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사고 이후 한국과 일본 차이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12.05.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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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반응(核反應)으로 만든 전기가 전혀 없는 일본, 획기적인 경지다. 일본은 인류의 새 가능성을 활짝 열어 보일 것인가? 지난 5월 5일, 일본은 원자력발전소를 전부 껐다. 일본이 원전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66년, 지난 1970년 4월 정기점검을 위해 잠시 가동을 멈춘 것을 빼고는 처음으로 모든 원전이 정지된 것이란다.

원자력발전(原子力發電)을 우리는 ‘원전’이라고 하고 일본은 ‘원발’이라고 한다. ‘원발(原發)’ 단어가 요즘 일본 대중매체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 중 하나다. ‘原發 제로’ ‘脫 原發’은 우리 식으로 ‘원전(原電) 제로’ 또는 ‘탈 원전’이다. 우리와 비슷하게 원전으로 전체 전기의 30% 가량을 만드는 일본에서 이렇게 탈 원전 상황이 빚어진 것은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다. 우리도 모두 지켜본 동일본 지진과 쓰나미에 따른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이 그것이다. 후딱 1년이 지났다. 물론 ‘시험’을 위한 가동(稼動) 정지라지만, 다시 발전소를 돌리기 위한 의도만을 가진 시험은 아닌 듯하다.

원전으로 만든 전기를 쓰는 일은 흡연(吸煙)을 닮았다. 당초 호기심과 재미 정도였다. 중독이 됐다. 후에 담배가 ‘유독물질’로 밝혀졌다. 그래도 못 끊는다. 그대로가면 죽는다. 치명적이다. 그러나 ‘죽는 것’은 내일의 가능성이다, 오늘은 피우자. 대충 이런 심리 아니겠는가. 히로시마나 체르노빌의 비극처럼, 사고 시 엄청난 피해가 생긴다는 점에서 원전은 두렵다. ‘원전 없으면 문명도 없다’는 ‘그들의’ 논리처럼, 끊기 어렵다는 점에서 또한 원전은 두렵다. 전기(電氣)가 주는 가없는듯한 풍요를 원자력발전만이 보장한다는 것, 치명적 중독성이다.

원자력발전은 본질이 ‘핵반응’이다. 이는 ‘원자핵이 양성자 중성자 등 다른 입자(粒子)의 충돌로 인하여 원자번호 질량수 등이 다른 별개의 원소의 원자핵으로 변환되는 과정’이다. 휘발유가 타서(엔진에서 폭발해) 차를 움직이고 배기가스가 되거나, 연탄이 서민의 마음과 방을 덥히고 연탄재가 되는 것과는 다르다. 반응과정도 반응 후도 다른 에너지와는 다른 것이다. 당사자들(원전 부근 주민들)과 ‘시민운동가’(반핵주의자) 등이 목숨을 걸고 처절(悽絶)하게 싸우는 이유다.

어떤 이들은 ‘내 집 마당 아닌데, 나라 일인데, 무슨 상관이랴?’하며 어려운 그 얘기를 피해버린다. 반응 후 물질의 처리에도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하면 ‘나중 일인데 왜 지금부터 걱정해?’하고 마는 것이다. 담배가 ‘유독물질’임을 부인하거나, 그 생각을 애써 회피하는 흡연자들의 심리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무기상(武器商)과 함께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는 담배산업 장사치들도 나름의 잘 짜인 방어논리를 갖추고 있다. 그것으로 사람을 설득하기도 하고, 법률과 법원을 현혹(眩惑)해 주로 가난하고 무식한 계층인 흡연자들의 돈을 빨아들이는 대롱을 튼튼하게 지킨다. 음악가를 사서 문화 이미지로 포장하기도 한다. 비키니 모델 때문에 담배가 TV 따위에서 생명력 넘치는 멋이 된다. 광고의 해악 중 하나다. 담배가 ‘건강’이 되는 것이다.

히로시마와 체르노빌의 ‘역사’를 가진, 게다가 현장 생중계로 후쿠시마의 비참한 상황을 목격하고 치를 떤 사람들도 자신이 처한 상황과 이해(利害)관계에 따라 그 생각들이 각각 다르다. 하나뿐인 지구, 그 행성의 동승자(同乘者)들의 논리가 각각 다르다면 어떤 논리는 억지일 수밖에 없다.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 나라들은 국민 뿐 아니라 정부까지 나서서 ‘탈 원전’을 외친다. 이런 움직임은 오래된 것이다. 후쿠시마의 비극이 다시 그 의지를 북돋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대표인 대통령은 ‘원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원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는 생뚱맞은 발언을 했다는 보도다.

기후변화의 서막(序幕)이 이미 인류에게 경고를 시작했다. 빙하가 스러진다. 북극곰이 울부짖는다. 저 동영상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모두 안다. ‘생명의 세기(世紀)’를 살고 있는 인류의 시대정신은 원자력발전이 이미 한물 간 방식, 멸망을 향한 조건임을 너무도 또렷이 보여준다.

원전에 대한 ‘애정’을 가진, 너무도 시대에 뒤떨어진 그 사람만은 이를 모른다. 너무 하찮은 어리석음이지만 어쨌든 현재의 권력이다. 그의 주위에서 알랑대는 이들 중에도 아마 절반 정도는 모를 것이다. 대통령 간판이 바뀌면 그 때 봇물처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성명이 터져 나올까?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다. 그와 그들에게 역사 공부를 권하는 이유다.

어떤 신문은 이렇게 썼다. ‘신울진원전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내외 안전점검 결과 도출된 개선사항을 설계단계부터 반영해 안전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산 원전 신울진 1,2호기 기공식 기사에서다. 그 우주적인 차원의 쓰나미에서 기껏해야 그 것 밖에 못 배웠나? 봉숭아학당 수준도 못된다. 또 어떤 신문은 사설에서 이런 폭력적 논리를 쏟았다. ‘전기는 아껴 쓰지 않으면서 원전은 반대하는 일부의 망발(妄發)은 어찌된 것이냐?’하는 비아냥이었다. 원전을 반대하는 이가 전기를 아껴 쓰지 않는다는 어거지는 어찌된 것이냐? 이게 언론이냐?

‘그들’과 ‘그들의 권력’과 ‘그들이 주는 광고료’를 탐내는 일부 언론들이 일관해 어거지를 쓴 까닭에 생긴 ‘정보의 불균형’이 문제다. 시대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착한 시민들의 눈을 강제로 가리고 있는 것이다. 원전은, 잘 관리하면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그들’아,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과연 착한 생각이냐? 독일은 기술이 없어서 원전을 버리는 것이냐?

후손에 대한 또 인류에 대한 한 조각 예의조차 못 갖춘 족속, ‘문화와 인류애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본’과는 달리 돈만 아는 코리아 따위의 국제적 오명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 제국주의 시대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이 가치인가? 우리는 정말 부자이고 강한 군사력을 가졌나? 안타깝지만, 부끄럽다. 우리 깜냥이 기껏 거기까지인가? ‘한국의 마음’에는 사랑이 없는가? 지구촌이 ‘한국’을 어떻게 보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한국을 아름답다 하는가?

일본은 스스로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되 새로운 ‘생명의 세기’를 열 수도 있는 개벽(開闢)의 열쇠를 쥐었다. 원전 없이 사는 방법, 원전을 없애는 방법, 방사능 공포를 뿌리 뽑는 방법 따위 그들이 직면한 난관은 현대 인류의 거대한 숙제일 뿐 아니라 다음 시대의 문명을 지키고, 돈까지 움켜쥐는 특허(特許)가 될 수밖에 없다. 허망한 공상이라고? 불과 10년 전에, 오늘의 모습을 비슷하게나마 상상이라도 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10년 후 당신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상당수 일본인들은 전기 부족에 따른 당장의 부담을 달게 질 의지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도쿄신문 등 일부 언론도 ‘원전 제로’를 계기로 새 시대가 시작됐다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자고 호소하는 기사를 냈다. ‘시대의 도도(滔滔)한 흐름’이라는 표현도 눈에 띈다. 당당하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가 아니다.

‘원전 제로 시대에 도전한다’는 제목에 용기를 얻는 시민들이 많다고 한다.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일본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정말 경계해야 할 이웃이다. 그런 그들이 다음 문명을 이끌 새로운 지혜와 기술을 고안할 가장 좋은 기회를 맞은 것이다. 얼떨결에 맞은 기회, 그들은 그 비극을 보람으로 바꿔낼 수 있을 것인가?

담배, 어떤 논리로도 누구에게도 권해서는 안 된다. 특히 당신의 아들에게는 권하지 말라. 핵반응도 한가지다. 인간의 폐(肺)처럼, 지구도 몰상식 앞에서는 가련하다. 착한 마음 밖에는 방법이 없다. 사랑 말이다. ‘일본의 도전’을 지지하며 나와 이웃을 바라본다.


강상헌 논설주간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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