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는 보수·사회경제는 진보가 오히려 ‘진짜 진보’

최병천l승인2012.04.2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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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연대, 수도권에선 ‘반MB 정치동맹’ 비수도권에선 ‘안보불안 정치동맹’ 작용
일부의 ‘낡은 진보’ 버리고 복지국가·경제민주화 등 사회경제적 이슈 전면화해야


이슈진단/12월 대선, 민주당과 야권연대로는 ‘매우 암울한’ 이유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밤이 깊어질수록 SNS 공간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떤 분들은 울기 시작했고, 그리고 어떤 분들은 너무 속상해서 술을 먹고, 그리고 새벽 늦도록 잠이 안 온다는 분들이 많았다. 나는 일관되게 새누리당의 제1당을 전망한 편이었지만, 그만큼 ‘충격적인’ 선거 결과였다. 그만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의 에너지가 강력했었다. 그리고 민주당 및 야권에 대한 분노가 컸다.

국민이 ‘왕’인 정치체제, 무능+오만+탐욕스런 야당 심판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주인노릇을 제대로 한” 선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보-보수의 기준은 단지 이념적-정치적 입장에 의한 구분에 불과하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다른 더 중요한 구분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무능과 유능, 오만과 겸손, 탐욕과 성실의 구분법이 그것이다. 이런 구분법들을 추가하면 ‘경우의 수’로 볼 때, <무능+오만+탐욕+진보의 조합>도 성립 가능하고 <유능+겸손+성실+보수의 조합>도 성립 가능하다. 물론 경우의 수는 좀 더 다채로울 것이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무능+오만+탐욕+보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분노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 내내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는’ 투표를 했다. 그것은 동시에 무능+오만+탐욕을 심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위원장이 지휘하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상대 평가’를 하기 시작하자, 결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박근혜 위원장에 비해서 민주당이 훨씬 더 <무능+오만+탐욕+진보의 조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를 ‘심판’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본디 국민을 왕(王)으로 받드는 정치체제다. 그리고 ‘국민의 눈’으로 생각해본다면, 자신들이 진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반MB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무능+오만+탐욕스러운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오히려 매우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무능+오만+탐욕’은 사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집권 기간 내내, ‘민주화 운동권 세력’을 심판했던 서민대중들의 울분이기도 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6일 새누리당 사무처 월례조회에 참석, 이주영 정책위의장, 권영세 사무총장을 비롯한 사무처당직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패배’가 아니다? 친노진영 일부의 매우 우려스러운 움직임들

우리가 총선 평가를 하는 이유는 어떤 정파와 개인의 잘잘못을 비난하기 위함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로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로 나가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야권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무엇을 성찰할 것인지를 제대로 짚어야 한다. 그래야 ‘대안적’ 방향성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4.11 총선 결과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평가는 김용민 후보의 막말파문과 한명숙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다. 이 부분도 매우 중요했지만, 다른 글에서 많이 지적되었기에 본 글에서는 생략한다. 그런데 최근 총선은 ‘패배’가 아니며, 이번 총선 결과로 볼 때 대선은 충분히 해볼만하다는 견해를 밝히는 이들도 있다. 참여정부의 인사 중 한명인 조기숙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다른 친노 인사들과 유사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기숙 교수를 비롯하여 총선이 패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논거를 들고 있다.

△첫째, 범보수 VS. 범진보개혁 세력의 정당투표 합계를 계산하면 박빙우세이기에 12월 대선에서도 ‘해 볼만’ 하다 △둘째, 야권연대는 성공했으며 특히 야권연대로 비수도권 지역도 그나마 선전했다. △셋째, 수도권은 압승하고 다른 비수도권 지역은 패배했으니 대선에서는 비수도권 후보를 통해 승리할 수 있다. 이러한 논거들은 타당할까?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지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 정당 ‘기본 지형’과 총선·대선의 ‘결정적인’ 차이

위와 같은 주장의 타당성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한국 정당의 ‘기본 지형’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평가의 기본적인 ‘준거 틀’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범보수와 범진보개혁세력의 ‘최소 고정표’를 추산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추산하는 방법은 각각의 세력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의 선거 득표율을 살펴보면 된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이 가장 어려웠던 선거는 탄핵과 차떼기로 위기에 몰렸던 2004년 총선이다. 이때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득표 합계가 40%이다. 반면 진보개혁 세력이 가장 어려웠던 선거는 2007년 대선이다. 이때 정동영-문국현-권영길-이인제 후보의 합계가 35%이다.

즉, 한국의 범보수 VS. 중위수 집단 Vs. 범진보개혁 세력의 기본 지형은 40 : 25 : 35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대선에서 1:1 대결을 가정해볼 때, 범보수는 10% 이상만 추가 하면 이기는 게임이고, 범진보개혁세력은 15% 이상을 추가해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인 셈이다. 이를 평가의 준거틀로 총선 결과를 평가해보자.

첫째, 정당득표의 합계를 먼저 살펴보자. 2012년 4.11 총선에서 범보수 정당의 합계는 46%이고, 범진보개혁 정당의 합계는 46.8%이다. 조기숙 교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총선은 ‘패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2010년 지방선거 결과와 비교하면 잘못된 주장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아래 [표] 참조.)

[표] 정당득표의 합계 (12년 총선과 10년 지방선거 비교 - 정당투표 기준)

범보수 정당득표 합계

범진보개혁 정당득표 합계

2012년

총선

46%

(새누리 42.8 +자유선진 3.2)

46.8%

(민주 36.5 + 통합진보 10.3)

2010년 지방선거

44.8%

(한나라 39.6+자유선진 5.2)

51.1%

(민주 34.6+민노 7.3+참여 6.3+진보 2.9)

2010년 지방선거에서 범보수 세력의 정당득표 합계는 44.8%였다. 반면 범진보개혁 세력의 정당득표 합계는 51.1%였다. 2010년 지방선거의 경우, 범진보개혁 세력이 범보수 세력에 대해서 6.3%를 앞섰다. 그런데 격차는 0.8%로 줄어들었다. 또한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의 ‘변동치’만을 감안하면, 범보수의 경우 ‘0.9% 증가’했고, 범진보개혁의 경우 ‘4.3% 감소’했다.

그리고 덧붙인다면, 이번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은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번 선거는 “반MB 심판의 바람”을 전제로 치러진 선거인 반면, 12월 대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의 경우 박근혜 위원장은 “반MB라는 강력한 부담 덩어리”를 등에 짊어지고 치룬 선거였던 반면, 12월 대선은 MB 심판의 부담에서 자유로운 선거라는 점이다.

즉, 야권과 박근혜 위원장의 총선 대결은 야구로 비유한다면 1회초 0:0에서 시작한 게임이 아니었다. 출발선상 자체가 6회초 5:0에서 시작한 게임이었다. 그래서 이번 총선 결과에서 얻은 야권의 표는 반MB 덕택에 자신들의 실력 이외에도 ‘덤으로’ 얻은 표가 보태져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런 진단에 입각하면, 12월 대선은 ‘매우 우울한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둘째, 야권연대가 성공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그런데 이 주장은 세 번째 문제인 수도권의 압승과 비수도권 지역의 ‘전멸’에 가까운 비대칭적 결과에 대한 평가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알다시피 강원-충청-영남권은 오히려 18대 총선보다 결과가 나빴다. 이 지점, 즉 수도권-비수도권의 비대칭적 결과를 ‘일관된 분석틀’로 해명하는 부분은 이번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포인트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뜻밖에도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서도 간과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12월 대선을 ‘어떤 구도’로 설계해야 하는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통합당 문성근 대표 권한대행이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시민과의 대화 시간을 갖고 있다.

야권연대의 득과 실-‘반MB 정치동맹’ 혹은 ‘안보불안 정치동맹’

결론부터 말하면, 야권연대는 수도권의 압승 요인이자 동시에 비수도권 지역의 패배 요인이었다. 말 그대로 ‘동전의 양면’이었다. 이에 대한 하나의 판단근거로 우리는 총선 직후인 4월 13일 발표된 “총선의 최대 이슈”에 대한 리얼미터의 조사 자료를 참고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아래 [그림]과 같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야권에 유리한 이슈>와 <야권에 불리한 이슈>를 비교해볼 때, 야권에 불리한 이슈의 ‘총 비중’이 더 높다는 점이다. 이슈의 순서를 보면, △막말 파문(22.3%) △경제민주화 공약(16.1%) △민간인 불법 사찰(14.9%) △한미FTA 폐기 논란(10.7%) △야권 여론조사 조작 파문 (9.7%) △북한로켓 발사 준비 (5.1%) △제주해군기지 논란 (3.7%) 순서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중에서 ‘야권에 유리한 이슈’는 경제민주화 공약과 민간인 불법사찰이었는데 합계는 41.0%이다. 반면 나머지 이슈들은 모두 ‘야권에 불리한 이슈’였는데 합계는 51.5%이다.

이중에서 한미FTA 폐기 논란과 제주해군기지 논란이 ‘안보 불안’을 증폭시킨 이슈였다면,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과 이정희 의원의 여론조사 조작 파문 및 그에 대한 야권의 대응은 ‘오만한 이미지’를 증폭시킨 이슈였다. 결국 이러한 것들이 마치 ‘가랑비에 옷 젖듯이’ 누적되어서 유권자들에게 “안보 불안을 조장하는, 오만한 정치세력”이라는 총체적 이미지가 심어졌다고 추론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야권연대는 수도권에서는 ‘반MB 정치동맹’으로 작동했지만,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안보불안 정치동맹’으로 작용한 것이다.

수도권과 호남의 경우, 상대적으로 반독재 민주화의 원초적 체험과 그 에너지가 강력한 곳이다. 그래서 수도권은 야권연대의 ‘안보불안 정치동맹’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둔감한’ 반응을 했다. 반면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 ‘안보불안 정치동맹’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며 MB 심판이 아니라 오히려 ‘야권연대’를 심판한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비수도권 유권자들이 야권연대 그 자체의 심판이라기보다는 ‘안보불안 정치동맹’을 심판했다는 것이다.

복지국가-경제민주화의 ‘정책 차별화’가 이뤄지지 못한 근본 이유

이번 총선이 있기 얼마 전까지, 한국사회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담론이 활발했다. 위와 같은 담론들은 모두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와 관련된 이슈들이었다. 그러나 막상 총선 국면이 본격화되자 사회경제적 이슈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리고, 민간인 불법사찰과 ‘이명-박근혜’라는 신조어가 전면에 부상했다. 그런데 이러한 담론들은 마치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4대 개혁입법 논란처럼, 모두 민주 VS. 반민주 구도의 복고주의적 재현에 불과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왜 막상 선거 국면이 본격화되었을 때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담론은 오히려 사라졌을까? 왜 정책적 차별화는 부재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결론부터 말하면, 실제로 ‘차별화되는’ 비전과 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그간 민주당의 대응이 ‘레토릭’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 역시도 ‘레토릭’ 수준에서 대응하면 그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야권의 ‘레토릭’에, 박근혜 위원장 역시 ‘레토릭’으로 대응한 꼴이다.

물론 민주당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정책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공천과정에서 그와 관련된 주요 인사들은 거의 대부분 탈락되거나 사지(死地)로 보내졌다. 그리고 더욱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정책은 단지 ‘글자와 생각의 조합’을 본질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우 관념적이며 전문가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정책은 본질적으로 특정한 계급-계층을 ‘대표’하는 문제이며, 이러한 대표성을 통해서 사회적 갈등의 ‘동원’ 과정이며, 동시에 정치적 인격체(=정치인)의 형태로 현상화되며, 이러한 모든 것들이 집적된 ‘정치철학’의 총체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정책을 ‘발표’하는 수준이었다. 거기에는 사회적 갈등도, 계급-계층적 대표성도, 정치적 인격체도 사상(捨象)되어 있었다. 진공상태에서 실현되는 정책인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사회적 논란도 관심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식으로 표현하면 “영혼이 없는” 정책이었던 셈이다. 왜? ‘철학’이 없으니 ‘레토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진영론과 상대방의 악마화 비전없는 친노와 486세력의 자기정당화

그럼 거꾸로 왜 야권은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현상적 진단을 넘어 문제의 진짜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주체’의 문제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질문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특히 많이 나왔던 ‘진영론’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진영론은 내편은 정당하고, 상대편은 문제가 있다는 발상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진영론적 사고방식은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발상과도 직결된다. 그렇다면 왜 야권과 야권의 열혈 지지자들은 이러한 진영론적 사고방식과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사고방식이 작동하게 되는 것일까?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과 19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지난 16일 오전 국회에서 상견례를 갖은데 이어 첫 공식행사로 대한문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를 찾았다.
그것은 생각해보면, 유난히 강력했던 한국사회의 반독재 민주화 체험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2000년 ‘젊은피 수혈’의 일환으로 정치권에 유입되었던 ‘전대협 동우회’ 출신들, 그리고 2002년 노무현의 집권과 2004년 탄핵파동 속에서 열린우리당의 집권은 모두 ‘민주화 운동권 세력’의 정치권 진입을 함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현재 민주당의 주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친노+486세력’이다. 이들은 내부적으로 서로 주도권 싸움으로 다투는 듯 하지만, 사실은 ‘일란성 쌍둥이’ 같은 존재들이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경험은 친노 집단과 486 집단에게 ‘자기 정당화’의 원초적 근거였던 셈이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군부독재의 후예라는 발상, 자신은 민주화운동의 주역이라는 발상은 정치적 시야를 항상 ‘과거’에 머무르게 만든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도 고작 ‘전술적’ 수준에서 제한될 뿐이다.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혁신’에 투자하게 될 동기를 근본적으로 반감시킨다. 왜냐하면 모든 혁신이란 본질적으로 “상대방이 나보다 더 우월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승인될 때만 비로소 작동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강력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원초적 체험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시절 개혁 실패의 본질적인 이유였으며, 그리고 여전히 친노와 486이 ‘낡은 과거’에 얽매이게 만드는 본질적인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이명박-박근혜는 군부독재의 후예라는 비난을 통해서 자기를 정당화시킨다.

그리고 자신과 한 때 민주화운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을 공천하는 ‘나눠먹기 공천’을 마치 ‘민주화세력에 대한 공천’이라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그들이 시시때때로 ‘오만한 본성’을 드러내는 본질적인 이유이다. 그들은 여전히 80년대 어딘가의 가투 현장을 헤매이며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21세기 한국정치에서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면 심지어 소위 진보개혁 언론 매체들와 학계의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조차도 이러한 진영론적 사고방식과 상대방의 악마화에서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여진다. 총선 국면에서 드러난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 등의 사설과 기사 배치, 논조 등은 이들이 민주당의 수준과 오십보 백보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결국 ‘좋은 정당’을 위해 필수적인 ‘좋은 정치비평’의 자리는 매우 협소했다.

‘안보’문제와 ‘먹고사는 문제’는 이해-공감-존중에서 출발해야

한국의 현대사는 냉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군부독재에 의한 발전국가, 그리고 이에 맞서는 강력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거쳤다. 그래서 한국 국민들에게는 이러한 현대사의 아픔이 ‘원초적 체험’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지금도 알게 모르게 투표의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크게 보면 △한국전쟁의 체험(=안보) △박정희식 경제성장(=성장=먹고사는것) △영남 지역(=지역갈등) △부유층(=계급적 이익)의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중에서 한국전쟁의 체험과 박정희식 경제성장은 진보에서도 어느 정도 성찰과 재평가가 필요한 지점이다. 그것은 정책적으로 표현하면, ‘안보’문제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서민들의 가슴 아픈 역사적 체험을 이해-공감-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함을 의미한다.

조중동류의 냉전적 시각과는 선을 그어야 하겠지만,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에서 안보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기에 ‘중위수(中位數) 투표자’의 관점에서 안보 문제에 대해, 야권이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참여정부 시절, 최장집 교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우리사회에 던졌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런데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냉전적 시각’에 머물러 있는 일부의 ‘낡은 진보’이다. 그 지점의 핵심에 ‘안보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진보개혁세력은 보수가 우려하는 안보 문제를 ‘포용’해야 한다. 안보문제를 ‘포용’하는 것을 통해서 안보 이슈를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사회경제적’ 이슈를 전면화시킬 수 있다. 그래야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민생문제)를 정치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상시키고,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한발 더 진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안철수 교수가 간명하게 정리했던 “안보는 보수, 사회경제는 진보”라는 테제야말로 오히려 가장 ‘진보적’임과 동시에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한 방향성의 핵심이라는 것을 함의한다. 중요한 것은 안철수라는 ‘개인’이 아니라 ‘그 노선’이 담고 있는 시대정신이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대선 승리의 관점에서 볼때, 아직도 항미연북론(抗美連北論)에 입각하여 반제(反帝)-반미(反美) 민족해방론을 자신의 정치노선으로 채택하고 있는 낡은 세력이 당권파로 있는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가 정말로 바람직한 것인지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시대 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복지국가 정치동맹>이지, <안보불안 정치동맹>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병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최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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