격적 사실 앞에서 국민들의 마음은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이 사건 용의자의 잔인하고 엽기적인 범죄 행각에 한번 경악하고 다시 경찰의 허술한 대처를 보고 두 번 경악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같은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고자 적어도 10번 이상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까지 한 경찰에 대해 네티즌들은 ‘욕도 지쳤다’라며 개탄하고 있다.

특히 피해 여성의 구조 신고 전화를 받는 경찰의 태도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쉽게 말해 ‘경찰이 받으나 일반인인 내가 받으나 수준이 똑같다’라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런 경찰에게 우리의 안전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어찌 보면 이 사건에서 가장 침착하게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다한 이는 ‘피해 여성’인 것 같다. 그는 평소 교육받은 것처럼 경찰에 신고했다. 너무 다급하면 신고 번호가 119인지 114인지, 아니면 112인지 조차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의 행동은 모범적인 신고의 전형이었다. 공개된 녹취록을 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위치 정보를 경찰에게 최대한 전달하고자 노력한 점이 그렇다.

나아가 범인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간 틈을 타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다가 그 사실이 발각되는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부러 휴대폰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기지까지 발휘했다. 정말 놀랍도록 침착했고 경이로울 정도로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이같은 피해자의 모든 기지는 112 신고센터에 모여 있었다는 20여명의 경찰관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아저씨 잘못했어요.”
휴대전화를 통해 들려온 이 말을 듣고 그저 ‘부부싸움’으로 판단했다는 경찰의 변명은 그래서 유족은 물론이고 상식을 가진 국민들에게 비난받을 충분한 이유다. 남편을 아저씨라고 부를 수 있다는 상식, 더 나아가 이것이 ‘부부싸움’이라고 판단해서 출동하지 않았다는 경찰의 황당한 변명을 보면서 대한민국 경찰이 이해도, 용서도 되지 않는다.

신고자를 위기에 빠뜨리는 대한민국 경찰?

“이 사건이 살인사건이었다면 저희가 이렇게 대처 했겠습니까?”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경찰의 황당한 대응 태도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일자 해당 경찰서장이 이렇게 항변했다. 맞다. 이 사건의 파장이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다면 수 많은 사건중 이 사건도 그저 그런 사건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결말이 너무나 비참하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이같은 책임을 지고 조현오 경찰청장이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112 신고 센터에 대한 전면적 쇄신을 약속했다. 경험이 많고 전문적인 이들로 배치하겠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고 지켜져야 할 약속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서울에 사는 30대의 송모씨는 3년 전 그 일이 있은 후부터 ‘112로 신고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새벽.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창밖을 내다보니 취객 남녀 3명이 골목에 주차된 차량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치는 등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신고 정신이 투철한 그는 곧바로 112 신고센터로 전화를 했다. 다행히 오래 걸리지 않아 경찰이 왔지만 불행하게도 그 사이 난동을 부리던 이들이 사라진 후였다.

그러자 신고했던 송씨에게 경찰이 전화를 했다. 송씨는 경찰이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그들이 현장을 떠났다고 말해준 후 자신이 목격한 그들의 인상착의를 알려줬다. 모범적인 시민 의식이었다. 그런데 통화를 마친 경찰이 현장을 벗어나자 다시 좀 전에 난동을 부린 그들이 재차 돌아왔다. 또다시 신고 정신에 투철한 송씨. 좀 전에 통화한 경찰에게 전화하여 이 사실을 알려주며 그들이 걸어간 방향을 알려줬다.

그런데 황당한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신고한 지 몇 분이 지난 후, 경찰차가 송씨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러더니 자신에게 잠시 내려와 달라고 전화가 왔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내려가보니 아뿔사. 경찰차에서 좀 전 송씨가 신고한 3명이 줄줄이 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경찰 왈, “신고한 사람들이 맞는지 확인 좀 해달라”는 말이었다.

그는 “신고자 집 앞에서 용의자를 대면시켜주는 대한민국 경찰의 센스”에 대해 분개했다. 덕분에 신고 후 한동안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기억을 생각하면 그는 경찰에 다시 어떤 일을 보더라도 신고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맺었다. 필자 역시 ‘그것이 틀렸다’라고 쉽게 말하기 어려웠다.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경찰? 국민의 희망사항

지난 13일 조현오 경찰청장은 자신의 사퇴를 앞두고 열린 전국지휘관회의에서 경찰간부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조 청장은 수원 납치살해 사건에 대한 반성과 동시에 "그래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이고 유능한 경찰이다."라고 울먹였다다.

맞다. 경찰은 유능해야 한다. 검찰보다 유능해야 하고 법원보다도 유능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진짜 ‘민생’이다. 경찰이 무능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비극의 집약체가 바로 이번에 발생한 ‘수원 납치 살해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찰의 ‘무능’만이 아니다. 국민을 더욱 참담하게 하는 것은 적어도 15번 이상 경찰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지금까지 밝혀진 거짓말이 정말 다일까”하는 의문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일은 또 어떤 거짓말이 새롭게 밝혀져 우리를 또다시 경악하게 할까” 두렵기까지 하다. 경찰의 총체적인 반성과 각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유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사례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평범한 40대 주부인 한모씨 사례 역시 그렇다. 그는 평소 경찰에 신고를 잘하는 사람이다. 정말 모범적인 시민이다. 스스로도 신고 잘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할 정도다. 우연히 누군가 음주운전을 해도, 지나가다 부부싸움을 보거나 싸움을 해도 그는 112로 전화를 하는 시민이었다. 그런 그가 몇해 전 겪은 일이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윗집에서 아주 큰 부부싸움이 났다. 폭력 남편에게 심하게 맞던 부인의 ‘살려달라’는 비명 소리. 당연히 가만있는 그가 아니었다. 잠시 후, 한씨로부터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힘차게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윗층에서 들려오던 싸움 소리도 잦아들었다. 이에 신고자 한씨는 “경찰이 상황을 정리하겠지”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그때 생각지도 않게 자신의 집에 벨 소리가 울렸다. 그러더니 복도에서부터 들려오는 아주 큰 경찰관의 목소리. "여보세요? 여기서 신고하셨죠? 부부싸움 난 집이 어느 집입니까?"

그날 이후 한씨는 신고한 윗층 남자로부터 해코지를 당할까 며칠동안 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두려움에 떨면서 지냈다. 그 역시 범죄 신고자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두고 분통을 터뜨렸다. 범죄를 보면 신고해야 한다는 당연한 시민의 의무에 따라 행동했다가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봉변을 당하는 한씨와 같은 사례에 대해 경찰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같은 한씨의 사례는 아주 예외적인 실수’라고 과연 경찰은 자신있게 답할 수 있을까?

‘제노비스 법’도 좋지만 신고자 안전이 우선돼야

이번 ‘수원 납치 살해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가 납치되는 상황을 목격한 주민이 있었으나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 또 다른 충격이라고 말한다. 또한 피해자가 용의자의 집에서 오랜 시간 저항하는 과정에서 집 밖으로 그 비명소리가 나갔음에도 이를 듣고 경찰에 신고한 주민이 없었다는 사실 역시 매우 충격적이다.

그래서 이 사건을 두고 언론과 범죄 사건 전문가들은 이른바 ‘제노비스’법을 우리나라에서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할 경우 그가 제3자일지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일컬어 ‘제노비스’ 법이라고 한다. 이는 지난 1964년 ‘제노비스’라는 미국 여인이 자신의 집 근처에서 강간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이들이 38명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신고하거나 도와주지 않은 채 외면하는 충격적 사건 이후 제정된 법이다.

맞다. 필자 역시 이 법의 도입에 대해 적극 찬성한다. 그런데 이 법 도입에 앞서 선행해야할 과제가 있다. 범죄를 신고한 사람에 대해 경찰이 어떻게 그들의 정보 보호와 신변 안전을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제노비스법이 제정되지 않고도 이미 모범적인 신고 정신을 갖고 있던 이들은 열심히 신고했다. 그런데 이같은 신고자의 봉변 사례를 접하고도 과연 시민들이 신고 정신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제노비스 법’을 만들어서 강제해야 할 만큼 시민의 자발적인 신고 정신이 각박해진 이유는 사실 경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를 보면 시민들이 왜 112 신고를 외면하게 된 것인지 답이 나온다. 그렇다. “신고하면 경찰서로 와라 가라 하면 나만 피곤해진다”라든가 “신고하고 난 후 보복당하면 어떻게 하나”라고 생각하여 외면하는 시민 의식을 탓하기 전, 왜 이처럼 시민들이 생각하게 되었을까를 두고 경찰은 먼저 반성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112 신고 센터에는 벨이 울릴 것이다. 신고를 접수하면서 112 신고센터 경찰은 무슨 생각을 할까. ‘고마워할까. 아니면 귀찮을까. 아니면 또 장난전화가 아닐까’ 짜증이 날까. 신고 전화를 대하는 경찰의 마음을 국민 역시 느낀다. ‘신고하는 시민 정신’을 활성화하기 위해 경찰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개혁을 거듭 기대한다.


고상만 객원기자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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